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 세 개의 졸업이 만나는 자리

[특집/졸업/3부작] 나아가는 날

by 플루토쌤

그 졸업은 예고 없이, 그러나 기어이 도착했다. 내가 마음속으로 불안하게 유예해 두었던 대학원 졸업도 아니었고, 매년 루틴처럼 치러내던 학교의 졸업식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의지나 준비와는 상관없이, 시간의 정직한 흐름 속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던 또 하나의 졸업이었다. 바로 우리 아이의 졸업이었다.


유치원 졸업식장은 내가 익숙하게 서 있던 중·고등학교의 체육관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엄숙한 훈화 말씀도, 장엄한 오케스트라 반주도,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긴장된 침묵도 없었다. 대신 그곳엔 알록달록한 풍선과,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작은 의자들,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소음이 가득했다.


단상 위에서는 마이크 소리가 삑삑거렸고, 아이들은 옆 친구와 장난을 치느라 바빴다. 학사모는 자꾸만 흘러내려 눈을 덮었고, 졸업 가운은 너무 커서 마치 아이들이 옷에 파묻힌 것처럼 보였다. 그 엉성하고 귀여운 혼란스러움. 그것은 비장한 ‘이별의 식’이라기보다, 엉망진창이라 더 즐거운 ‘마을 축제’에 가까웠다.


이제 졸업식 노래를 시작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반주에 맞춰 아이들이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 안녕, 친구야 안녕…." 박자는 제각각이었고, 가사를 잊어버려 입만 뻥긋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그 서툰 합창을 듣는 순간, 객석에 앉아 있던 어른들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뷰파인더로 아이의 얼굴을 쫓던 내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 짧은 찰나, 내 안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세 개의 시간이 겹겹이 포개지고 있었다.


첫 번째 시간은 ‘보내는 사람’으로서의 기억이었다. 지난 15년간 교단에서 수없이 아이들의 등을 떠밀어 보냈던 시간들. 출석 일수가 모자라 졸업이 위태로웠던 아이를 붙잡고 사정했던 날들, 생활고에 시달리며 겨우 졸업장을 받아 든 아이를 보며 안도했던 순간들. 교사로서 느꼈던 졸업은 늘 ‘생존’이자 ‘안도’였고, 동시에 남겨짐의 쓸쓸함이었다.


두 번째 시간은 ‘멈춰 선 사람’으로서의 현재였다. 대학원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숨어, 논문을 핑계로 졸업을 미루고 있는 나의 초라한 모습. 세상 밖으로 나가 평가받는 것이 두려워, ‘아직 배우는 중’이라는 꼬리표를 방패 삼아 성장을 유예하고 있는 나 자신의 비겁함이 떠올랐다. 나에게 졸업은 ‘심판’이자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시간, 바로 눈앞에 펼쳐진 ‘나아가는 사람’의 시간이었다. 이제 막 일곱 살의 세계를 닫고 여덟 살의 세계로 건너가려는 내 아이. 아이는 졸업장이라는 종이 한 장을 받기 위해 심각하게 고뇌하지 않았다. 자신이 초등학생이 될 자격이 충분한지, 앞으로의 학업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 증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되었기에, 키가 자랐기에, 그리고 오늘이 졸업식 날이기에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상장을 받았다.


단상에서 내려와 꽃다발을 안고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졸업이라는 단어는 늘 같은 철자로 쓰이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의 마음자리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문장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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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졸업을 ‘완벽한 증명’이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졸업을 선택과 책임, 평가의 칼날로만 해석해 온 것은. 아이들에게는 “넘어져도 괜찮아, 실수해도 다시 하면 돼”라고 가르치면서, 왜 정작 나 자신에게는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졸업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을까.


내가 대학원 졸업을 미뤄온 진짜 이유는 논문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졸업 이후’의 삶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맨몸으로 세상의 거친 파도 앞에 서는 일이 두려워, 나는 자발적으로 나루터에 닻을 내리고 밧줄을 칭칭 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뒷모습이 내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아빠, 졸업은 무언가를 잃는 게 아니에요. 세계를 하나 더 얻는 거예요.

아이는 유치원이라는 세계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위에 초등학교라는 더 넓은 세계를 덧붙이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추억과 배움을 발판 삼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시선을 옮기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확장’이었고, ‘이별’이 아니라 ‘연결’이었다.




준비가 완벽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듯, 시간이 흘렀고 내가 자랐기 때문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Nature)의 섭리였고, 그것이 졸업의 본질이었다.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 용기 있는 발걸음 하나만으로도 졸업은 충분히 성립한다.


졸업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2월의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공기였지만, 1부의 졸업식장에서 느꼈던 그 시리고 쓸쓸한 바람과는 달랐다. 뺨을 때리는 바람이 아니라, 등을 밀어주는 바람이었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보며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나도 졸업할 때가 되었구나.”


나는 여전히 교사로서 아이들을 배웅할 것이다. 또다시 텅 빈 교실에 남아 편지를 읽고 눈물 흘릴지도 모른다. 여전히 배우는 사람으로 질문하고 읽고 쓰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의 졸업을 영원히 유예된 과제로,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두지는 않으려 한다.


언제, 어떤 형태로 마침표를 찍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문이 어디에 있는지는, 그리고 그 문손잡이가 생각보다 차갑지 않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그 문은 벽이 아니라, 다음 세계로 통하는 입구였음을 이제는 믿는다.


졸업은 떠나는 날이 아니라, 자리가 바뀌는 날이다. 아이는 보호받는 자리에서 스스로 걷는 자리로 이동하고, 나는 누군가를 보내는 자리에서 나 스스로 나아가는 자리를 동시에 바라보게 되었다. 세 개의 졸업이 만난 이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졸업을 슬픔이나 두려움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러본다.


아쉬움보다 기대감으로. 머무름보다 설렘으로.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문을 열고 나아갈 것이다. 오늘 내 앞의 아이가 그랬듯, 내가 배웅한 수천 명의 제자가 그랬듯,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그러하듯. 아주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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