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헤리티지를 가진 브랜드 리뉴얼하기
변화한 시장의 흐름에 맞춰 리브랜딩 하는 기업(브랜드)가 많아졌습니다. 최근에는 재규어, 대한항공, 올리브영 등이 로고를 다시 디자인하면서 화제를 모았었죠. 이들의 변화에 호불호가 나뉘는 걸 보며 역시 리브랜딩은 브랜드를 새로 론칭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임을 다시금 깨닫고 있습니다.
얼마 전, 70년 역사를 지닌 도루코도 리뉴얼한 브랜딩을 공개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을 함께한 플러스엑스 BX팀은 도루코라는 브랜드의 본질을 지키면서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부여하며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줬죠. 그래서 본 프로젝트를 지휘한 이윤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지키는 동시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는 방법에 대해서 들어봤습니다.
Q. 도루코는 70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브랜드였어요. 리서치 과정에서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나요?
이윤성 “기술력이 곧 마케팅이다”라는, 기술력에 관한 강한 자부심이 기억에 남아요. 20년 이상 근무한 대표이사님부터 직원들까지 공통으로 기술력을 이야기했다는 건 곧 회사가 70년 동안 유지해 온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도루코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세계 4위인데, 기술력으로만 보면 질레트에 이어 2등이나 다름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에서 기술력에 대한 장인정신, 진정성, 자부심이 느껴졌어요.
Q. 그 말씀을 들으니, 도루코가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한 이유가 궁금해졌어요. 기술력이 곧 마케팅이라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BX는 마케팅과 연결되니까요.
이윤성 원래 로고만 바꾸는 정도의 범위로 의뢰받았는데, 클라이언트와 미팅하면서 단순히 로고만 바꿔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서 원래 계획보다 범위를 넓혔어요.
Q. 리뉴얼한 브랜드의 모든 요소에서 ‘강렬하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언어로 정리한 영역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윤성 리뉴얼 전, 도루코는 ‘친근함’이라는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었어요. 면도날에서 사무용품, 주방용품으로 사업 범위가 확장되면서 브랜드의 지향점이 바뀌었죠. 그렇게 5년 정도 지나고 나서 내부 경영진에서 의아함을 느꼈다고 해요. 여전히 면도날과 면도기가 회사 매출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가, 면도날 산업 자체가 기술 개발이나 생산라인 구축 등에서 허들이 높아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분야거든요. 그래서 경영진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산업군에서 기술력으로 높은 위치까지 오른 도루코만의 자부심이 다시 표현되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생각을 반영하고자 했어요.
Q. 도루코의 자부심과 혁신 등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아니면 단어 선택 시, 주의했던 부분이 있었을까요?
이윤성 도루코의 자신감에 어울리는 언어적 자산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임직원 인터뷰 내용과 함께 내부에서 강조하고 지향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도루코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과 내부 구성원이 지녀야 할 태도를 알아봤어요. 기업 레벨에서 강조되고 있는 내용 중에선 ‘우리의 기술력으로 세계 1위가 되어야 한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볼 수 있게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와 같이 진취적이고 패기 넘치는 내용이 많아서 브랜드 언어도 자신감과 힘이 넘치는 단어로 사용하려고 했어요.
Q. 오히려 그 언어들이 젊게 느껴져 브랜드의 미래지향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어요.
이윤성 처음에는 기업 스스로 1등임을 대놓고 강조하는 방식이 촌스러운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 발 떨어져서 다시 보니까 도루코다운 표현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진취적인 뉘앙스의 언어로 사용하고자 했던 클라이언트의 니즈가 이해되었어요.
Q. 도루코처럼 역사가 긴 브랜드(기업)의 철학을 언어로 정의 내릴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이윤성 브랜드(기업)가 긴 시간 동안 내세웠던 핵심과 본질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 두 가지를 다 아우를 수 있어야 해요. 도루코가 70년간 강조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80~90년대의 도루코 광고부터 신문 기사까지 찾아봤어요. 그리고 오래 근속하신 경영진 및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도루코가 구성원에게 강조하는 내부 가치도 파악했고요. 특히 앞으로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해서 도루코가 강화해야 할 점을 언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Q. 그런 진취적인 태도가 로고에서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로고를 디자인할 때, 중요하게 고려했던 부분이 있었나요?
이윤성 산업의 속성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나길 바랐어요. 날카로움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순 없지만, 각도가 딱 떨어져 완벽하다는 인상이 느껴지는 형태라면 날 전문 기업의 속성을 보여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죠. 또, 자평을 가로로 넓혀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질 수 있게 했고요. 면도날의 섬세함과 날카로움, 도루코의 묵직함과 진취성이라는 반대되는 속성들이 잘 반영될 수 있게 신경을 썼습니다.
Q. 빨간 선 하나로 표현한 키 비주얼도 강한 인상이 남았어요. 심플하면서 직관적인 디자인이 가장 어려우면서 위험한 디자인이잖아요. 작업하면서 우려되는 점은 없었나요?
이윤성 면도날에 베여서 피가 나는 모습이 떠오른다는 후기를 봤어요. 재미있는 사실은 내부에서도 동일한 피드백이 있었다는 점이에요. 게다가 5년 전에도 동일한 의견이 있어서 그때,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할 겸 키 컬러를 초록 계열로 변경했다고 하더라고요.
Q. 그런데 다시 빨간색으로 돌아온 이유는요?
이윤성 시각이 달라진 거죠. 내부 구성원들에게 빨간색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지 물어봤는데, 다수의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어요. 오히려 도루코가 지니고 있던 본래의 정체성과 컬러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다’는 맥락에서 빨간색(DORCO Heritage Red)을 선택, 사용하게 되었어요.
Q. 선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시각 요소를 사용한다는 것도 꽤 대담한 선택이었어요.
이윤성 디자인 시안을 설명하기 위해 ‘획을 긋는 1등 기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 말이 도루코의 마음을 흔든 것 같아요. ‘획을 긋는다’라는 문장에는 업계의 기준점을 만든다는 뜻과 함께 면도하는 모습을 비유하기도 해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었죠. 내부에서도 도루코의 기업 정신과 지향점을 잘 표현한 문장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또, 깔끔하게 선 하나를 긋는다는 시각적 표현이 자신감 있어 보여서 빨간색 선 하나로 키 비주얼을 디자인했습니다. 다행히 키 비주얼이 공개되기 전부터 내부에서 사용할 정도로 도루코에서 공감하고 만족해 주셨어요.
Q. 선을 키 비주얼로 사용하면 확장하기도 쉽나요?
이윤성 재미있는 지점이 많아지죠. 저희가 사용한 방식은 도루코의 여러 면도기 제품을 선 일러스트로 그려서 활용해서 기술력을 더 돋보이게 한 거였어요. 그런 사용 방식이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인상을 결정할 수 있거든요.
Q. 한편, 라인 두께를 결정하는 것도 어려웠을 듯해요. 너무 얇으면 힘없어 보이고, 두꺼우면 둔탁해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윤성 어떤 매체에 사용하든지 날렵하면서도 심미성이 느껴져야 했어요. 그런데 선의 두께를 동일하게 지정하면 매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일관된 운영이 가능하도록 선의 비율을 설정한 가이드라인을 전달했어요.
Q. 서브 컬러를 회색 계열로 선정한 것도 직관적인 선택이라고 느껴졌어요. 면도날이 떠올랐거든요.
이윤성 도루코의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해선 일명 ‘쇠 맛’이 느껴지는 회색을 사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도루코만이 가진 특허 기술(앞면 6중 날, 7중 면도날)과 쇠를 다루는 정밀한 기술력에 대해서 진심이 느껴졌기에 그를 표현하는 회색을 서브 컬러로 사용하는 건 당연했어요.
Q. 사옥 내 사이니지까지 디자인했는데, 실제 적용이 되었나요?
이윤성 70년을 기념하면서 신사옥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부 사이니지 시스템까지 제안했는데 일부는 적용된다고 들었어요.
Q. 하위 브랜드 시스템을 보면 컬러를 다양하게 사용했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윤성 기업 레벨의 컬러와 제품 레벨의 컬러를 구분하려고 했어요. 도루코라는 ‘기업’으로서 각인되어야 하는 영역과 도루코에서 만드는 여러 절삭 제품의 속성을 잘 표현하면서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을 컬러로 구분한 거죠. 그리고 이 모든 컬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구성했어요.
Q. 도루코 브랜딩 리뉴얼은 긴 역사를 가진 기업(브랜드)의 미래까지 고려해야 했던 프로젝트였어요. 이렇게 역사를 가진 브랜드를 리뉴얼할 때, 고려하면 좋을 점은 무엇인가요?
이윤성 긴 역사를 지닌 브랜드일수록 오랫동안 쌓아 올린 근간과 자부심이 있기에 변화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지켜온 헤리티지를 유지하는 것도 브랜드의 역할이니까요. 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리브랜딩에는 변화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와 팀원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머무르지 말자.’라고 다짐했고, 그 태도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어요. 그 덕분에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있었고요. 다행히 프로젝트가 끝나고 도루코 대표님이 “끝까지 밀어붙여 주신 점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앞으로의 30년을 끌고 나갈 근간이 마련되었다.”라며 만족감을 표현해 주셨고, 내부에서도 만족한다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Q. 클라이언트와의 의견을 존중하되, 디자이너로서의 시각을 잃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네요.
이윤성 전문가로서 후회하는 결과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클라이언트가 의문을 가질 때, 전문가인 우리를 믿어달라고 설득했죠. 특히 역사가 긴 브랜드일수록 그들의 헤리티지를 존중하고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던 보수적인 생각을 깨뜨리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서로 다른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성이 잘 보이는 작업 중의 하나가 리브랜딩 프로젝트죠. 브랜드의 기존 자산과 새로운 가치 사이에서, 클라이언트 및 소비자의 관점과 디자이너의 관점 사이에서 등 하나부터 열까지 미세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때, 방향성을 잃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전문가로서의 시각을 유지하며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라는 걸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루코 브랜딩 리뉴얼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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