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통해 파악해 본 AI 낙관론과 비관론
2024년도의 노벨상은 인공지능을 둘러싼 이야깃거리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을 둘러싼 수상들이 더 흥미로웠다. 본 브런치에서 이전에 포스팅한 것처럼,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이 인공지능과 관련된 연구에 수여되었다는 점은 이제 인공지능이 주류 기술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인공지능과 관련이 없는 듯, 하지만 또 밀접한 분야라고 볼 수 있는 경제학 분야에서도 인공지능과 나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다론 애스모글루(Daron Acemoglu) 교수는 MIT의 저명한 경제학자이다. 그는 정치 제도와 경제 발전의 관계를 연구한 공로로 명성을 쌓았으며, 그 결과 노벨 경제학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국내에는 이번에 함께 상을 수상한 제임스 로빈슨 교수와 집필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서적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또 다른 학자인 사이먼 존슨 교수와 쓴 <권력과 진보>라는 책도 대표 저서로 꼽힌다.
정치경제학 분야의 대가로 알려진 애스모글루 교수는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대한 경계론을 제기하는 대표 학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인공지능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을 했지만, 기술적 진보가 반드시 경제적 또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 지적해 왔다. 빅테크 기업이 주도하는 개발 방향도 문제이며, 노동 시장에도 악영향을 발생시킬 것이라 우려 섞인 의견을 줄곧 개진해 온 애스모글루 교수.
최근에는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통해,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며, 수백억 달러가 넘는 인공지능 투자 중 상당 부분이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라 경고하기도 하였다. 그는 인공지능 기술이 향후 10년 동안 실제로 차지하게 될 경제적 비중은 크지 않을 것이라 언급하며, 충격적인 예언도 하나 한다.
"향후 10년 동안 AI 기술이 기존 업무 중 단지 5% 정도만을 대체하거나 보조할 것"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로 그의 인공지능에 대한 비관론이 다시금 화두에 올랐지만, 그는 올해 4월 발표한 논문 <The Simple Macroeconomics of AI>에서 이미 인공지능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한 바 있다. 이 논문에서 애스모글루 교수는 인공지능이 향후 10년간 미국의 총 요소생산성(TFP)을 단 0.5%만 증가시키고 GDP는 고작 0.9% 증가시킬 것이라 예상했다. 이는 골드만 삭스가 예상한 수치와 큰 차이를 보인다. 골드만 삭스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미국의 생산성은 향후 10년간 9.2% 증가, GDP는 6.1% 증가한다는 예측을 발표했다. 이 수치는 애스모글루 교수가 예측한 수치와 상반되는 결과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2024년에 발표되었다는 점 하나뿐이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인공지능으로 기대되는 생산성 향상과 경제적 이익이 예상만큼 빠르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와 같은 기업들이 GPU를 기반으로 하는 데이터 센터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만, 이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결국 수익성 실현이 되지 않으면 인공지능에 대한 시장의 열기가 갑자기 식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인공지능에 대한 열기는 가라앉고 일부 응용 분야가 실제 업무에 활용되는 정도로 자리 잡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는 인공지능의 밝은 미래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 시나리오가 그가 꼽은 그나마 낙관적인 상황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가장 비관적 시나리오로, 인공지능 열풍이 2025년까지 이어지다 주식 시장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미국 주식 시장을 이끄는 빅테크 기업의 주가는 폭락을 거듭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의 경우, 투자자와 경영자가 인공지능에 환멸을 느껴 '인공지능의 겨울'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일자리 관련으로, 인공지능이 어떤 효과를 낼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업들이 인력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했을 때 벌어질 일이다. 이미 인력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했지만, 기술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기업은 깨닫고 다시 인력을 고용하게 된다. 이 시나리오 역시 인공지능 입장에서 밝지는 않다.
애스모글루 교수의 주장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일부 네티즌은 애스모글루 교수의 주장을 '폴 크루그먼의 굴욕'에 비유한다. 이 비유는 역시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1998년에 인터넷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내놓았던 상황을 가리킨다. 당시 크루그먼은 인터넷이 2005년 경이되면 인터넷이 경제에 미친 영향이 팩스 머신보다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인터넷이 전 세계 경제,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일부 비평가들은 애스모글루 교수가 인공지능에 대해 지나치게 회의적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미 인공지능은 다양한 산업에 접목되어 생산성 향상과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그의 주장은 폴 크루그먼의 굴욕처럼 틀릴 수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2024년에 다른 노벨상 부문에서는 인공지능이 휩쓸었다는 점이, 그의 주장을 비판하는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애스모글루의 주장을 단순 회의론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는 인공지능이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지적해 왔으며, 기술 발전 과정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경고도 계속해서 하고 있다. 그의 논지는 기술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며,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 역시 신중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제나 세상은 그렇듯, 낙관론과 비관론 그 중간 어딘가로 흘러갈 것이다. 애스모글루 교수의 주장이 미래에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수년 내에 결판이 날 것이다. 누구의 예측이 옳고 그르다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재미가 있지만, 그보다 인공지능이 불러올 사회적, 경제적 혁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