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12살, 그것은 성추행이었다...

유년시절 기억하기 싫은 것 중 하나...

by 헤엄치는 새

예전 선생님의 위상은 대단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선생님의 체벌은 부모의 꾸지람과 같았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가 체벌을 받으면 이는 내 자식의 잘못으로 여겼다.


하지만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체벌을 빙자한 아이의 내적 파괴를 목격했다.

곁에서 본 나조차도 몇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건...

지금 내가 하려는 얘기는 어쩌면 그 시절의 불합리하지만 불합리하다 말할 수 없는 사건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배정받은 반은 5학년 7반이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백 씨 성을 가진 여선생님이셨다.

눈매가 매섭고 사나운 분이셨달까?


그 시절 선생님이란 세 글자는 부모님과 동급이었기에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니 그러겠는가.

나 대신 내 자식을 가리키고, 인간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어 주시는 분인데,

어느 누가 당신의 교육에 토를 달고 권위에 도전하겠는가...

이런 정서가 강했던 시기였다.


백 선생님 역시 당신만의 교육철학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자신감 키우기'였다.

알다시피 한 교실엔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이 섞여있다.

하나하나 열거하기에도 힘든, 학생수만큼 각각 다른 성격이 모인 그 집합체에 하나의 방식으로 '자신감 키우기'를 적용한 것이다.


그 방법이란.

Q : 발표할 사람?

A :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 해당 질문에 책을 읽는다.

하나씩 앉는다.

결국 눈에 띄는 주도적인 아이들(ex 반장, 부반장 등등)이 자신의 고집대로 끝까지 버틴다.

선생님이 흐뭇하게 바라본다.


여기서 선생님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자신의 교육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쾌감과

동시에 자기가 아끼는 아이들이 최후까지 버텨 발표를 마무리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게 너무 우스워보였다.

중간에 아이들은 결국 들러리였고, 마지막 발표는 언제나 M양 아니면 C 군이었으니까...

그런 들러리가 되기 싫은 탓에 난 발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도 아셨을 거다.

나 같은 아이도 있다는 것을.

이런 아이들을 독려하는 건 바로 체벌이었다.

하루 5번 발표 미만의 아이들은 벌 청소, 그것도 화장실 청소를 시킨다는 거였다.

이 경고로 인해 발표 참여율은 엄청 오르게 된다.


그리고 나처럼 5번 미만의 발표한 아이들은 여지없이 화장실 청소였다.

나, P군은 어느새 화장실 청소의 단골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잦은 벌 청소가 걱정되셨는지, 며칠 뒤 '박 X스'를 들고 선생님과 면담을 나눴다.

뒤늦게 알았지만, 그 음료 상자에는 음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난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잦았다.

그동안 벌 청소가 많았다는 이유를 붙여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P군은 변함없이 화장실 청소 당번이었다.



그리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순간 숙제를 안 하는 아이들이 제법 늘었다.

선생님은 다음에도 숙제를 안 하는 아이가 있으면 남녀 할 것 없이 하의를 벗겨버리겠다 으름장을 놓으셨다.

매를 드는 것보다 효과적인 협박(?)이라 생각하셨을까?


불행히도 선생님의 엄포는 아이들에게 와 닿지 않았다.

그날도 약 1/3의 아이들이 숙제를 안 했고,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은 교탁 앞에 세웠다.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와 교탁 앞에 일렬로 늘어선 아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선생님은 호통을 치시고는 한 아이의 바지를 벗기려 하셨다.

P 군이었다.

그 수많은 아이들 중에 P군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된 것이다.


바지춤을 붙잡고 버티는 P군과 기를 쓰고 바지를 벗기려는 선생님 사이에서 실랑이가 오갔다.

하지만 12살 아이가 30대 성인의 힘을 저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P군은 하의가 벗겨진 체 그 자리에 섰고, 소리 없이 울었다.

그리고 교탁 앞에 선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은 사색이 되었다.

어쩌면 이번엔 자기 차례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체벌은 P군 한 명으로 끝났다.

우는 P군과 묘한 정적이 불쾌했다.


M양, C군 그리고 P군...

선생님의 편애 그리고 차별은 12살의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눈에 보였다.

그렇게 P군의 나체 체벌 이후 '자신감 키우기'는 사라졌다.

어느 부모님의 항의 때문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낮은 효용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벌 청소가 사라졌다


그 이후 나는 나대로 P군은 P군대로 소심한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물론 초, 중, 고 어느 곳이든 불합리한 체벌은 존재한다.

이건 내가 목격한 최초의 성추행이니까 더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다.



구글에 그분 이름을 검색해보니 백 선생님은 어느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 되셨다.

그분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얼마큼 닿았을까?

나처럼 나쁜 쪽으로 기억되는 분은 아닐 거라 믿는다.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분이 되셨으리라...

그렇죠? 백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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