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린다.
아이들은 도시락을 들고 삼삼오오 친한 애들끼리 모인다.
도시락 뚜껑을 열라는 찰나 뒤에서 큰 소란이 벌어진다.
반장 B군과 일진 C군이 주먹질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둘 다 중학생 치고는 큰 덩치라 주먹질마저 위협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몇 번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오가고, 교실은 말 그대로 아수라 장이었다.
아이들 몇몇이 반장과 일진을 떼어놓으려 안감힘을 썼고,
반장은 입술이, 일진은 코피가 난 상태에서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으르렁 거리는 것도 잠시…
복도를 지나는 다른 반 선생님이 싸움질하는 현장을 발견했고, 그 둘은 휴지로 피나는 부위를 틀어막으며 교무실로 끌려간다.
무척이나 긴 시간이라 생각했지만 벽시계의 분침은 고작 5,6분 정도 흘렀을 뿐이다.
그리고 싸움판이 벌어진 자리의 뒷정리는 주번이 해야 했다.
그렇다 그날의 주번은 나였다…
밥 먹고 나서 피가 흩뿌려진 교실 바닥을 닦으며, 그들은 왜 서로 주먹질을 했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부산의 산업단지는 크게 신평 녹산공단, 사상공단 그리고 금사 공산이 있다.(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리 집은 그중 금사공단에 가까운 서동에 터를 잡고 있다.
아버지는 운수업으로 공단에서 자재를 실어 나르는 것으로 돈을 버셨고, 어머니는 외할머니, 외삼촌과 함께 하청 봉제공장을 하셨다.
공단 환경이 으레 그렇듯, 아이들에겐 좋은 환경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반대로 지친 노동자들에겐 하루 회포를 풀기엔 이만한 환경이 없었으리라…
큰길 곳곳에는 술집과 나이트클럽이 즐비했고, 공기는 탁했다.
특히나 월급날이 되면 동네 전체가 마치 축제인 것처럼 보였을 정도다.
이 동네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싶었을 정도로 말이다.
앞서 말한 노동자, 사장, 유흥…
이 모든 게 교실 안에 응축되어 있다.
대다수가 노동자의 아들이었지만, 간혹 사장 아들, 술집 아들도 있다.
특별하게 앞편에 말한 M군 같은 경우도 있다.(M군의 부모님은 선생님이셨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직업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시절엔 아직 세상의 때를 덜 타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반장 B군의 집이 술집을 한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그 당시 나는 다른 그룹의 애들과 친했다.
하지만 M, B군의 그룹과도 종종 어울려 지냈기에 B군의 상황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B군 무리와 시장을 지나가기라도 하면 아는 체하는 이모뻘의 누나가 많았는데, 그녀들은 술집에서 일하는 누나였다.
그렇다.
B군의 어머니는 소위 ‘마담’이라 불리는 분이셨다.
마담 아들이란 꼬리표는 B군에겐 콤플렉스였는지도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친구의 부모가 유흥주점을 운영한다고 하는데 조용한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그는 더 조심히 행동하고, 모범생으로 있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반장이 됐고, 인기 있는 그룹의 리더이기도 했다.
하지만 B군의 환경은 일진 무리의 조롱 거리였기도 했다.
한 녀석의 조롱은 곧 무리의 조롱으로 이어졌고, 이는 늘 아슬아슬한 공기를 형성했다.
가끔 욕설이 오가긴 했지만, 다행히 싸움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공단에 위치한 공장의 월급날은 대게 비슷하다.
그리고 비슷한 월급날로 인해 한 달에 한번, 공단 노동자들은 축제 같은 유흥을 벌인다.
이런 유흥이 벌어진 다음날 점심시간…
일진 C군 녀석이 시건방을 떨었다.
‘우리 아빠가 너네 가게 가서 술 좀 팔아줬다’
이 말이 기폭제였다.
조용해야 할 점심시간이 아수라장이 된다.
일진 녀석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세상 어느 천지에 부모님을 조롱하는데 가만있을 녀석이 어디 있겠는가?
욕설과 주먹질이 오간다.
주변에 힘 좀 쓰는 애들이 다가가 둘을 떼어 놓으려 한다.
반장은 일진에게 피가 섞인 침을 얼굴에 뱉자, 다시 뒤엉켜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교실문이 열리며, 다른 반 선생님이 고함을 치신다.
바닥에 피가 낭자하다.
둘은 교무실에 끌려갔다.
종례시간 담임선생님께서 우리에게 화를 내셨다.
반장과 일진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매를 맞고, 추가로 반성문도 작성하게 됐다.
일진 눈엔 반장 B군은 어떻게 보였을까?
술집 아들 주제에 반장이라서?
음지에 찌그러져 있어야 녀석이 저렇게 반장이니, 모범생이니 해서 배알이 뒤틀렸던 걸까?
분명한 건, 아이들 사이에 일진 C군은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들도 안다.
부모 욕 하는 놈은 상대가 착한 놈이든 나쁜 놈이든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후레자식이란 타이틀을 얻은 C군은 더 이상 상대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벨을 눌렀다.
버스가 좌회전하는 그때 예전 B군 어머니께서 운영하셨던 술집이 보였다.
문에는 ‘임대’라고 붙여있다.
공단에서 일하던 가장들은 어느새 노인이 되어 그들만 가득한 동네가 되었지만, 어째서인지 유흥시설은 변함없이 즐비하다.
집에 도착 후, 어머니 심부름으로 공단 근처에 위치한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가 더 많이 보인다.
그리고 내 기억과 달리 지금 공단 시설은 참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그때의 생기는 사라진듯한 기분이었다.
곳곳에 낙후된 시설과, 약간은 변한 거리…
지금도 이곳은 월급날이 되면 그들만의 유흥에 취해 축제를 벌이고 있을까?
양산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다 반대쪽의 고깃집을 바라본다.
술, 고기, 웃음, 담배, 비틀거리는 이…
이 공간에 배어있는 당연한 것들…
그 공기가 나의 폐를 찌른다.
저 멀리 버스가 온다.
어서 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