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16살. 졸업 그리고 원장 선생님...

by 헤엄치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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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내가 즐겨보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만년필에 대한 질문이 올라왔다.

흔한 말로 가성비 좋은 만년필을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다.

댓글로 저마다 자기가 쓴 좋은 만년필을 추천했고, 그 이유까지 친절히 설명했다.


아마 남자라면 한 번쯤 만년필에 대한 구매욕구가 있을 것이다.

가격을 떠나서, 만년필이 갖고 있는 고유의 이미지…

특히 나처럼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게 게시판 글을 읽다, 어느 분이 남긴 만년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가격은 나의 기준으로 조금 비싸긴 했지만, 카드 할부를 한다면 못 살 가격도 아니었다.

그렇게 난 만년필 한 자루를 구매했다.

그리고 덤으로 잉크랑 원고지도 샀다.

어떻게 보면 충동구매이긴 하지만, 한 번쯤 사고 싶었던 것, 이번 기회에 산 걸로 나 스스로에게 합리적(?) 체면을 걸었다.


이틀 뒤 만년필이 나의 손에 들어왔다.

생애 두 번째였다.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만년필은 이게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만년필에 잉크를 보충하고 몇 자 써 내려가는 동안 그리운 얼굴이 불현듯 떠 올랐다.

나에게 처음 만년필을 주신 분..

어찌 그녀를 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16살,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께 받은 것이기에 더욱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그분은 나의 중1 그리고 중3 때 학원 원장 선생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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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어를 중학교 때 처음 접했다.


지금이야 선행학습이다, 글로벌 시대라 해서 이른 나이에 영어와 한글을 배우지만, 우리 땐 하루하루 밖에서 놀기 바쁜지라, 대다수 친구들은 중학교 입학을 위해 특별히 영어를 배우진 않았다.

그렇다고 선행학습을 아예 안 한건 아니었다.

외국어 고등학교 라든가 과학 고등학교 같은 특수목적고에 진학하기 위해 일찍부터 우리와 다른 길을 가는 애들 역시 존재했다.

영어랑 수학을 월반할 능력으로 배우는 그런 경우는 극소수였다.

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틀렸다.


이런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건 중학교 입학 후 쪽지시험을 치르고 나서였다.

월반할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똘똘한 놈들은 학원 다니며 영어 공부도 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난 나의 무지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날 치른 쪽지시험에서 나는 한 개도 맞추지 못했다.

심지어 나보다 공부를 못할 거라 생각한 녀석들도 3,4개는 맞췄다.

자존심이 상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학원을 다니고 싶다 말했다.

어머니께선 간단하게 알겠다고 말씀하시며, 다니고 싶은 학원의 회비를 알아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알아본 학원은 예전 할머니의 봉제 공장에 위치한 학원이었다.

학원 이름은 ‘소림’이었다.


왜 이곳을 택했을까?

집이랑 가깝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예전 할머니 공장이었던 자리였다.

그만큼 나에겐 친숙한 공간이었다.

누가 추천해준 것도 아니었다.

난 소림 학원에서 영어, 수학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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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한 그 공간엔 친숙한 친구도 존재했다.

D군…

초등학교 때 나랑 같은 반 급우이기도 했던 그와 둘이서 전문과외처럼 받았다.

소림 학원은 중등부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우리 둘을 제외하면 다 초등학생이었다.


첫 번째 월말고사가 얼마 안 남았다.

둘 뿐이라 내 실력이 얼마나 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원장 선생님께 직접 수업을 듣는 지라,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치른 첫 번째 시험은 평균 77점, 반 석차는 53명 중에 17등이었다.

뭔가 아쉬웠다.

나름 총명하다 생각했는데, 내 앞에 16명이나 있다.

그렇게 성적표를 들고 어머니가 아닌 원장 선생님 앞에 섰다.

원장 선생님은 나의 성적표를 복사하곤, 그 다음칸에 내가 받을 목표 점수를 적으셨다.

목표 점수는 평균 85점, 반 석차 10등 안을 주문하셨다.


그렇게 두 번째 월말고사를 준비했다.

그 시기 학원에도 중학생이 늘기 시작했다.

수업은 예전처럼 과외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동급생이 늘어서 학원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동급생이랑 땡땡이라도 치면, 다음날 원장 선생님께 맞기도 했다.

그땐 선생님은 학교 학원 할 것 없이 다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월말고사…

평균 91점, 반 석차 5등이었다…

나보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이게 다 원장 선생님 덕분이라며 선생님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셨다.

그리고 나는 본의 아니게 학원 성적의 롤모델이 돼서 학원은 더 많은 아이들로 채워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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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중1은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물론 최고 등수는 5등이었지만, 그래도 10등 안은 꼭 들었다.

그리고 중2가 되기 전 학원을 그만뒀다.

우리 집은 연년생 남동생이 있었고, 가정형편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버지의 술과 노름으로 집안의 돈은 늘 부족했다.

그렇기에, 중2 때는 시립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했다.

어머니껜 기초가 있어서 혼자서도 할만하다고 둘러말했다.

그렇게 1년을 지나 중 3 봄 다시 학원에 들어갔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원한만큼의 성적 향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당시 나의 성적은 국, 영, 수가 현저히 약해졌고, 기타 과목으로 전체 평균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었다. 국영수만 본다면 나의 성적은 중위권에서 조금 높았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입시였다.

그 당시엔 공예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실기시험을 치를 돈이 없었다.

인문계보단 공업계열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완강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인문계 진학이 결정된 상황이라 조금은 내 성적 향상과 겨울의 연합고사를 준비해야 할 처지였다.


결과적으로 중2 나의 자가학습은 오히려 기초공부를 제대로 다 하지 못하게 한 셈이었다.

그것은 중3을 지나 고등학교 수업에 치명적으로 작용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원장 선생님은 중2 성적표를 보고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 중3 성적도 그러했다.

아마 나를 높게 평가하셔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신 듯싶다.


하지만 학원을 오래 다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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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달을 다닌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집에 형편이 어려우니 학원은 그만 다니고, 혼자 공부해보면 어떻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아… 아버지 때문이구나…

그 이유밖에 없었으리라…


원장 선생님께 학원을 다닐 경제적 여력이 안된다고 솔직히 말했다.

원장 선생님은 알겠다고 말씀하시며, 나오는 동안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월말이 다가오고, 학원 수업이 끝난 월말 어머니께서 계속 학원을 다니라고 말씀하셨다.

집에 돈이 없다고 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란다.

그런 말을 듣는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니지만, 또 한편으론 어디서 여윳돈이 생겼나 보다 생각했다.


훗날 성인이 돼서 알게 됐지만, 난 그때 무상으로 학원을 다니고 있던 셈이었다.

원장 선생님께 학원을 그만둬야겠다고 말했을 때, 원장 선생님은 어머니랑 통화를 하셨다.

돈은 언제든 여건 되실 때 주면 된다며, 나의 공부가 계속되길 바라셨다.

어머니 역시 금전적인 이유로 아들 공부를 막는다는 게 마음이 아팠던 터라 승낙했다고 하셨다.

그 내막을 알리 없는 그때의 나는 경제적 빈곤보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즐거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연합고사를 치르고 다음 해 2월 졸업식이 끝날 때 원장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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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졸업 선물이라며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건넸다.

집에 가서 풀어보니 카트리지식 만년필이었다.

물론 고급 만년필은 아니었지만, 나에겐 그 어떤 것보다 값진 물건이었다.


한동안 모든 글씨는 원장 선생님이 주신 만년필로 적어 나갔다.

이 만년필만 있으면 고등학교 생활도 무난하게 헤처 나가리라 생각했지만, 그러진 못했다.

앞 화에 말한 것처럼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엉망이었고, 이는 어머니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였다.


어머니는 원장 선생님께 나의 신상을 얘기하고 상담을 나누셨다.

원장 선생님은 나와 대화하기를 원하셨지만, 내가 피했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뵐 낯이 없었다.


그리고 차츰 하나씩 잊혀갔다.

만년필도 잃어버렸다.

나도 잃어버렸다…

그렇게 난 도망쳤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연히 원장 선생님을 뵈었다고, 지금은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학원을 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어릴 적 있었던 무상 수업부터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방황하던 고등학생 때 원장 선생님을 뵈었으면, 난 조금 달라졌을까 생각해 본다.


이 이야기 역시 한참 전에 들은 얘기니, 지금은 아마 쉬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마음속엔 원장 선생님이 진정한 스승님이셨다.

보고 싶어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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