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졸업/3부작] 남겨진 사람의 시간
졸업식장은 늘 비슷한 냄새가 난다. 겨울의 건조한 냉기, 강당의 묵은 먼지, 그리고 수백 다발의 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릿하고 달콤한 향기. 그 냄새를 맡으면 몸이 먼저 기억한다. 또 한 시절이 끝났음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도합 15년을 근무하며 나는 수없이 많은 졸업을 배웅했다. 체육관이나 강당, 때로는 모래바람 날리는 운동장.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줄을 서고, 부모들은 까치발을 들어 사진을 찍고, 단상 위의 교장 선생님은 축사를 읽는다. 해마다 아이들을 보내는 인사 문구는 달라지고, 유행하는 졸업 축하 노래는 바뀌지만, 졸업식의 풍경은 마치 박제된 것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 풍경 속에 서 있는 나의 위치다. 강물은 쉼 없이 흐르는데 나루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기분. 아이들은 떠나고, 나는 남는다. 그 반복되는 이별이 힘겨워 몇 년은 졸업식장에서 실제로 울기도 했다. 남겨진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외로웠기 때문이다.
현장에 오래 있으면 알게 된다. 졸업은 결코 시간만 흐르면 저절로 주어지는 '자동 발급기'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졸업은 당연한 통과의례였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동아줄이었고, 또 어떤 아이에게는 온몸으로 기어와 겨우 통과한 결승선이었다.
특히 중학교 아이들의 졸업은 종종 '출석'과의 전쟁이었다. 학교를 너무 안 나와서 정말로 졸업장이 안 나올까 봐, 교무실 달력을 펴놓고 날짜를 세어야 했던 아이들이 있었다. 전화기는 꺼져 있고, 집 문은 굳게 닫혀 있는 날들. 그런 날엔 학교 근처 편의점으로 아이를 불러내곤 했다.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컵라면 하나를 사주며, 조심스럽게 근황을 묻곤 했다.
선생님, 그냥 안 되면 안 졸업해도 돼요. 저 공부 안 할 건데요 뭐.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아이 앞에서, 나는 졸업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설명해야 했다. 졸업은 단지 학교를 끝마치는 일이 아니라, 네가 다음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문'이라는 것을. 지금 그 문을 닫아버리면, 네가 앞으로 가질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나 잔인하게 줄어드는지를. 훈계가 아니라 애원하듯 설득했다. 하루만 더 버텨보자고, 내일 아침에 딱 한 번만 교문으로 들어와 달라고. 교과서를 펼쳐 지식을 넣는 일보다, 아이의 발길을 학교로 돌리는 그 과정이 나에겐 더 치열한 교육이었다.
고등학생들의 졸업은 또 다른 차원의 무게였다. 그곳엔 출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꼭 해야하는 아이, 가정의 불화로 마음이 먼저 무너져내린 아이, 학교 공부보다 세상살이가 더 버거웠던 아이들. 그들에게 졸업장은 학업 성취의 증명이 아니라,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냈다'는 생존 증명서였다. 유급과 자퇴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제도를 뒤지고 방법을 찾아내 기어이 졸업 명단에 그 아이의 이름을 올렸을 때의 감정은 안도감을 넘어선 전우애였다.
내 20대와 30대의 시간은 그렇게 아이들의 '무사한 졸업'을 위해 쓰였다. 교실에서, 복도에서, 전화기 너머에서 나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졸업을 마주하는 일이 유독 더 힘들었던 이유는. 나에게 졸업식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버텨낸 시간의 총합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졸업식을 치르고 나면 한동안 앓듯이 기다렸다. 혹시 다시 오지 않을까. 스승의 날 연락이 오려나. 학교 근처를 지나가다 문득 내 생각이 나서 들르지는 않을까. 처음엔 그것이 제자를 사랑한 교사의 자연스러운 정(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기다림의 본질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었다는 것을.
나를 잊지는 않았을까?
그것은 아이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그 아이의 인생에 의미 있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 나의 결핍이었다. 아이들은 앞을 보고 달려가느라 바쁜데, 나 혼자 뒤를 돌아보며 서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기다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이 다시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연락이 없어도 그것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리고 최근 5년, 나는 일부러 졸업식장에 들어가지 않는 선택을 했다. 팡파르가 울리고 환호성이 터지는 체육관 대신, 텅 빈 과학실을 택했다. 졸업식장에 가면 축하의 박수보다 눈물이 먼저 터져 나올까 봐, 아이들 앞에서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무너질까 봐 도망친 곳이었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고요한 과학실 책상 위에 아이들이 남기고 간 편지들을 펼쳤다. 삐뚤빼뚤한 글씨, 구겨진 종이, 서툰 문장들. 그 속에 담긴 진심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웃다가 멈추고, 다시 읽다가 울었다. 참 우스운 장면이다. 아이들은 졸업해서 환하게 세상으로 나갔는데, 선생이라는 사람은 텅 빈 교실에 남아 편지를 붙들고 울고 있다니.
15년 동안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보냈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아이, 헤어지기 아쉬워 손을 놓기 힘들었던 아이, 졸업 후에도 걱정이 되어 잠 못 들게 했던 아이. 어떤 아이들과는 여전히 안부를 묻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강물처럼 흘러갔고 나를 잊었을 것이다. 서운함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게 '졸업'이라는 것을.
졸업은 떠나는 사람의 축제이지, 남는 사람의 축제는 아니다. 아이들은 떠나고, 또 새로운 아이들이 밀려온다. 나는 다시 마음을 내어 가르치고, 다시 정을 들이고, 다시 잘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교사는 영원히 졸업하지 못하는 학생처럼, 학교라는 정거장에 붙박인 채 누군가의 등을 밀어주는 사람이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등을 떠밀어 보내던 어느 날, 텅 빈 과학실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문득 낯선 질문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모두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데, 나는 언제 졸업을 할까?'
'나는 왜 늘 이 자리에 멈춰 서서, 보내는 역할만 반복하고 있을까?'
아이들의 졸업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싸워주면서, 정작 나 자신의 성장은 유예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배웅을 핑계로 나는 내 인생의 졸업을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면서, 나는 정작 나 자신의 졸업을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