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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세스를 디자인하다

author - 이수연ㅣAX 수석디자이너

얼마 전 까지만 해도 11번가에서 UI 디자이너로 일을 하던 중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PLUS A에서 세 번째 여름을 나고 있다. 변사범 대표의 꼬드김에 넘어가 PLUS A에 덜컥 합류, 그리고 어느덧 3년. ‘운영’ 업무라는 말만 듣고 일을 시작했는데, 일반적인 UI 디자이너의 일과는 달랐다. 

고민도 달라지고 나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은 변했다.



다시 처음처럼

.

.


10년을 훌쩍 넘겨 UI 디자이너로 에이전시와 인하우스를 모두 거치면서 다양한 경험치를 쌓아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몇 년간 겪은 일들은 이전과는 또 달랐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미션은 훨씬 더 세밀해졌고, 커뮤니케이션은 체계적이 되었다. 


하는 일이 바뀌지 않았지만, 일하는 체계와 전제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 변화를 받아들이려면 스스로에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우리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고객 접점,

채널마다 존재하는 각각의 이해관계 가운데 어떤 것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물론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채널마다, 때로는 각 부서나 팀의 이해관계보다 우선이 되어야 한다, 고 흔히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삼성화재와 연간 단위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이런 생각들도 바뀌기 시작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각 채널의 특성보다 우선시 되어야 마땅하지만, 그 둘 사이에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고객이나 내부 구성원들에게 무조건 강제 할 수는 없다.



브랜드다움과 퍼스낼리티

삼성화재 같은 기업은 고객들에게 ‘안정성’을 제공한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본질은 삶의 불안정성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하고, 고객들에게 안정된 삶을 약속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재 보험 같은 기업들은 고객들에게 ‘안정적’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설사 이 같은 ‘안정성’, ‘안전 지향’이 간혹 보수적인 태도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동시에 고객들에게 이 ‘안정성’은 아주 신중하고 믿을 만하다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삼성화재와 상당 기간 파트너십을 이어가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들이다. 


이들이 UIㆍUX에 있어서 좀 더 부드럽고 친절한 룩앤필(Look & Feel)을 선호하면서도, 급격한 변화나 모험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브랜드가 가진 퍼스널리티를 이해하는 일은 그 브랜드를 운용하는 기업의, 구성원들의 기업 문화를 이해하는 일과도 연결되어 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전망과 목표를 아우르는 것이라면, 퍼스낼리티에는 그 브랜드가 지금까지 걸어온 서사가 녹아 있다. 그 서사를 이해해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도 ‘브랜드다움’을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다. 


어떤 브랜드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고객에게 브랜드다움을 어필하지만, 어떤 브랜드는 그 반대다. 오랜 시간 지켜온 헤리티지와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브랜드다움을 환기시키고, 고객으로부터 로열티를 이끌어낸다.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UIㆍUX 디자인의 속성과 삼성화재의 브랜드다움을 조율하는 일은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취향이 아니라 프로세스가 브랜드다움을 만든다

브랜드와 관련을 맺는 수많은 사람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프로세스’다. 웹이든 앱이든 인터페이스나 룩앤필(Look & Feel)은 사람의 취향에 따라 저마다 선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브랜드다움을 이끌어내려면 이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공유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마련되어야 한다. 


흔히 프로세스라고 하면 보고 과정이나 의사 결정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런 점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프로세스를 통해서 기업의 내부 구성원이 브랜드 디자인에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프로세스를 통해 외부 전문가와 내부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조율한다. 


프로세스를 거쳐야 디자인은 비로소 솔루션이 된다.


프로세스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전까지 디자인은 그냥 모티브에 지나지 않는다.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을 매니지먼트해야 한다. 때로는 프로세스가 퀄리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있어서 비주얼이나 인터페이스는 직관적이지만, 프로세스는 작업에 객관성을 부여한다. 



프로세스가 브랜드다움을 만든다.

딱히 멋진 말은 아니지만, 결국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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