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름없이 늘 비슷한 시간, 증산역에 도착했고,
전철 승강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리고 나의 눈이 머문 건 내 앞 어느 남학생의 신발 뒤꿈치였다.
보고 놀란 건 신발의 밑창이 거의 다 닳아서, 자칫 발 뒤꿈치가 삐져나오지 않을까? 하는 아슬아슬함이었다.
왜 남학생은 그 신발을 골랐을까?
올라가는 내내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하나는 신발이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매일매일 신다 결국 저렇게 뒷굽이 헤져버린 거였고,
다른 하나는 신발이 저거 한 켤레뿐이라 어쩔 수 없이 마르고(?) 닳도록 신다, 결국 저런 상태가 되었나? 였다.
아무리 세상이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는 하나, 빈곤 없는 집이 어디 있겠는가?
저 신발을 보며 내 머릿속은 온갖 스토리텔링으로 넘쳐나다 불현듯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기억났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소위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 신발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품을 신지 못했다.
그 시절엔 다양한 신발 브랜드가 있었다.
나이키, 아디다스를 비롯해서 푸마, 프로스펙스, 프로 월드컵, 슈퍼 카미트(?), 리복, 휠라 등등 다양한 상품이 넘쳐났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만 해도, 인터넷은 보급이 안된 시기였다.
그때는 가정에 막 모뎀이 보급되기 시작했던 때라, 지금처럼 인터넷 최저가는 꿈도 못 꿨다.
브랜드 신발은 신고 싶고, 주머니가 얇은 나 같은 허세(?) 좀 있는 학생은 보세점에서 구입했다.
물론 꼼꼼히 살펴보면, '이거 가짜 같은데?'라고 의심이 들지만,
그 시절의 난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건 저 아름다운 빨간 곡선이 신발 옆구리에 '잘 박음질되어있나?'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신고 다니다 얼마 지나면, 꼭 신발 앞부분이 갈라지기 일쑤였다.
어쩔 수 없었다.
빈곤은 우리 집의 일상이었기에, 2켤레 이상 신발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한 켤레로 조심조심 신고 다닌다 한들, 17살 사내아이가 얼마나 조심조심 신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빠르게 낡은 신발을 보며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봄소풍은 교복이 아닌 사복 차림이었기에, 주변 친구들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을지 상의했다.
그런 건 나에게 먼 얘기지만...
그것보다 난 신발이었다.
소풍 때만큼은 갈라진 신발을 신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저녁 난 어머니에게 나이키 정품 신발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것도 농구화를 말이다.
그땐 농구화 열풍이었다.
대학농구부터 해서 프로 농구, 축구, 배구까지 매스컴에선 온갖 스포츠를 뿌려대고 있었다.
체육하고 거리가 먼 둔한 몸뚱이의 발도 농구화를 몹시도 신고 싶었다.
정품 가격이 얼마 할지 모르지만, 보세 신발보다 조금 비쌀 거라고 어머니를 설득했고, 어머니는 가격을 알아보고 오라고 하셨다.
왠지 어머니께서 사주실 거 같은 기대에 잠도 안 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친구랑 정품 매장에서 본 신발 가격은 나의 작은 기대를 여지없이 박살 냈다.
행여 다른 브랜드 매장은 살까 싶어 둘러봤지만, 가격은 대동소이했다.
비싼 가격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사달라고 떼쓴다고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노름으로 돈을 탕진하고, 집에 혹시 돈이 될만한 게 있을까 하고 다 헤집어 놓으셨다.
엉망인 집구석에서 난 신발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깨진 접시를 어머니랑 치우고, 울고 계신 어머니 등을 토닥거리는 거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정말 우연히도 큰 외삼촌이 프로스펙스 농구화를 산 걸 알게 됐다.
어떻게 알게 된 건지 기억은 안 나지만, 곧바로 큰 외삼촌 집으로 갔다.
외삼촌에게 소풍 갈 때 하루만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썩 내켜하지 않았다.
이해는 됐다.
왜냐면 아직 본인이 한 번도 신지 않았고, 난 그에게 귀여운 조카가 아니었기에...
사실 외할머니는 재혼을 하셨고, 큰 외삼촌은 어머니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었다.
데면데면한 사이, 그래도 그런 조카가 신발을 빌려달라 하니
빌려주기 싫어도 체면상 그럴 수 없었을 꺼라 생각한다.
그에게 신발을 건네받았다.
너무 신났다.
곧 다가올 소풍이 이렇게 기대가 되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발 가격에 좌절한 나였는데...
그렇게 집에 가서 몰래 신발을 숨겼다.
행여 어머니가 알게 되시면 몹시 속상해하시리다.
비록 가진건 없어도 자존심은 강한 그녀이기에 더욱 그래야 했다.
소풍 당일...
그렇게 삼촌의 새 신발로 잘 놀다 그만 개울에 한쪽 발을 빠뜨려 젖어버렸다.
다행히 금방 말라, 다음날 삼촌에게 모른 척(?) 반납했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최저가로 좋은 신발을 잘 사고 있다.
비싼 신발은 아니지만 약 10켤레 정도 있는 거 같다.
그 시절의 갖지 못한 보상심리랄까?
어머니는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성화시지만 말이다.
누구나 물질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생채기가 있다.
이젠 희미해서 기억나지 않다가, 가끔 그렇게 밀물처럼 그때의 아픔이 몰려올 때가 있다.
예전엔 물질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신발이나 옷을 사고, 그것을 방에 가득 채워 날 달랬다
지금은?
지금은 그냥 운다.
나이가 나이라서 그런가? 그렇게 울고 나면 개운하달까?
뭐 혼자 방구석에서 우는데 누가 뭐라 그러겠는가?
그렇게 개운해진 마음으로 이 글을 정리하고 있다.
이 글이 당신 마음의 생채기에 연고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