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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Aug 10. 2023

<가오갤 3>와 추억의 밴드 음악

추억의 노래가 좋은 나이

아기 키우는 가정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영화관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아이가 태어나기 전 '기생충' 이후 영화관을 찾지 못했다. 이후 코비드 팬데믹도 있었고, 임신과 육아의 과정이 있어 영화관 가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 이제 아기가 커서 어린이집에 가고 나서야 겨우 시간을 내서 영화관을 갈 수 있었고, '기생충' 이후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범죄도시 2'였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영화관을 찾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주중에는 둘 다 회사를, 주말에는 육아를 하다 보면 영화관 찾는 것은 여전히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찾은 대안은 바로 일요일 오후 집에서 영화 보기. 일요일 아이 낮잠을 재우고 나면 생기는 2시간의 여유. 우리도 낮잠을 자고 싶지만 이때 아니면 영화를 볼 수 없단 생각에 매주 IPTV의 영화 메뉴를 뒤적이며 일용할 영화를 찾는 건 주말의 루틴이 되었다. 


지난 주말 우리는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을 함께 시청하였다. 이미 개봉한 지 시일이 된 영화라 뒤늦게 감상평 한 스푼 끼얹는 건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건 영화 오프닝 장면 때문이다. 가오갤 시리즈의 주인공 중 하나인 라쿤 '로켓'이 라디오헤드(Radiohead)의 Creep을 따라 부르며 천천히 걸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로켓이 걸어가며 이야기하는 Creep은 보통의 라쿤과 다르게 살아온 로켓의 자조 섞인 심정을 대변하고 있어 마음을 심하게 울린다. 영화 마지막의 실험실 동물들과 마주하는 로켓의 장면과 오버랩이 되며 감동을 배가시켜주기도 한다. 먼저 라디오헤드의 acoustic 버전 Creep이 입혀진 장면부터 함께 보자. 




'가오갤 3'은 평도 흥행도 모두 잡은 영화이다. 최근 마블 영화들의 부침이 심해지며 마블 유니버스에 대한 피로도가 쌓여가는 와중에도, 가오갤 3의 흥행 및 평가는 여전히 좋다. 스토리도 영상도 흠잡을 데 없지만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추억의 올드 팝이 적재적소에 반영이 되어 더 몰입하게 한다는 점이다. 지난 2편에서 '욘두'가 전달해 준 MP3 플레이어에는 다양한 시간대의 명곡들이 들어있다. 첫 장면에서는 로켓이 듣는 Creep이 나오며 로켓의 서사를 더 진하게 만들어주고, 이후에도 추억의 명곡들이 MP3를 빌려 나오며 관객들의 추억과 감성을 자극하며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더하게 해 준다. 


영화를 다 보고 재미도 재미지만 추억의 팝들이 듣고 싶었다. 특히 학창 시절을 함께 해준 밴드들의 음악이 듣고 싶었다. '유튜브 뮤직'에 들어가 라디오 헤드의 Creep을 찾아 재생을 해본다. 유튜브 뮤직을 비롯하여, 서구권에서 인기인 'Spotify'와 같은 서비스들이 최근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을 하나만 재생을 해도 이와 유사한 음악을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추천을 해주는 것이다. 역시나 유튜브 뮤직은 유사한 음악들을 추천해 준다. 'Coldplay', 'Muse', 'Nirvana', 'Oasis' 등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로 즐겨 듣던 밴드 음악들이 오랜만에 반겨준다. 수동으로 과거의 노래를 찾았다면 누락되었을법한 잊고 살았던 밴드와 노래들도 재생이 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과거와의 만남은 마치 타임슬립이라도 한 것처럼 과거의 추억까지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과거의 향수를 찾기 위해 최신 인공지능 서비스의 도움을 받는 아이러니는 있었지만.


얼마 전 인공지능의 추천 서비스가 만들어주는 편향에 대한 우려의 글을 쓴 바 있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명과 암이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애용하는 서비스에 장착된 인공지능은 이렇듯 우리에게 편리한 기능을 마구 제공해 준다. 대신 우리를 유튜브의 세상에 갇히게 하고 우리가 원하는 정보만을 유튜브가 취사선택해 준다는 문제가 있을 뿐. 오늘은 이렇게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과거 추억에 빠져있지만, 그럼에도 늘 이건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판이야 하는 경각심은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둔다. 




오랜만에 들은 밴드 음악은 여전히 좋다. 요즘 아무리 좋은 음악을 듣더라도 예전만 한 감흥은 없다. 과거에 듣던 마음을 울리는 발라드나 신나는 90년대 댄스 음악, 허세 가득한 2000년대 초반 국내 힙합까지는 지금 들어도 마음이 동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요즘의 힙합이나 EDM, 그리고 아이돌 음악들은 예전만큼 마음이 반응하지 않는다. 요즘 음악은 살짝 의무감으로 듣는 느낌?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 어떤 지금의 명곡도 10대 시절 듣던 노래보다 못하다고. 그 이유는 뇌과학과 신경과학과 연관이 있다. 우리가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뇌가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뇌에서 나오는 신경화학물질은 노래를 좋아하면 할수록, 더 많이 나오게 된다. 음악은 이렇게 신경계를 자극하게 되는데 자극의 반응 정도가 젊을수록 크다. 10대의 뇌는 급속한 신경 발달 과정을 겪게 된다. 이때 들은 노래들은 성장하는 뇌의 신경과 연결이 되고 고양된 감정에 대한 강력한 기억을 남기게 된다. 


심리학에서도 10대 시절 듣던 노래가 더 마음에 남는 이유를 학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심리학자 피터 자네타는 10대 시절 듣던 노래는 인격이 형성되던 시기에 감정적인 기억과 단단하게 묶이게 된다는 '회고 절정(reminiscene bump)' 개념을 제시하였다. 청소년기 기억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기억이고 이때의 기억은 자아 형성에 기여하게 된다. 음악은 이 과정에서 기억과 동조가 된다. 10대 시절의 다양한 경험에 더해진 그때의 음악은 일종의 배경음악이 되어 그 감정과 함께 우리의 기억에 또렷이 남게 된다. '음악의 뇌: 집착의 과학'의 저자 대니얼 레비튼은 10대 때 듣던 음악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처음으로 내가 음악을 골라서 듣게 되는 시기죠. 친구를 통해서 노래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너와 내가 같은 집단에 속해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친구가 듣는 노래를 듣기도 하죠. 그런 경험 때문에 특정 노래가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조금 슬프기도 하다. 10대 시절 음악을 들으며 받았던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없다는 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10대 시절 음악을 듣기만 해도 우리는 그때의 추억으로 돌아갈 수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다시는 오지 않는 찬란한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오늘 듣고 싶은 음악이 있을까요?




'가오갤 3'은 2시간 30분이 넘는 영화이다.

결국 영화가 끝나기 약 1시간 전 우리 집의 31개월 차 악동 라쿤이 깨어났다. 


스토리도 모르면서 한참을 같이 보더니 영화가 끝나고 얘기한다.


너구리 싫어. 다람쥐 좋아


가오갤 3의 주인공 라쿤(너구리) 로켓은 어디서 나온지 모르는 다람쥐에게 의문의 1패를 당하며, 우리 가족의 영화 관람은 마무리된다. 


PS) 놀랍게도 극중에서 너구리 로켓은 여러 번 다람쥐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 아이가 영화 내용을 이해했을리는 없고, 극중에서도, 우리아이에게도 너구리를 보면 다람쥐가 떠오르는 유사성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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