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18살, 땡땡이 그리고 야구 관람

by 헤엄치는 새

그날은 담임선생님의 매타작으로 시작되었다.

나를 포함한 십 수 명의 아이들이 칠판의 분필대를 붙잡고 담임선생님의 매를 허벅지로 맞이해야 할 판이었다.

우리는 왜 매를 맞아야 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야자 즉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친 걸 들켰기 때문이다.

전날 저녁, 교실을 순찰하는 다른 선생님에게 우리의 죄(?)는 발각되었고, 우리 이름은 다음날 담임선생님께 넘겨진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매질을 하셨고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허벅지를 맞을 땐, 그냥 담부턴 적당히 땡땡이쳐야지 그 생각뿐이었다.

아마 다른 녀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쓰린 허벅지를 매만지며, 덤으로 반성문까지 써야 했으니 이게 올바른 등가교환인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매를 맞고 나서도 아픔과 후회는 한순간이고, 바로 어제의 즐거움이 상기되는 건 18살의 꽃다운 청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매를 맞고 땡땡이 친 장소...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야구 관람을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18살 고2...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사실 끔찍했다.

성적은 나날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내가 원하는 대학은 점점 멀게만 느껴지는 날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집안 사정도 나빠졌고, 아버지와의 관계는 틀어질 대로 틀어진 뒤였다...

무엇하나 내 맘대로 안 되는 시기였다.

그 당시 성격도 예민할 대로 예민할 때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해까지 할 정도로 내 정신은 피폐해져 있었다.


노력해도 등수는 오르지 않았고, 난 무엇하나 제대로 못하는 그런 아이로 존재했다.

당시에 위안이라곤 좋은 친구를 곁에 둔 정도였다.

방황해도, 힘들어도 곁을 내주던 친구...

나의 방황이 귀여운(?) 정도로 그친 건 어쩌면 그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공부 잘하는 녀석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녀석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나와 친구가 된 건 어딘지 모르게 내가 불안해서 잡아주려 했던 것 아닐까 싶다.

아마 그게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중 j라는 친구와 두터운 우정을 쌓게 된다.

흔히 말하는 모범생, 나완 다르게 하루가 다르게 성적의 상승곡선을 그리던 친구.

내가 동경하는 모습을 j는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얼마 후 학교 모의고사가 있었다.

이젠 나에겐 그런 모의고사가 의미가 없었다.

중학교 땐 그나마 상위권이었지만 고등학교 땐 그저 그런 낙제생일 뿐이니까...

아는 문제도 그다지 없었고, 그냥 하루의 이벤트일 뿐이었다.


뭐 기쁜 일이라면 야자 없이 오후에 마친다는 정도?

그렇게 모의고사를 마치고 j랑 오락실로 향했다.

알고 보니 오락 역시 잘하는 게 없더라.

뭔가 나 자신이 참 불쌍하다 생각했다.

j는 내게 이런저런 격려를 해줬다.

딱히 기억나는 말은 없지만 자기 나름대로 나의 기운을 북돋워 주려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난 그런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나의 땡땡이는 빈번해졌다.

갈 데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학교 안이 그냥 싫었던 듯싶다.

무작정 학교를 도망치듯 나오면 갈데라고는 오락실이 전부였다.

지하의 한구석에서 멍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다 때에 맞춰 집에 들어갔다.

갈 곳이 없다고 집으로 가면 어머니는 화낼 것이 분명했고, 나는 주로 오락실 아니면 서동 시립도서관에서 낙서를 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날도 어김없이 땡땡이를 치려는 찰나 j가 나를 불렀다.

이유인즉 오늘 다른 친구들이랑 땡땡이를 치려한다는 것이었다.

네가? 너 같은 범생이가?

알고 보니 그날은 롯데의 야구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다른 친구들도 함께 몰래 간다는 것이었다.

j는 내게 함께 가자고 권했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혼자보단 그들과 어울리는 게 재미있을 듯하여 함께 야구장으로 향했다.


사직 야구장...

버스를 타고 몇 번 외관을 보고 지나간 적은 있어도 안으로 들어가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탁 트인 경기장에 놀랬다.

그라운드를 정리하는 선수들부터 한쪽 구석에서 캐치볼을 하는 선수들까지 tv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뭔가 생기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구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더 신기하게 보였다.

저마다 손에 음료와 먹을 것을 들고 자리에 앉아, 상기된 표정으로 당일 경기에 대한 전망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1루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둘러보니 우리 또래의 학생들도 듬성듬성 보였다.

그들도 우리처럼 땡땡이를 친 걸까? 생각했다.


애국가가 울리고 바로 경기가 시작됐다.

사실 경기 내용은 별로 기억이 안 난다.

난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고, 야구 룰이라곤 9명이 하는 경기 , 그게 다였기에 후반에 가서는 조금 시시 하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 선수가 마지막 홈런을 쳤을 때 우리 모두는 환호하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렇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홈런이 줬던 짜릿한 승부엔 저절로 환호했던 것이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근처 분식집에서 간단히 요기하며 경기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j 외엔 약간 서먹서먹했던 나머지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얘기를 주고받았다.

다음날 보자고 헤어지는 그 순간 나를 그들 무리에 끼워준 j가 너무나 고마웠다.

다음날 학교에 등교하니 반 친구들은 우리에게 어제의 일을 알려줬다.

야자 시간, 기술 선생님이 땡땡이친 학생들 명단 작성했다고 말이다.

알고 보니 어젠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땡땡이친 탓에 누가 봐도 휑했단다.

아... 선생님 들어오면 신나게 맞겠구나 생각했다.

역시나 적중했다.


선생님은 문을 세차게 여시며 인사는 생략한 체 땡땡이친 우리를 교탁 앞으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일렬로 칠판의 분필대를 붙잡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퍽 퍽 퍽.

교실에 둔탁한 음이 울려 퍼졌다.

어쩜 그리 리드미컬하게 때리시는지 마치 메트로놈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맞을 차례가 됐을 땐 그런 소리보단 머리에서 별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

허벅지가 뜨겁다.

그렇게 문질러도 아픔이 가시질 않는다.

알고 보니 약 1/3 이 땡땡이친듯했다.


그렇게 선생님은 이래서 우리 반이 꼴찌다라고 화를 내시며 땡땡이친 우리들에게 반성문을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냥 매 한대 더 맞는 게 나을듯한데 반성문이라니...

너무 고욕이다.


어제 야구장에 간 녀석들은 선생님의 매질을 야구선수 누구와 비교하며 스윙은 별로지만 타격감은 제대로라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다른 녀석은 바지를 내려 허벅지에 난 빨간 줄을 보며 담임 선생님 욕을 하기도 했다.

결국엔 다 같이 웃으며 오후에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말이다.


해가지고 밤이 되어 나온 우린 심야의 오락실로 갔다.

j는 오늘의 체벌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어차피 땡땡이 칠 거였기 때문에 똑같이 맞았을 거라고 말했다.

그 녀석이 웃는다.

나도 씩 웃는다.


난 그렇게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친한 친구를 얻었다...


j 하고는 30대 초, 중반까지 함께 보냈다.

j는 대학 후배와 결혼하고, 완도의 어느 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듣기로는 주말부부라고 하더라.

카톡에는 그 녀석을 닮은 딸의 사진을 프로필로 올려놨다.

이제 초등학교 갓 입학할 나이가 된 듯싶은데...

지금은 서로 바빠서 제대로 연락하지 못하고, 안부조차 띄엄띄엄 묻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보지 않아도, 만나면 어제 만난 것처럼 친한 우리...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언제 또 볼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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