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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Dec 28. 2023

챗GPT 때문에 대박 난 카리브해 섬나라

앵귈라(Anguilla)를 아시나요?

카리브해에 위치한, 인구가 채 2만 명이 되지 않는 영국령 섬나라 앵귈라(Anguilla). 웬만한 지리 덕후들도 들어본 적이 없는 섬나라이다. 아래 구글 지도를 보면 앵귈라라는 글자가 보일 것이다. 이 세 글자가 섬의 영토보다도 크다. 도미니카와 푸에르토리코의 위치를 통해 앵귈라라는 섬나라가 카리브해에 있구나 정도만 겨우 파악할 수 있다. 주변에 위치한 여느 섬과 같이,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지만 주변에 워낙 유명한 관광지들이 많아 우리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는 섬. 앵귈라.


(좌) 앵귈라의 위치 / (우) 앵귈라의 해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또한 앞으로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들을 기회가 없었을 법한 앵귈라라는 섬나라가 인공지능 업계에서 종종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ai 라는 도메인 때문.




인터넷이 보급되며 각 국가들은 두 글자로 된 알파벳 도메인을 지정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kr'을, 영국은 '.uk', 일본은 '.jp' 라는 최상위 도메인을 할당받았다. 앵귈라 역시 마찬가지로 1995년 '.ai'라는 도메인 주소를 할당받았으며, 이후 '.ai' 도메인을 관리하고 있다.


인터넷 초창기 시절 국가 도메인은 특정 웹사이트가 어느 국가 소속인지 알리기 위해 사용되었다. 'co.kr' 주소만 봐도 한국 회사(company) 웹사이트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도메인의 주목적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메인은 회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곳이 역시나 영연방의 일원인 오세아니아 폴리네시아 지역에 위치한 섬나라 투발루(Tuvalu)이다. 


투발루는 인터넷 세상에서 국가 자체보다 도메인이 더 유명한 흔치 않은 국가이다. 국가 도메인이 텔레비전의 약자와 같은 '.tv'이기 때문에 TV 산업의 많은 기업들이 투발루 도메인을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투발루 재정의 상당수를 '.tv' 도메인을 판매한 수익금이 차지하고 있다. '.tv'로 가장 유명한 기업은 바로 인터넷 스트리밍 기업 트위치로, 'twitch.tv'가 그들의 대표 도메인이다. 


(좌) tv 도메인으로 유명한 투발루 국기 / (우) tv 도메인을 활용하는 유명 기업 트위치


투발루와 비슷한 섬나라이지만 도메인 열풍 수혜를 받지 못하던 국가 앵귈라. 그들의 인생, 아니 국생이 역전된 것은 다름 아닌 챗GPT 열풍이다. 2022년 11월 챗GPT 등장 이후 인공지능 기업들이 다수 등장하게 되고, 이들 기업은 '.ai'라는 도메인을 탐내게 된다. 앵귈라의 국생역전이 시작된 것이다.


앵귈라의 한 해 GDP는 약 3억 달러라고 한다. 이에 반해, 2023년 앵귈라가 '.ai' 도메인을 판매하여 얻은 수익은 약 3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도메인이 나라 전체 수익의 10분의 1을 담당하는 셈이다. 이로 인해 현재 앵귈라는 관광 공식 웹사이트를 도메인 판매 사이트로 대체하였다. 


유명 인공지능 업체인 스태빌리티와 캐릭터닷AI는 이미 '.ai' 주소를 활용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론칭한 인공지능 기업 X와 빅테크 기업인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ai' 주소를 선점하고 있다. 과거 닷컴 열풍처럼 닷에이아이 열풍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앵귈라라는 대부분이 처음 들어본 국가는 돈방석에 앉을 일만 남았다. 


도메인을 판매하는 앵귈라 관광 공식 웹사이트


물론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산업의 침체로 '.ai' 도메인 시장 역시 몰락할 수 있다는 예측을 한다. 또한, 닷에이아이를 놓고 과거 닷컴 붐 초기처럼 많은 논란과 소송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럼에도 닷에이아이 열풍은 앵귈라라는 작은 섬나라에 내려온 구명줄과도 같다. 관광 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인구 2만도 안 되는 이 국가는 코로나-19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때 등장한 챗GPT와 닷에이아이 열풍. 실제로 닷에이아이 도메인 등록 수는 전년 대비 두 배 정도 늘었으며, 향후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함께 성장할 앵귈라의 미래는 어떨지 지켜보는 것도, 인공지능 시대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우리나라 도메인인 '.kr'을 쓰는 외국 기업이 혹시 있을까?


바로 플리커(flickr)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생소하지만 외국에서 많이 쓰는 사진 공유 SNS로, 플리커의 단축 도메인 주소가 바로 'flic.kr' 이다. 다만, 플리커 서비스 점유율이 점점 떨어져 도메인 수익은 미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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