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15살, 그 순간만큼은 난 쓰레기였다.

by 헤엄치는 새

5월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 날은 수리가 완료된 맥북을 회수하기 위해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고작 30분 앞선 시간이었지만, 아파트 앞은 평상시보다 분주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많은 아이들이었다.

'우리 동네에도 아이들이 많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상시 나의 출근시간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만 보여서 '여기도 은근 실버타운이구나'라고 생각했기에, 아이들을 본 놀라움은 한층 더 컸다.


그렇게 재잘거리는 아이들 무리를 지나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불어오는 바람에게서 풀내음이 섞여 난다.

곧 6월이니 이런 풀내음은 더욱 짙어지리다.

정류장을 향하는 동안 아이들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마도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버스 정류장엔 버스 도착 알림음이 울렸고,

증산역을 향하는 버스를 올라탔을 때,

그립고... 또 미안한 얼굴이 떠 올랐다.

진호...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만, 내가 어렸을 땐 보통 초등학교, 중학교는 진학을 같이 했다.

그 시절 진호는 나와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보낸 동창이기도 했다.

진호, 나, 그리고 길선이란 친구 셋이서 곧잘 어울려 다녔다.


그땐 pc방이 없던 시절이라, 수업을 마치면 학교 근처 오락실을 가거나, 아니면 각자 집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는 금사공단 주변을 도는 게 그때의 유흥이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낸, 요즘 말로 하면 절친, 베프라 불려도 손색없는 진호에게 난 큰 상처를 줬다.


그들과 재밌게 논 건 많이 희석되어 드문드문 기억나지만, 그 상처는 나의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늘 나에게 죄책감을 줬다.


사건의 발단은 중2 미술시간이었다.

그날 수업은 2인 1조로 짝을 짜서 나무젓가락으로 풍차나 집 등을 만드는, 소위 조형물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진호와 난 짝을 짰고, 풍차를 제작했다.


하지만 미술 선생님은 우리의 결과물을 보고는 2명에게 점수를 줄 수 없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아무리 기억이 희석되었다고는 하나 우리가 만든 건 그렇게 조악한 형태는 아니었는데...

어째서 미술 선생님은 우리에게 둘 중 한 명에게만 점수를 주겠다 했을까?

그리고는 오늘 하교 전까지 누가 점수를 받을 건지 알려달라 했다.


진호와 난 서로 낙담했다.

첫째는 교실에서 그런 지적을 받은 건 우리뿐이었고,

둘째는 이후 누가 점수를 받아야 하는 거였다.

둘 중 한 명은 과제를 다시 제작해야 할 판이었다.

우린 어떻게 할지 난감해하는 사이, 하교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난 진호 몰래 미술실로 가서 선생님께 '저에게 점수를 주세요'라고 말했다.

진호하고는 상의도 없이 말이다.

다음날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진호는 나에게 와서는 책상을 발로 차고, 나의 멱살을 잡았다.

왜 그랬냐고 고함치는 진호를 반 아이들이 말렸고,

사건의 전후를 알게 된 동급생들은 나의 행동에 더 놀란 눈치였다.

물론 반 친구들은 내 성격을 알기에 멸시의 시선보단, 어떻게 하다 그런 선택을 했는지 더 안쓰러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왕따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 거다.

몇몇은 나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나를 다시 봤을 테고,

몇몇은 그런 차별을 제시한 미술 선생님을 질타했다.


이 시건 이후로 진호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누나와 함께 조형물을 만들어 제출했고,

난 20점 만점에 17점을 받았다.


그 뒤 난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따위 점수를 받자고 친구를 배신하다니...

나 자신에게 한동안 저주의 욕설을 퍼부었다.


집에서는 말수가 줄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예민해진 신경 탓에 동생에게 화풀이 하기 일쑤였다.

어머니께선 사춘기 때문인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셨지만

나날이 나의 자기혐오는 더해져 갔다.


서먹해진 진호와 나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길선이가 부단히 노력했지만,

진호는 나와의 화해를 거부했다.

어찌 안 그러겠는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가 고작 17점 받겠다고, 친구 등에 칼을 꽂았는데,

나라도 안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중3이 돼서는 각자 다른 반을 배정받았고, 결국 난 화해의 '화'도 꺼내보지 못한 체 끝이 났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다니던 20대 중반 무렵 마을버스 안에서 진호를 봤다.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도 나를 봤으리라.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곧 창밖을 응시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냈어야 하는데...

머뭇머뭇거리다,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내려야 했다.

그렇게 멀어지는 버스 꽁무니를 멍하니 쳐다보다, 우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진호의 모습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지하철에서 곧 센텀시티에 도착한다는 안내멘트가 흘러나온다.

나는 가볍게 목을 주무르고 내릴 준비를 한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모두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 에스컬레이터로 바쁘게 이동한다.

나 역시 맥북 수리센터로 분주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맥북을 건네받고 , 광안리 나의 가게로 이동하는 동안 sns로 진호를 검색해 봤다.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이 무수히 많이 떴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다.


그에 대한 그리움을 잘 정리해서 마음 서랍 한편에 잘 넣어둔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서랍 속에 잘 정리한 미안함이란 옷을 입고, 그를 안으리다.

미안하다고...

그때 당신에게 상처 준걸 지금도 후회하며 살고 있다고...


시간은 어느덧 6월이 다가오고 있고, 나의 미안함은 또 한 살을 먹을 듯싶다.






진호야 잘 지내니?


그때 내가 뭐에 씌었나 보다.

보고 싶다...

그리고 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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