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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 작가 Aug 18. 2021

소중함이 그자리에 머물러 주는 것

테리, 하늘의 별이 되다

          * 2011년 가족이 되어 2021년 8월 13일. 10년이 조금 넘는 생을 살다 간 테리를 추모하며 *

                                                    테리(2011.03.26-2021.08.13)


처음에는 두마리의 고양이를 분양 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푸른 바다같은 눈을 한 한마리 고양이에 홀리듯 마음을 빼앗겨, 가정분양 하는 집에 찾아가 그 녀석을 낼름 업어왔다. 그게 바로 체리였다.

그런데, 이내 함께 있던 여러 마리 중 한마리가 눈에 계속 밟혔다. 체리보다는 조금은 더 크고 조금은 더 뭉툭하게 생겼던 그리고 당시에는 용어도 모르던 '오드아이'였던 한마리. 결국 일주일을 더 고민하다 그 녀석마저 내 집으로 들이기로 했다. 늘 불러왔던 '체테리' 체리와 테리가 나의 가족이 된 2011년 6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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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와는 다르게, 테리는 약간의 피부병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이 정성스레 연고를 발라준 결과 금세 치유 되었고 그 이후로 별 탈 없이 건강하게 나와 함께 지냈다. 딱히 가리는 것도 없이 잘 먹고, 고양이들이 당연히 그렇듯 화장실도 잘 가려서 기르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약간의 털이 날렸지만 그건 데려올 당시부터 각오했던 일이니 상관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도 있었다. 무언가를 씹는 식감을 좋아하는 녀석이 충전 케이블 등을 잘근잘근 씹어 못쓰게 만든 것. 사실 충전 케이블을 못 쓰게 만드는 일도 불편한건 맞았지만 더 걱정되는건 그렇게 케이블을 씹었다가 혹시나 감전사 당하면 어쩌나 그 걱정이 더욱 컸다. 그 덕에 내 집의 대부분 전자기기 도구와 케이블에는 플라스틱 실드가 감겨 있다. 케이블이 제 기능을 다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중성화 수술을 하는 데에도 약간의 애를 먹었다. 보통 아주 간단한 수술인데 이 녀석의 경우 두개의 땅콩 중 하나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잠복 고환이라고 하는데 심한 경우 개복 수술을 해야 하고 매우 고통스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다행이 수의사 선생님께서 허벅지 쪽에 있던 잠복 고환을 찾아내 제거 수술을 잘 끝내 주셨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개복수술로 며칠을 힘들어 했겠지. 다행이었다. 아마도 그날, 처음으로 테리가 마취로 인해 축 늘어진 모습을 봤던 것 같다. 분명 마취고 곧 깨어날 것을 알았음에도 그렇게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 때 강하게 결심했던 것 같다 '이 녀석 무지개 다리 건널 때 까지 내가 꼭 잘 돌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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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테리 그리고 체리 세 존재가 어울리는 삶은 대체로 순탄했다. 아이들은 순했고, 큰 병 치레를 하지 않았다. 둘이 종종 다투는 경우가 있었지만 덩치 큰 테리가 체리를 충분히 봐주면서 놀아주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테리는 굉장히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참을성과 배려 의식을 가졌던 고양이었다. 하나의 그릇에 간식을 주면 보통 체리가 먼저 다가가서 먹기 시작한다. 아무리 뭐가 어떻다 해도 고양이니까 식탐이 있는게 당연하고, 먼저 밥그릇을 뺏으려고 하는 것도 너무 당연한 일인데 테리는 체리가 다 먹기를 기다렸다 자리를 뜨면 그제서야 먹기 시작했다. 한두번 우연히 그런게 아니었다. 10년 세월 내내 한두번을 제외하고는 정말 늘 그랬다. 사람도 그러기 어려울텐데 놀라운 지경이었다. 실제로 너무 놀라웠다.


테리는 체리와 달리 말이 없이 과묵했다. 테리 성대 모사를 같이 살던 내가 따라하기 어려울만큼 말수가 적었다. (자주 말을 안해주니 기억하기 어려웠고 따라하는건 더 어려웠다.) 아주 가끔씩 꼬리를 밟히면, 그제서야 '아야' 하는 소리 정도만 냈다. 생각해보면 참을성이 참 많았던 친구였다.


테리의 별명은 '개리'였다. 혹은 '고양이의 탈을 쓴 개' 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체리도 고양이 치고는 굉장히 친근한 편이다. 치대고 옆에와서 야옹대고 말도 많고. 그런데 테리는 정말이지 '부르면 오는' 고양이었다. 손을 달라면 손을 주는 고양이었다. 세상 어떤 고양이를 다시 만나도 이런 고양이는 못 만날 거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일 듯 하다. 체리는 그나마 '거들떠 봐 주기라도' 하는 수준의 고양이었다면 테리는 그 수준이 아니라 정말 내가 강아지를 기르는 것인지 고양이를 기르는 것인지 헷갈리는 수준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문 열고 집에 들어오면 늘상 겅중겅중 뛰어 나와 나를 반겨 주었다. 체리와 테리가 함께 있을 때는 그 차이가 아주 크다고 생각은 못했는데 지금 체리만 남겨져 있다 보니 둘의 차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구나 싶다. 테리는 멍멍이였다. 말하면 멍멍 소리를 낼까봐 말을 안한거 아니냐는 농담마저 했던 정도로 친근하고 사교성 좋은 아이였다.


심지어 체리를 실수로 잠시 잃어버렸다 찾았을 때도 묵묵하게 옆으로 와서 날 다독여주고 걱정해 주었다. 직접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옆에서 계속 와서 치대주고, 그르릉 대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찾을 수 있을거라고 말해준걸까. 다행이 나는 그날 오후에 체리를 찾을 수 있었다. 체리를 잃어버렸던 당시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테리가 있었고 테리를 보살필 사람이 나 였기 때문이다. 테리가 없었으면 나는 정말 안 좋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테리는 나에게 생명의 은인이다.


테리는 이번에 하늘나라를 가기 전까지 크게 딱 한번 아팠다. 어느날 집에 들어가보니 온몸에 힘이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너무 놀란 나는 테리를 캐리어에 옮겨 싣고 동물 병원으로 뛰어갔다. 의사의 진단은 황당하게도 '뱃속에 응아와 가스가 가득차서' 였다. 정말 별 일 없이 장청소를 하고 돌아오니 순식간에 즐겁게 뛰놀았다.


나는 그 때보다 네가 괜찮길래, 이번에도 그냥 살짝 아프다 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잘못 생각한 일이고, 너무 후회 스러운 일이었지만..

일을 하지 않는 날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니야 그래도 재택이라도 하고 있어서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었던것이라 다행이야. 마지막을 지켜봤는데도 살리지 못했으니 뭐가 나은걸까. 그래도 집에와서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보단 나아. 만약에 만약이 꼬리를 문다. 동물 치고는 제법 성대했던 장례식도, 구슬로 너의 유골을 간직하는 모습도 사실 어쩌면 내가 괜찮아 지기 위한 이기심일수도 있지. 결과를 돌릴 수 없음은 언제나 한스럽다. 아프고. 결과를 돌릴 수 있다면 더 큰 댓가를 치뤄도 되는데, 그건 아예 할 수 없으니 너무 속상하구나.


테리야.

너는 언제나 나에게 따뜻하고 멋진 동생이었어.

아마도 살아가면서 널 떠올리며 우는 빈도는 줄어들겠지.

그렇다고 해서 널 그리워 하는 마음이 작아진건 아냐.

아마도 살아가면서 오열하는 경우도 서서히 적어지겠지.

그렇다고 해서 널 잊고 지낸다는 의미는 아니야.


네가 준 고마운 마음 따뜻하게 간직하고,

곁에 있어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무지한 나에게 깨닫게 해주어서 고마워.

너를 아프게 했던 질병이 체리마저 아프게 하지 않도록 체리는 내가 더욱 정성 다 해서 보살피고 아낄게. 그래서 너는 조금 섭섭하고 기다림의 시간이 길겠지만 테리는 조금 더 오래오래 지구별에 머물게 하도록 노력할게. 네가 바라는 일일것 같기도 해. 조금만 더 길게 우리 기다려주렴.


사랑한다. 사랑했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게.

고마운 내 사랑 테리. 내가 처음 거두어 마지막 무지개 다리 건널 때 까지 함께 했던 나의 반려 동물 중 최초의 존재. 내가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너무 짧았지만, 그래도 너와 함꼐 한 이 모든 시간이 내겐 행복함이자 기쁨이었어. 고마워. 하늘에서 우리 지켜봐줘


* 혹시 이 글을 보신 분이 계신다면, 사랑하는 가족이 마지막으로 하늘나라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잘 가라고 가서도 행복하라고 한마디씩만 남겨 주시면 너무너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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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길게 늘려놓으면, 대부분 행복과 불행의 빈도가 비슷한 듯 하다. 행복은 위로 솟는 감정, 불행은 아래로 꺼지는 감정이어서 인생에 굴곡이 생겨나는 것인데, 이를 결국 포개놓으면 인생은 평평해 지겠지. 


그런데 그런 인생이 뭐 좋은 것이겠어. 행복도 슬픔도 없는 무덤덤한 인생이. 행복이 있기에 아픔도 있다면 기꺼이 그 아픔을 마주해야 하는 것 같아. 물론 그 아픔이 마냥 쉬운건 결코 아니지만.


행복했기에 상실의 아픔은 크고 깊구나. 행복하고 사랑했던 만큼 아프구나


만약에 만약을 더해 이랬다면 어땠을까를 계속 생각하고 후회는 계속 쌓이지만 결과를 돌이킬 수 없음이 진심으로 한스럽구나

너와 함께한 10년은 내게 늘 봄이었어. 내가 기쁠 때도, 아플때도 한번도 날 떠나지 않고 지켜준 너. 이젠 내가 마음 속에서 영원히 간직할게


그리고, 남겨진 체리도 더더욱 온 마음과 정성 다 해 사랑하고 보살필게.


끝까지 착하던 테리.

끝까지 날 위해주던 고마운 테리

지금 깊이 아프지만, 이 아픔이 널 사랑한 증거라면 얼마든 더 아파도 돼. 

사랑했고 사랑한다. 우리 훗날 꼭 다시 만나자

미리 하늘나라 가 있는 너의 누나 마리랑

외롭지 않게 잘 지내고 있으렴


테리야. 형이 꼭 다시 만나러 갈게


고마워 사랑해

2021년 8월 13일

테리 하늘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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