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도 어느덧 열흘이 훌쩍 지났다.
가을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하나, 낮 시간대는 조금 시원한 여름이다.
그래도 절기와 계절은 약속한 듯이 그 시기에 도착하여 계절의 완연함을 알릴 터...
아직 패딩 점퍼를 입을 시기는 아니나, 우연히 옷장을 정리하면서 문득 옛일이 하나 떠올랐다.
5만 원,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4만 9천 원 지오다노에서 판매한 패딩점퍼였다.
지금이야 옷도 신발도 넉넉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지만, 그 시절엔 그렇지 못했다.
31살 겨울...
그때 나에겐 신발 1켤레, 겨울 점퍼는 갈색의 칙칙한 솜점퍼 1벌, 그리고 3벌의 청바지, 몇 벌 되지 않는 상의가 전부였다.
더군다나 청바지는 4계절, 상의는 여름을 제외하고 입는 옷이었다.
가난한 이에게 겨울이란 계절은 끔찍할 만큼 잔인한 폭군과도 같았다.
그 당시 나는 취업에 실패해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신세였다.
다른 글에도 남겼지만, 그때 나는 울산에서 목공예를 배우고 싶었지만 실패한 상태였다.
변변한 직장도 가지지 못했고, 삶의 후회가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특별한 기술도 없었고, 학벌도 변변치 않았다.
친구를 만나려 해도 후줄근한 옷차림과 가벼운 주머니가 불만이었다.
친구들의 호의와 배려도 부담스럽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새 옷을 입고 싶단 생각을 했다.
후줄근한 내 모습의 불만이었는지, 아니면 뭔가 새로워지고 싶은? 그런 발로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돈이 없다.
아니!!! 생각해 보니 돈은 있다.
울산에서 방을 빼고 갖고 온 보증금 500만 원...
그때 당시엔 패딩 점퍼가 유행했던 시절이었다.
등골브레이크라 불리던 노스페이스가 활개를 쳤지만, 그런 건 살 엄두가 안 난다.
지금 입고 있는 갈색 솜 점퍼보다 나으면 됐다.
그 당시 내가 입었던 갈색 솜 점퍼는 헌팅재킷 같은 디자인에 허벅지를 덮는 스타일이었다.
세련된 패딩 점퍼 그거면 된 것이다.
그리고 500만 원.
사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닌 어머니의 돈이다.
제대로 벌지 못한 나에게 무슨 그런 큰돈이 있겠는가?
저 돈에서 5만 원만 몰래 쓰고 나중에 채워 넣으면 된다.
누가 알겠는가?
50만 원도 아니고 고작(?) 5만 원이다.
단돈 1000원도 벌지 못한 나의 자기 합리화였다.
지금 돈을 못 벌뿐이다. 돈은 생긴다라고 그렇게 자기 최면으로 인터넷으로 주문을 한다.
하지만 그런 건 비밀이 되지 못한다.
애초에 숨길수가 없다.
택배가 배송되는 날은 공교롭게도, 어머니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하루 일을 쉬고 집에 계신 날이었다.
택배기사님께 상품을 받자마자 내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도 안 걸릴 수가 없다.
어머니께선 나를 추궁하셨다.
있는 그대로 말했다. 보증금에서 5만 원을 빼서 샀다고 말이다.
그다음은 뻔할 뻔 자다.
무슨 정신머리로 그 돈에 손을 댔냐고,
겨울 점퍼가 있는데 왜 샀냐고..
분명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말대꾸에 뻔뻔스럽기 짝이 없게 대응했다.
그깟 5만 원 일만 하면 당장이라도 채워 넣는다고,
매일 똑같은 거지 같은 옷 입기 싫어서 하나 샀다고
20,30만 원 짜리도 아니고 솜점퍼 5만 원 짜린데 그것도 이해 못 하시냐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큰 소리로 대꾸했다.
벌거벗고 사는 것도 아닌데 하시며 어머니는 나의 소비에 힐난의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뒤는 당연하다시피 서로 서먹서먹했다.
그래도 부모자식 사이니 결국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점퍼 구매 후 매일같이 그 옷만 반지르르 입고 돌아다녔다.
그때의 5만 원...
즐거웠다. 보증금 500만 원에서 1%로 난 만족감과 자긍심을 얻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가성비라고 생각했다.
참 철이 없구나...
어쩜 저리 미숙하고 철이 없었을까...
옷장에 옷을 개어 넣으며 생각한다.
사실 그 점퍼는 참 잘 입었다.
매 겨울마다 꾸준히 입고, 다음에 새 패딩을 샀을 때 그 옷은 작업할 때나 궂은일을 할 때 애용했으니 금전적으로는 충분히 그 가치를 다 한 셈이다.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하면 굳이 보증금, 그것도 어머니 돈을 함부로 써서 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물론 그 돈이 나의 노동으로 인한 부산물이었다면 아무런 죄책감 없는 만족스러운 소비였을 터...
그랬다면 난 이 글을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넘치는 이 옷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는지,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다.
그때의 강제적인 미니멀라이프를 이제는 자발적으로 시도해야 할 순간이 아닌가라고 잠시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