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 미뤄둔 나의 졸업

[특집/졸업/3부작] 배우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이유

by 플루토쌤

아이들을 그렇게 수없이 강 건너로 보내면서도, 정작 나는 늘 같은 나루터에 서 있었다. 떠나는 아이들의 등을 힘껏 밀어주며 "저 문을 열고 나가라"고 외쳤지만, 나는 그 문턱을 넘지 않고 안쪽에 머물러 있기를 선택했다.


이상하게도 그 자리가 안온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정해진 시간표, 학교라는 울타리. 그 견고한 세계 안에서는 언제나 '아직'이라는 말이 허용되었다. 아직 연구 중이고, 아직 성장 중이고, 아직 완성되지 않아도 된다는 유예의 언어들. 나는 어쩌면 그 '아직'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어른이 되는 시간을 조금씩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교실에서 나는 제법 근사한 몽상가였다. 아이들에게 자주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들아,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이 되는 건 꿈이 아니야. 그건 직업이고, 현실적인 목표일 뿐이지."


나는 칠판에 큰 원을 그리며 열변을 토했다.

"꿈은 그보다 훨씬 더 멀리, 더 거대한 곳에 있어야 해. 너희가 전 세계로 흩어져 각자의 우주를 만드는 것, 그게 진짜 꿈이야. 말하자면 '우주 정복' 같은 거랄까?"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순간만큼은 꽤 그럴듯한 멘토가 된 기분에 취해 있었다. 내 삶은 비록 교실 한 칸에 묶여 있을지라도, 너희의 삶은 무한히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짐을 챙기는데 한 아이가 툭 물었다.


그럼 선생님 꿈은 뭐예요?


짐을 싸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아이의 눈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무해한 질문이 내 폐부를 찔렀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문장이 엉켰지만, 입 밖으로 나온 대답은 궁색했다.


"어... 선생님? 글쎄, 잘 모르겠네. 비밀이야."


솔직히 말하면, 그건 겸손도 아니었고 신비주의도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내 꿈을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직업 너머의 가치'를 설파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교사'라는 직업 외에 어떤 깃발을 꽂아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진로를 상담하고 미래를 설계해주면서, 내 인생의 다음 챕터는 백지 상태라는 사실을 그 아이의 질문 앞에서 들켜버린 것 같았다.


그 부끄러움이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이끌었다. 조금 늦은, 어쩌면 도피에 가까운 진로 고민이었다. 동기들은 승진을 준비하거나 재테크를 이야기할 때, 나는 대학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다시 학생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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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연구실은 묘하게 안전한 벙커였다. 사회에서는 나이 든 어른이었지만, 그곳에서는 다시 '배우는 사람'으로 불렸다. 학생이라는 신분은 매력적이었다. 결과로 증명하지 않아도, 과정 중에 있다는 이유로 모든 부족함이 용서되는 자리. 나는 그곳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논문을 읽고, 밤을 새우며 스스로를 갱신하고 있다는 '감각'에 만족했다.


하지만 공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교단에서 내가 던지던 질문이 아이들을 향한 친절한 유도였다면, 대학원에서 내가 받는 질문은 나를 발가벗기는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글은 엄격했고, 논리는 냉정했으며,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들은 매번 숨이 턱턱 막혔다.


그 과정에서 '졸업'이라는 단어는 점점 공포로 다가왔다. 학생으로서의 졸업은 끝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학교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전문가'로서 세상에 던져진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학위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배우는 중이라 몰라요"라는 변명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멈췄다.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졸업 논문의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늘 말했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 돌아가도 돼. 멈추는 시간도 다 공부야.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 말이 적용되지 않았다. 멈춤은 휴식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배우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아직 평가받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아직 내 인생의 성적표를 받아들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참 얄궂은 일이다. 아이들을 졸업시키는 매년 2월이 되면, 내가 덮어두었던 그 질문이 유령처럼 되살아났다. 아이들은 두려움을 안고도 기꺼이 교문을 나서 다음 세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그들의 스승이라는 나는 왜 늘 경계선 앞에서 서성이고만 있을까. 아이들의 졸업을 그토록 치열하게 응원했던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갖지 못한 용기를 그들을 통해 대리 만족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질문하고, 읽고, 쓴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한다. 내가 그토록 오래 학생으로 남아 있고 싶었던 이유는, 배움에 대한 순수한 열정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졸업 이후의 거친 파도를 마주할 용기가, 내 낡은 배에는 아직 없었음을.


그렇게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나도 마음속으로 수없이 졸업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 건너지 않았지만, 문이 어디 있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던 시간들.


"언젠가는 나도 저 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다짐하며 나의 졸업을 유예하고 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졸업이 내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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