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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고운 Aug 23. 2024

둥며드는 중입니다.(발도르프 어린이집의 첫 해)

일 년의 리듬살이 : 부활절 리듬 (2)

4월 : 부활절 리듬을 준비하는 일에 대하여


아이들의 부활절 리듬 활동이 월요일에 있을 예정이라 담당팀은 일요일 오전에 어린이집 공간에 모여 계란 꾸미기 작업을 하기로 했다.

계란을 그냥 염색하는 것도 아니고 화단의 잡초들을 뜯어와 그 이파리를 계란에 얹고 스타킹망으로 감싸 묶는 작업을 한다고 하여 ‘굳이 한번 까먹고 버릴 계란을…?’ 60개나 되는 계란을 과연 오늘 다 작업할 수 있을까? 좀 어리둥절해졌다.

일단 작은 바구니에 가위를 담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흔히 지나치던 풀들과 이파리들을 유심히 보다가 ‘이거 어때요?’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가위로 톡톡 잎들을 자르다 보니 바구니가 금방 한가득 찼다. 준비해 둔 스타킹을 잘라 계란들을 한 알 한 알 감싸 묶는데 정말 어찌나 번거롭던지… 냄비에 첫 번째 염색가루를 풀고 꽁꽁 싸맨 계란들을 삶을 때만 해도 난 여전히 이 작업이 얼마나 효율적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십 분 뒤 이파리들의 청사진이 찍혀 예쁘게 염색된 계란을 보자 모두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내가 한 작업 중에 이만큼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이 모든 번거로움이 납득되는 결과물을 보자 계란 하나하나를 감싸는 노동이 기꺼운 과정으로 바뀌었다. 초록, 자주, 노랑, 파란색과 무늬를 담은 예순여 개의 계란들을 열심히 삶는 동안, 한편에서는 한지로 만든 포장지에 일일이 수채화로 아이들 별 상징 그림을 그려주셨다. 발도르프 원에서는 아이들에게 글자를 먼저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개별 물품은 이름을 써두지 않고 심벌로 구분한다. 달, 별, 구름, 돛단배, 달팽이, 꽃, 나비, 산 등등의 그림이 한 장 한 장 그려진 종이에 예쁘게 염색된 계란을 한 알 한 알 감쌌다.

“계란은 몇 분 정도 삶는 게 적당할까요?”

“색깔은 이렇게 두 개씩 다른 색으로 포장하면 어떨까요?”

“동생들 먼저 예쁜 계란을 챙겨주는 게 어때요?”

“심벌이 이렇게 잘 보이게 감싸서 묶으면 좋겠는데요?”  

네 명의 엄마들이 사부작사부작 준비한,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한 기준과 시선을 담은 삼십여 개의 계란이 계란판에 옹기종기 담겼다.

이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받고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할지…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면서 내 마음이 이렇게 설레었던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반응이 설사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르더라도 2024년의 부활절 리듬에서 준비하는 마음,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긴 특별한 계란들을 아이들이 보고 듣고 만질 거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속에는 이미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졌다.


다음날 아침, 예쁘게 만들어둔 계란들을 관악산 숲 놀이터에 숨겨두기로 했다. 숨기는 일도 대충 할 일이 아니다. 타이밍을 잘 보고, 아이들이 오기 바로 전 샤샤샥 숨겨두어야 한다. 예전에 미리 숨겨두고 내려갔더니 계란을 등산객이 가져가거나 먹어버리는 사고? 가 있었다고 한다. 4-5세를 위한 계란은 좀 아래쪽에 6-7세들의 계란은 언덕 위쪽에 숨겨두고 비밀작전을 완수한 요원들처럼 선생님께 연락을 받고 도망치듯 놀이터를 떠났다. 눈 밝은 아이들이 저기 엄마들 있다~ 하면 계란 찾기에 집중할 수 없을까 봐 막상 찾는 광경은 보지 못하니 아쉬웠다. 저 멀리서도 아이들의 신나게 떠드는 소리가 왁자지껄 했다.

모태신앙인 나이지만 부활절은 한동안 나에게 교회에서 떡 주는 날?이었다. 좀 크고 나서 교회 학교 선생님으로 봉사할 때는 나누어줄 계란을 만드는 것이 귀찮기만 했는데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일이 이렇게 사부작사부작 즐거운 일이 되다니… 아이가 하원하며 의기양양하게 들고 온 예쁜 계란을 보고 충실히 환호해 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자꾸 깨서 먹으려고 해서 다음날 바로 부화시켜 주었다는 사실…

아이는 양모 병아리를 자랑스럽게 모시고 등원했고 덕분에 다른 집 계란들의 부화도 한층 빨라지게 되었다는 후문…

소중한 새 식구가 된 병아리들과 함께, 매 계절, 매 달, 매주, 매일의 리듬을 느끼며 자연스러운 일상을 회복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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