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하는 학생은 단상에 오릅니다. 3학년 4반 플루토 학생.’
월요일 아침의 전교 조회 시간…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마이크를 통해 나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리고 뒤이어서 몇 명의 이름이 더 호명되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대표해서 단상에 올랐고, 교장 선생님께 상장을 받았다.
16살. 나는 부산시에서 개최한 미술대회에서 판화 부분 특선을 수상했다.
상장을 건네받자 수많은 박수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다.
얼굴이 잔뜩 상기된 체 나의 위치로 돌아왔고, 같은 반 급우들이 조용하게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이런 축하는 교실에 돌아와서도 계속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수많은 시선과 관심을 받은 날이었다.
내가 선발된 건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그 당시의 난 예능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 생각했다.
만화도 곧잘 그리고, 친구가 튕기는 기타에 맞춰 흥겹게 노래도 부르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 어느 날 미술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알고 보니 반마다 약 2,3명의 학생을 불러 모은 것이다.
모두 모였는지 미술 선생님은 이번에 부산시에서 개최하는 미술대회가 있으니 준비를 했으면 하는 거였다.
아이들의 의향을 묻고, 참가자를 구성했다.
그렇게 나가려는 순간 음악 선생님의 호출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난 미술과 음악 양쪽의 선택을 받았지만, 난 미술 쪽을 택했다.
이유인즉 단체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혼자 수행하는 작품 활동(?)이 나에게 더 잘 맞으리란 생각이 있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이후 다음 모임에 각자 지원할 영역을 골라야 했다.
대충 수채화, 포스터, 판화, 조각 같은 영역이었다.
가장 많은 비중은 당연히 수채화와 같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파트였다.
나는 판화 부분을 지원했다.
사실 수채화는 어려웠던 게 우선 수채화 물감이 없었다.
거기에 수채화의 특성도 잘 몰랐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포스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고르고 고르다 보니 판화였다.
좋지 않은가? 조각칼 하나만 있으면 준비 끝인 셈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영역이 선택되자 방과 후 선생님의 과외가 시작되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의 우리는 학교를 대표해서 시대회에 나간다고 생각했기에 나름 사명감도 있었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이 그 순간만큼은 각자 진지하게 연습에 임했다.
나 역시 선생님께 고무판을 받으면 주제에 맞게 조각을 하고 선생님의 지도를 진지하게 들었다.
그렇게 연습 중 한 번씩 고개를 돌리면 유독 수채화 영역의 아이들 장비가 호사스러웠다.
비싸 보이는 물감과 팔레트, 이 작은 공간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고무판을 깎는 순간엔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선 어머니께 미술대회에 나가게 됐다고 말씀드렸다.
요즘 들어 늦은 귀가시간을 보고 한소리 하려 했지만, 시대회이기도 했고, 학교 대표란 말에 별말씀이 없으셨다.
그래도 조금은 궁금하셨는지, 어는 부분에 참가하는지, 언제 대회인지 물어보곤 하셨다.
그리고 잘 됐으면 좋겠단 말도 하셨다.
그때의 난 학교의 기대보단 어머니의 기대에 더 부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밥을 먹으며 말없이 끄덕였다.
그렇게 대회 기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음악대회 역시 미술대회와 날짜가 같았기에 서로 경쟁하듯 연습했다.
음악대회를 준비한 그들도 우리만큼이나 각자의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었으리라…
시간이 다가올수록 우린 청소 열외와 같은 특혜를 받았다.
그와 동시에 대회에 대한 압박도 있었다.
몇몇 애들은 스트레스에 그림을 그리다 종이를 찢기도 하고, 몇몇은 중간에 포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대회 당일이 되었다.
우리가 대회를 치를 곳은 그 당시 부산 초량에 위치한 공예고등학교였다.
(지금은 용호동으로 옮겨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우리는 미술 선생님의 지도 아래, 지하철을 타고 공예고등학교로 향했다.
도착한 그곳은 부산의 중학생들은 다 모인 듯싶었다.
대회 당일은 모두 교복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미아가 될 일은 없었지만, 동시에 우리 학교 교복이 얼마나 촌스러운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란 건 공예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그 당시엔 남녀공학이 귀한 시절이었기에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3,4층 창엔 몇몇의 여고생이 우릴 보고 마치 품평회(?)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 여고생의 웃는 모습은 촌스런 우릴 보고 비웃는 듯해서 이유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이 왕왕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의 지도사항과 격려를 듣고 각자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앞에 말한 것처럼 난 판화 부분이었고 나를 포함해 세명이었다.
하지만 배치된 교실은 제법 많았다.
우리는 수험생처럼 각자의 번호와 교실을 확인하고 입장했다.
각반에 배치된 남고생들이 각자의 정해진 자리로 안내했다.
약간의 소란스러움도 잠시 곧이어 감독 선생님이 입장하셨다.
감독 선생님은 안전 및 유의 사항을 설명하시며 칠판에 개시되는 시간과 마감되는 시간을 적으셨다.
그리고 남고생들은 우리에게 고무판을 나눠줬다.
고무판을 다 나눠주자 선생님은 칠판에 오늘 수행할 주제를 적으셨다.
‘사람과 꽃’
이것이 주제였다.
조용히 숨을 내쉰다. 어떤 구성을 해야 할까? 내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동안 스피커에서 시작을 알리는 음이 울렸다.
그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오로지 고무판 위에서 미끄러지는 연필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 역시 그러했다.
꽃은 화병에 넣고 한송이만 그렸다.
꽃은 이제 시들기 시작한 마냥 꽃잎 한 장이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그 꽃을 바라보며 한 줄기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측면을 그렸다.
나의 주제는 이별이었다.
그녀가 건네준 꽃은 이제 시들어 더 이상 간직할 수 없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게 스케치를 하고 조각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의 명암을 생각해 면을 파기도 하고, 사선을 넣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산만한 아이들이 생기기도 했다.
고무판에 구멍이 생기는 애들도 있었다.
넉넉하리라 믿었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마감을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 정해진 시간 안에 조각을 마치고 잉크를 판에 묻혀 롤러로 밀어냈다.
그렇게 2장을 만들고, 종이랑 고무판을 각각 제출했다.
대회가 끝났다.
같이 판화를 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미술 선생님이 지시한 장소로 모였다.
도착한 그곳엔 이미 와 있는 이들도 있었다.
미술 선생님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한 명 한 명 어깨를 토닥였다.
선생님은 다른 데로 새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라고 하셨지만, 몇몇은 남포동에 청바지를 보러 갈 거라며 같이 갈 아이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난 그 당시에도 고지식함이 있었기에 선생님의 말씀대로 바로 집으로 향했다.
사실 짧은 시간 나름 집중해서 대회에 임했기에 피곤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회가 끝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
어느 날 미술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교무실에 들어가자 나랑 같이 대회에 참가한 몇 명이 있었다.
미술 선생님은 호출한 학생이 다 모이자 우리에게 입상을 했다며 축하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음 주 전교 조회 때 내가 대표로 교장선생님께 상을 받을 거라 말씀하셨다.
이중에 나만 유일하게 특선이었다.
이어서 공예고등학교에 시험을 본다면 가산점을 받게 될 거란 말씀도 하셨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가 상을 받다니 더군다나 제일 잘한 특선이라니…
그 주, 미술대회에 참가한 우리는 공예고등학교로 가서 수상작품을 보러 갔다.
그곳에서 나의 작품을 본 J군은 ‘그냥 만화네’하며 판화 부분의 수준을 비하했다.
J군은 수채화 부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가장 많은 경쟁을 물리치고 금상을 받은 그이지만 내가 그보다 앞섰다는 게 내심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 그의 작품을 보니 J군이 화내는 게 당연해 보였다.
수채화와 판화는 분명 수준 차이가 명확했다.
우리는 그렇게 둘러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월요일이 되었다.
조회가 시작되기 전 학생주임 선생님은 호명되는 순서를 알려주시고, 서야 될 위치를 알려주셨다.
2번의 예행연습을 하자 전교 조회가 시작되었다.
마이크를 통해 나의 이름이 불러진다.
연습한 대로 몸이 움직인다.
교장선생님이 상장을 주신다.
그리고 뒤에서 들리는 박수소리…
하지만 그런 박수소리보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월요일 난 그렇게 생소한 경험을 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상장을 보여드렸다.
어머니와 동생이 축하를 해줬다.
옷을 갈아입고, 학원에 가자 학원에서도 그 얘기 중이었다. 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도 다시 한번 축하한다 해줬다.
16살 처음으로 대중의 시선이 이런 거구나 하고 작은 체험을 했다.
그때의 난 나 자신에게 어떤 가능성을 느낀 날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관심(?) 받고자 글을 쓰고 있다.
나의 글이 많은 이의 입과 생각에 오르내리고 싶다.
그리고 따뜻한 감정을 전해주고 싶다.
함께 웃고, 우는 모든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