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 대부, 제프리 힌튼, 존 홉필드 노벨 물리학상 수상
매년 가을이 되면 노벨상으로 세계가 떠들썩하다. 하지만, 이러한 열기에 늘 소외되는 학문 분야가 있다. 바로 컴퓨터 과학이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에는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의 다섯 개 분야만을 명시했기에, 노벨상 수상 부문에 컴퓨터 과학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당연한 게, 컴퓨터 과학은 20세기 중반에야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노벨이 포함시키려야 포함시킬 수 없었다.
거기에 컴퓨터 과학은 매우 광범위한 분야라는 속성도 한 몫했다. 추후 수상 부문으로 추가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론적 연구도 있지만, 실용적 응용이 혼합되어 있기에 노벨상처럼 특정 분야에 국한된 상으로 묶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그래서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는 노벨상과 유사한 권위의 상을 제정했다. 바로 '튜링상(Turing Award)'이다. 튜링상은 컴퓨터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연구자들에게 수여되며,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그리고 2018년 튜링상은 인공지능 기초기술을 개발한 제프리 힌턴, 요수아 벤지오, 얀 르쿤에게 돌아간다. 우리는 이들을 인공지능계의 4대 천왕(나머지 한 명은 앤드류 응)이라 부르며, 이들 중, 딥러닝의 기초를 만든 제프리 힌턴을 인공지능계의 대부(Godfather)라 지칭한다.
인공지능 학계는 노벨상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흘려왔다. 하지만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존 홉필드 프린스턴 대학 교수와 제프리 힌턴 토론도 대학 교수가 수상한 것. 이들은 인공지능, 특히 머신러닝의 기초가 되는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했다는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
노벨 물리학상을 인공지능 연구자, 특히나 힌턴 교수가 받을 것이라 예측한 이는 많지 않다. 본 브런치에서도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가 노벨 화학상을 받을 수 있다는 포스트는 여러 차례 올린 바 있지만, 힌턴을 비롯한 인공지능 연구자가 물리학상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다. 얼핏 생각해 봐도 물리학과 인공지능의 연관성은 떨어져 보이니.
그래서 이번 노벨 물리학상 수상에 대해 일부 논란이 있다. 인공지능 연구가 전통적 물리학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왔으며, 홉필드와 힌턴의 연구가 물리학 발전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또한, 인공지능 기술이 아직 발전 중이며, 이에 따른 여파 역시 현재 진행형이기에 인공지능으로 노벨상을 받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일까. 노벨 위원회는 상당히 고심을 한 듯하다.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힌턴은 누구나 들어본 '대부'이지만, 홉필드라는 이름은 금시초문인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의 시작을 알린 사람에게 노벨상을 준다면 힌턴과 함께 튜링상을 수상한 르쿤이나 벤지오가 먼저 리스트에 올랐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노벨 위원회는 인공지능과 물리학의 접점을 찾기 위해, 더욱 근원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물리학적 원리를 통해 현대 인공지능 기술의 근간이 되는 이론을 창시한 홉필드와 이를 발전시켜 현대의 딥러닝 기술을 완성시킨 힌턴이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홉필드의 이름이 낯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공을 공부하며 '볼츠만 머신'은 다들 한 번씩 들어보게 된다. 볼츠만 머신을 만든 것이 힌턴이며, 볼츠만 머신은 홉필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발전된 모델이다. 즉, 홉필드의 연구에서 볼츠만 머신이 나온 것이고, 볼츠만 머신이 더욱 발전해서 심층 신경망이 되고, 오늘날의 딥러닝까지 오게 된다.
홉필드는 패턴을 저장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네트워크, '홉필드 네트워크'를 개발한다. 원자의 스핀 개념을 활용하는 물리학 이론을 네트워크에 적용했고, 이것이 물리학과의 접점을 가지게 된 부분이다. 힌턴은 홉필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볼츠만 머신을 만들게 된다. 좀 더 확률과 통계에 집중한 모델로, 컴퓨터에 활용할 수 있게 이진(binary) 기법도 도입한다. 볼츠만 머신의 목표 역시 주어진 데이터에서 특징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홉필드 네트워크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볼츠만 머신은 더 유연하고 강력한 학습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1986년 힌턴은 역전파(backpropagation) 알고리즘을 제안하며 볼츠만 머신을 발전시키고, 2000년대에는 심층 신경망을 만들면서 머신러닝, 아니 딥러닝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엘런 문스 노벨 물리학상 위원장은 "학습할 수 있는 인공신경망의 발견과 응용은 물리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들 연구는 통계물리학 개념을 활용했으며, 현재 인공지능 연구는 입자물리학, 천체물리학 등 다양한 물리학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노벨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물리학의 범주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과 과학 연구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 언론에 함께 오르내리는 내용은 제프리 힌턴과 존 홉필드 모두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협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프리 힌턴은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3년 5월 구글을 퇴사하며, 인공지능이 위험하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그는,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의 오용에 대한 위험을 크게 강조하고 있으며, 자율무기 시스템과 같은 활용처에서 발생하는 위험성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예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경고도 하고 있다.
존 홉필드 역시 인공지능의 통제 불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통제할 수 없고 한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함을 느낀다고 언급한 그는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통제사회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두 수상자 모두 인공지능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 인지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안전성과 통제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강조하는 이야기이다.
제프리 힌턴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것이라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막상 수상을 하니 인공지능 시대를 상징하는 이정표로 많은 이들이 받아들였다. 인공지능이 물리학이 맞냐는 논란은 있지만, 노벨상이라는 위엄에 걸맞은 수상자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공지능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충격이 가라앉고 있을 무렵. 또 하나의 큰 뉴스가 터져버렸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언론에서도 클릭 수를 위해 띄워주었던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만 것.
제프리 힌턴 교수는 제가 쓴 <1일 1단어 1분으로 끝내는 AI공부>에 나오는 100가지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일 정도입니다. (14번 꼭지가 제프리 힌턴 교수만을 다루고 있을 정도이죠) 또한, AI로 세상 읽기라는 책 속의 작은 부록 코너 중 하나가 '인공지능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로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책의 다음 버전이 나올 때면, 힌턴 교수 꼭지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는 내용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고, 알파폴드가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내용 역시 수정이 되어야겠네요. 하루하루 변화하는 인공지능 세상이라 수정할 것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