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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피포 Apr 22. 2024

축구 감독을 AI가 할 수 있을까?

딥마인드, AI를 이용한 코너킥 전술 개발

스포츠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감독이다. 감독이 어떤 전술을 쓰느냐에 따라 팀의 성패가 좌우된다. 특히, 축구는 소위 말하는 감독 빨을 많이 받는 스포츠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기사 작위까지 받은 명장, 알렉스 퍼거슨 경이 은퇴한 이후, 부임하는 감독마다 삽질을 거듭하며 팀은 몰락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최대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는 석유 재벌 만수르가 팀을 인수하고도 한동안 우승을 잘하지 못한다. 그러다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이후, 우승을 밥먹듯이 하는 유럽 최고의 팀으로 거듭나게 된다. 팬들에게 호불호는 갈리지만 펩은 현역 감독 중 가장 많은 트로피를 수집한 명장이자, 21세기 현대 축구의 근간이 되는 전술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축구계에는 시대마다 사랑받는 전술이 있다. 잉글랜드의 '킥-앤 러시'를 기반으로 한 4-4-2부터, 네덜란드의 '토털사커',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 등은 시대를 풍미한 전술이다. 이들 전술을 기반으로 4-4-2, 3-5-2, 4-2-3-1, 4-3-3 등 포메이션 전술이 21세기 초반까지 널리 활용된다.


그러던 와중, 2010년대부터 축구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전술이 등장한다. 메시-이니에스타-사비가 주축이 된 FC 바르셀로나를 이끌던 펩 과르디올라는 소위 말하는 '티키타카' 전술로 전 세계를 지배한다. 많은 이들은 펩의 전술이 패싱을 기반으로 만들어가는 축구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간에는 '포지션 플레이'가 있었다.


격자로 공간을 나눈 후, 그 공간에 간 선수는 공간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포지션 플레이'


펩이 전술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고 평가받는 것은 선수의 역할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공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4-4-2, 4-3-3과 같이 선수를 역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의 공간에 역할을 부여하고 그 공간에 위치한 선수가 그 역할을 하도록 역발상을 한 것이다. 또한, 펩은 한정된 운동장 공간 위에 우리 선수를 상대방보다 많이 배치하고, 포지션적으로 우위를 만들도록 전술을 만든다.


스페인 국가대표팀과 FC 바르셀로나는 포지션 플레이를 기반한 티키타카로 전 세계 축구계를 접수한다. 그리고 펩은 독일의 최고 명문팀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 펩의 최고 라이벌을 만나게 된다.


바로 당시 도르트문트의 감독이었던 위르겐 클롭이다.


두 전술 천재의 대결, '펩클라시코'


펩이 이끄는 뮌헨의 '티키타카'를 깨기 위해 클롭은 '게겐 프레싱'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성공으로 펩의 축구가 정답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던 시절. 펩의 축구를 깨기 위해 '안티풋볼'과 같은 수비지향적 전술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펩에 제대로 대항한 전술은 바로 게겐 프레싱이었다. 게겐 프레싱이란 강한 전방 압박으로 볼을 탈취하고, 빠른 포지션 전환으로 다이렉트 공격을 하는 방식이다.


티키타카와 게겐 프레싱, 포지션 축구와 압박 축구를 전 세계에 유행시킨 두 주인공은 무대를 영국으로 옮겨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을 각각 이끌며 현재도 열심히 경쟁을 하고 있다. (아쉽게도 클롭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리버풀에서 사임) 둘은 서로를 이기기 위해, 서로의 철학에 대응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며 새로운 전술을 끊임없이 만들어간다. 이 둘의 라이벌 대결로 현대 축구의 흐름이 크게 뒤바뀌었다.


이렇듯 천재 지략가들이 축구장이라는 무대를 기반으로 전략 싸움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낄끼빠빠를 모르는 AI가 축구 전술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로 유명한 알파고(AlphaGo)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는 리버풀과 다년간의 협업을 통해 개발한 택틱AI(TacticAI)를 공개하였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택틱AI는 득점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코너킥 상황에 주목하여, 코너킥 전술을 제안하고 있다.


택틱AI는 우선 주어진 코너킥 전술이 실제로 행해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한다. 예를 들어, 누가 공을 받고, 슛 시도가 가능할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예측 결과가 나오면 이를 기반으로 공격과 수비 관점에서 슛 시도의 확률을 높이거나 줄이기 위해 선수를 어떻게 배치할지를 제안한다.


이러한 택틱AI를 만들기 위해 딥마인드는 리버풀에서 제공한 코너킥 데이터셋 7,167개를 기하학적 딥러닝(Geometric deep learning) 기법으로 학습했다. 선수들의 움직임은 그래프에서 노드로 표현이 되고, 신경망의 메시지 전달을 통해 노드를 업데이트시킨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코너킥 조합을 적용하여 코너킥의 결과를 예측한다. 최종적으로 누가 먼저 공을 받는지, 슛이 이뤄질 것인지, 어떻게 전술을 조정할 것인지를 결과물로 출력하게 된다.


택틱AI의 학습 방법


택틱AI가 제안한 코너킥 전술은 구체적이다. 아래 그림에서 왼쪽 'Reference'는 원 데이터이고, 오른쪽은 택틱AI가 제안하는 코너킥 전술이다. 자세히 보면 골키퍼의 위치가 달라져 있거나, 기존 수비수의 움직임과 다른 움직임을 추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택틱AI가 제안하는 코너킥 전술


택틱AI가 제안한 전술은 더 효과적일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실제 경기에서 사용된 코너킥 전술과 택틱AI의 전술을 무작위로 섞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본 결과, 리버풀의 전술 전문가들은 90%의 확률로 원 전술보다 인공지능의 전술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공지능이 만든 전술이 더 유용하고, 실전에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글 서두에 살펴본 천재 감독의 지략 대결은 더 이상 볼 수 없을까? 축구도 바둑처럼 인공지능의 전술이 활용되는 시대가 올까?


미래를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당분간은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포츠 특유의 물리학적 움직임은 아직 컴퓨터가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고, 심리학적 요인도 중요하기에, 여전히 인간이 전술을 짜는데 주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공지능은 노련한 전문가들이 미처 보지 못한, 혹은 기존 고정관념으로 찾지 못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실용적이고 정확하면서, 때로는 허를 찌르는 전술적 통찰력을 인공지능은 제공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스포츠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인간의 전문 지식과 인공지능의 분석 능력이 혼합되어 인간미는 있지만 더 세련된 스포츠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펩과 클롭 자리에 인공지능만 위치해 있는 미래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텐 하흐 자리에는 인공지능이라도 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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