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러스엑스 Sep 02. 2019

52시간을 준비하는
플러스엑스의 자세

author - bib(feat.sherlock, 혜님)│경영지원팀

  드디어, 디자인 회사에서 디자인 빼고 다 하는 경영지원팀에 브런치 순서가 넘어왔다. 때마침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우리 회사 근무제도의 변화 과정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었는데, 시기적절하게 그 순서가 온 것 같다. 그래서 이번 브런치 주제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준비하는 플러스엑스의 자세”로 정했다.     


주 52시간 근무제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 휴식 있는 삶과 일•생활의 균형을 보장하기 위해 1주 최대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는 법안을 공포했고, 기업 규모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시행 시기를 조정했다. 우리 회사는 2018년까지만 해도 30인 내외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업을 확장하고 회사 규모를 확대하면서 2019년 8월 현재 직원 수는 56명으로 늘어났으며, 이에 따라 2020년 1월에는 의무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에 동참해야 한다.     


야근 금지! 가능해?     


  디자인 업계에서 야근은 과연 뗄 수 없는 존재일까? 디자인의 퀄리티를 위해서 야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플러스엑스의 두 대표님과 경영지원팀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큰 고민에 빠졌다. 결론은, "한번 해보자"였다. 우리에게는 의무 시행일까지 1년의 시간이 있었다. 이를 베타 테스트 기간으로 생각하고, 연장 근로 없이도 좋은 디자인을 산출할 수 있는 최적의 근무 형태를 경험해보고자 했다. 물론, 플엑인들은 반신반의했다.  벌써 세 번째 근무제도를 경험하고 있는 플러스엑스는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도록 하자.     


그룹웨어, 영.고의 시작     


  2018년 4분기부터 경영지원팀은 너무나 바쁜 나날을 보냈다. 프로젝트 X를 위한 전 직원 인터뷰, 부가세 신고, 결산 등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그룹웨어까지 만들어야 했다. 그룹웨어를 만들고자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우선,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기 위해 근무시간을 책정할 수 있는 직원들의 출퇴근 기록이 필요했다. 그런데 시중에 나온 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보니 불필요한 기능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필요로 하는 기능만 있는, 가볍고 다루기 쉬운 그룹웨어를 만들기로 했다. 천재 개발자 수님과 호기롭게 시작한 그룹웨어가 영(원히).고(통받는)가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개발에 대해 전무했던 혜님과 나는 말만 하면 뚝딱 만들어질 줄 알았던 그룹웨어가 이렇게 손이 많이 갈 줄 예상하지 못했다. 혜님은 ‘개발자도 아니고, 기획자도 아닌데 내가 이걸 맡는 게 맞는 거야?’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쳤다. 근무정책과 관련한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정과 업데이트 거쳤고, 여기에 맞춰 개발도 진행됐다. 두 달 동안 틈틈이 그룹웨어의 뼈대가 만들어졌다. 이 기간을 우리는 영고의 기간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룹웨어는 12월 송년회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설명과 함께 첫 등장하게 됐다. 


1분기(2019년 1~3월)     


#그룹웨어 적응 기간 #플엑인들의 출퇴근 현황
#근무시간 현행 유지(10~19시) #7시 자동 퇴근 #야근 퇴근 버튼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는 따로 출퇴근 기록을 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10~19시까지였으며 출퇴근 시간에 대해서 따로 제지하지 않았다. 다만 새벽까지 야근할 시 피로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다음날 12시까지 출근할 수 있는 출근 유예제도가 있었다. 야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 조금은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했던 것. 점심시간에는 주변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늦은 점심을 먹어도 됐고, 야근할 때는 저녁밥을 먹은 후, 게임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기존 출퇴근 제도를 유지하면서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기록해보고자 했다. 몇 시에 와서 몇 시에 퇴근하는지, 실제 근무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룹웨어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출근 버튼 누르는 걸 자꾸 까먹었다. 한동안 단체방에 출근 버튼을 누르라고 아침마다 공지했지만, 출근 시간 수정과 관련한 결재가 매일매일 쌓였다.     

  야근을 할 때는 20시 이후에 야근 출퇴근 버튼이 활성화됐는데, 야근자들은 야근 출퇴근 버튼 누르는 걸 자꾸 까먹었다. 2월부터는 야근 출근 버튼을 없애고, 20시 이후로 퇴근 버튼만 누르면 되도록 시스템을 수정했다. 어쨌든 이 기간은 그룹웨어 적응 기간으로서, 쓸 만한 로우데이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플엑인들의 근무패턴과 근무시간을 집계해볼 수는 있었다. 나(bib)와 혜님은 타의 모범이 되고자 출퇴근 버튼을 정말 열심히 눌렀고, 그 결과 프로야근러들보다 근무시간이 엄청나게 초과했다.    

 

<1~3월 근무시간 상위 랭킹자>


2분기(2019년 4~6월)     


#근무시간 유지 #집중 근로시간 10~12시 반 #야근 연장 신청 #휴일 근무 신청
#야근 사유 선택 #출근 유예제도 없음     


  4월에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더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본격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이 업데이트됐다. 우선 집중 근로시간을 정했다. 10~12시 반까지는 개인 업무에 집중하고, 탕비실 이용이나 흡연을 지양하기로 했다. 2시간 반의 짧은 오전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야근에 대해서는 야근하는 걸 불편하게 만들기로 했다. 새벽까지 야근해도 출근 시간은 10시로 고정해, 출근 유예제도를 없앴다. 연장 근로가 가능한 시간은 오후 10시까지로 했고, 그 이후로 야근을 해야 한다면 조직장-대표이사-회계팀의 야근 연장승인을 받아야 했다. 야근 연장 신청 사유도 3가지로 제한했다.     


  바뀐 근무 정책에 대한 플엑인의 반응은 어땠을까?     

    

“디자인 방향을 전개하다 보면, 새벽까지 열띤 토론을 해도 좋은 생각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 야근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 일하는 방식에 맞는 정책이 아닌 것 같다.”     


 플러스엑스 디자이너들에게 야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좋은 디자인을 산출하고 싶은 순수한 욕구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이고, 오히려 야근을 제한하는 회사 정책에 불만을 느끼는 디자이너들도 있었다. 그래서 야근 신청을 미리 하지 못한 사람들은 퇴근 버튼을 누르고 다시 일하기도 했다.     


중간점검 : 적응하는 플러스엑스     


 그룹웨어를 도입하고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실제로 22시 이후로 야근하는 인원이 많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주일 단위로 근무시간 통계를 보면, 어떤 특정 주에만 근무시간이 초과했으며, 그 외에는 평균 근무시간을 준수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진행 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기가 있으며, 야근을 하게 되는 아주 바쁜 시기가 존재한다. 이를 주 단위로 보면 주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하게 되지만, 월 단위로 볼 때 문제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야근이 심했던 2월과 6월의 기록을 살펴보자. 특정 주에 52시간을 넘어가는 직원이 몇 명 있다. 그러나 이를 월 단위로 변환했더니 정규 근로시간 40시간 외에 12시간을 초과하는 사람이 없었다.      


<2월의 기록>
<6월의 기록>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플러스엑스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유연근무제 중에서도 부분 선택적 근무시간 제도를 시범 운행해보기로 했다. 이 제도는 의무적 근로 시간대(코어타임)를 제외한 근로시간을 근로자의 재량에 맡기는 제도이다. 우리 회사는 코어타임을 11시~12시, 13시~15시로 정했다.     


3분기(7월 중순~9월)     


#부분 선택적 근무시간제 도입 #코어타임 #자율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 변경(12-1시), #미달, 준수, 초과 #시차 도입     



  부분 선택적 근무 시간제를 시행한 다음 날부터, 아침 일찍 출근해서 오후 일찍 퇴근하는 플엑인이 나타났다. 그다음 날은 더 많은 사람이 일찍 와서 일하고 있었다. 금요일이 되자, 코어타임이 끝나는 3시에 퇴근하는 플엑인들이 보였다. 일이 많은 날은 일찍 와서 일하다가, 상대적으로 일이 없는 날은 코어 시간에만 근무하고 퇴근할 수 있는 것이다.     

  경영지원팀만 볼 수 있었던 전 직원의 근무시간을 모두에게 개방했다. 조직장은 각 팀원이 시간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은 본인의 누적된 시간을 보며 근무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한 달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본인의 누적 근무시간이 미달, 준수, 초과로 나타나며 초과가 뜬 직원들은 요주의 인물로 관리대상이 된다. 그리고 반차 대신 시차 개념이 생겼다. 원하는 시간을 설정해 1~8시간까지 쓸 수 있다.  시차를 쓰게 되면, 대시보드 화면에 아래와 같이 표시된다.    

<2시차 사용 시 연차 표시 >

 

 유연근무제에 대한 플엑인들은 어떤 반응일까?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 많지만, 아직 이 제도를 낯설어하는 반응도 있다.    


“지금 너무 좋아요. 저는 예전처럼 근무하라고 하면 회사 그만둘 것 같아요.”  

“저한테는 해당 안 되는 것 같아요”     


경영지원팀의 유연근무제 활용법     


  경영지원팀은 고정 및 상시업무, 거래처와의 업무 때문에 하루 8시간의 근무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팀원끼리 스케줄을 공유했다. 혜님은 아침 수영을 하기 위해 11시 출근을 선언했다. 나는 화, 목요일에 줌바를 하려고 6시에 퇴근한다. 막내도 화, 금요일에 필라테스를 하기 위해 6시에 퇴근한다. 가끔 볼일이 생기면 한두 시간 정도 일찍 나가기도 한다. 다만, 나는 시간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 7월에 몇 안 되는 초과자 중 한 명인 나는, 한동안 대표님한테 "야, 초과"라고 불리며 괴롭힘을 당했다. (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것 같다….) 

  

  8월에는 근무시간을 준수하려고 노력했고,  얼마 전에는 초과한 시간을 상계하고자 시차를 쓰고 평일 낮에 엄마랑 데이트도 했다. 7월과 비교했을 때, 발전한 리포트를 볼 수 있다. :)

     


관건은 시간 관리     


  야근은 이제 성실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초과자라고 불리며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근무시간을 개인의 자율에 맡기는 만큼, 업무에 대한 책임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조직장은 매일 팀원들의 근태관리 기록을 보면서, 실제 이 팀원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지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우리는 더 이상 52시간이 두렵지 않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로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회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회사를 24시간 개방하지 않아도 되고, 직원들의 휴식을 보장함으로써 일의 능률을 올리고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지켜주는 좋은 회사가 될 수 있다. 플러스엑스는 좋은 회사가 될 준비가 돼있다. 아직 3분기가 지나지 않았고, 4분기에는 이 제도를 보완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디자인업계도 야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더 이상 52시간이 두렵지 않다.      


=============================================     


  #이 자리를 빌려, 그룹웨어 개발을 위해 힘써온 그룹웨어 TF팀께 감사드리며, 회사의 근무정책을 잘 따라와 준 플러스엑스인들에게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앞으로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하는 플러스엑스가 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수점 프로젝트 - PlusX.0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