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 종목에 도입되는 AI 심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체조 개인종합 종목에서는 지금 봐도 믿기지 않는 오심으로 금메달의 주인공이 바뀌게 된다. 오심으로 억울하게 금메달을 빼앗긴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양태영 선수. 국내에서도 당시 오심으로 인한 논란이 많이 보도되었고, 많은 이들은 아래 움짤과 같이 미국의 폴 햄이라는 선수가 큰 실수를 했음에도 고득점을 받아 금메달을 가져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실상은 더욱 심각했다.
체조 개인종합은 6가지의 체조 종목의 점수를 모두 합산해서 결과를 내는 종목으로 체조의 꽃이라 불린다. 6개 종목의 점수를 합산할 결과 미국의 폴 햄과 대한민국의 양태영의 점수 차이는 불과 0.049. 이렇게 보면 아쉽게 졌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양태영 선수의 기술 점수가 잘못 기재된 것.
양태영 선수는 평행봉 종목에서 기본점수 10점짜리 기술을 했음에도 9.9의 점수만 받는 결정적 오심이 발생한다.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정상적으로 채점이 되었다면 양태영 선수는 폴 햄 보다 점수가 앞서며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심판의 실수로 금메달이 눈앞에서 강탈당한 것이다.
이후 오심을 한 심판들은 자격정지 중징계를 받지만, 이미 시상식은 끝난 후라 메달의 주인공은 그대로인 채로 아테네 올림픽은 막을 내린다. 공정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올림픽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이후에도 올림픽에서는 크고 작은 오심 파동이 일어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은메달을 받은 사건도 이러한 오심 범주에 들어간다. 체조나 피겨스케이팅과 같이 심판이 주관적으로 점수를 주는 종목에서는 늘 판정시비가 일어나곤 했다.
체조 팬들은 이를 '레오타드 편향(leotard bias)'이라 부른다. 선수들이 입는 레오타드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나라의 선수들이 타 국가의 선수들보다 점수를 더 잘 받는다고 팬들은 주장한다. 심판들은 이를 부인하지만, 심판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인 편향이 채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심판의 판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비단 국적뿐만 아니라 체형이나 피부색과 같은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계속되는 오심 논란에 힘들어하던 체조계는 다른 종목보다 빠르게 AI 심판을 도입했다. 2023 세계선수권대회부터 체조 전 종목에 도입된 판정지원시스템(Judging Support Sysem, JSS)은 2024 파리 올림픽에도 활용된다. 드디어 올림픽에 AI 심판이 활약하게 된 것이다.
체조의 AI 심판인 JSS가 완전 전면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파리 올림픽의 체조 경기에서는 우선 인간 심판이 채점을 하고, 선수가 이의 제기를 하거나 심판들의 의견이 나뉘게 되면 JSS가 나서게 된다.
JSS는 선수들의 연기 영상과 채점 규칙을 학습하였다. 그리고 체조 기구에 배치된 고화질 카메라를 이용하여 선수들의 연기를 분석한다. 분석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관절의 위치이다. 이를 통해 선수들이 수행한 기술이 규칙과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지 분석하여 채점이 된다.
JSS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체조계에서 늘 벌어지던 판정시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하고 있다. 현재 판정 체계는 심판들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심사 과정이 공개되지 않기에 코칭 스태프들과 선수들은 점수에 불만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인공지능 심판인 JSS가 도입이 되면 투명한 점수 산정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 서두에 언급한 '레오타드 편향'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 역시 높다. 우선 인공지능 심판이 100% 정확하다는 보장을 할 수 있냐는 것이 반대 측 주장이다. 실제로 파리 올림픽에 도입되는 인공지능 심판인 JSS는 인간 심판과 비교해 약 90%의 정확도를 보이고 있고, 평균대 등 일부 종목의 복잡한 연기에 대해서는 심사를 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직 인공지능 심판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인간 심판과 함께 심사를 하고 있다.
또 다른 반대의 목소리는 인공지능 심판이 예술성을 평가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시곗바늘을 과거로 돌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으로 가보자. 루마니아의 14살 소녀 나디아 코마네치는 이단평행봉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친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기술을 뛰어넘는 예술성에 모두가 감탄을 했다.
하지만 전광판의 점수는 단 1.00. 코칭 스태프들이 어리둥절해하며 항의를 하려는 찰나, 심판은 손가락을 열 개 편다.
10점 만점이라고!
완벽은 없고 만점은 불가능하다고 여겼기에 당시의 전광판은 9.99까지만 표시가 가능했다. 즉, 심판은 코마네치에게 10점 만점을 주었지만 전광판의 한계로 1.0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한 것. 이는 올림픽 체조에서 나온 최초의 만점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긴 그녀의 10점 만점 연기. 하지만 그녀의 연기는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착지 당시 발을 약간 움직인 것. 하지만 예술성에 줌점을 둔 판정으로 그녀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만점을 받은 선수로 영원히 회자된다.
만약 당시 올림픽에 인공지능 심판이 도입되었다면 그녀의 연기는 만점을 받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