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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걱정쟁이 Jun 28. 2021

최근에 읽은 책들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 '오베라는 남자' '피크 재팬'

 최근에 책 3권을 다 읽었다. 책을 수집하듯이 사들이고 정작 다 읽지는 못하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다. 드문 일이니까 감상을 짤막하게 남겨 책을 읽었다는 흔적을 남겨야지. 기록용으로 남기는 것이므로 스포일러 여부를 신경쓰지 않고 막 적는다. 혹시라도 이 글을 접하게 된 네티즌들이 있다면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1.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송경화 지음)

 한겨레 송채경화 선배가 쓴 소설. 연차가 나보다 많이 높으신 분이라 면식은 없지만 신문을 볼 때 종종 바이라인을 봤던 기억이 있다. 기자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매체는 '피노키오' '허쉬' 등 종종 나오지만 자세히 본 적은 없다. 김훈의 '공무도하'는 내가 이력서 자기소개에까지 적은 책이지만 사실 기자라는 직업에 초점을 맞춘 책은 아니고. 그래서 각 잡고 읽은 기자 소설은 이게 처음이다. (여담이지만 허쉬는… 우연히 본가에 가서 마침 방영하고 있던 걸 10분 정도 본 다음 오글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TV가 있는 안방에서 도망나오고 말았다)

 사실 이 소설을 사서 읽기 전에 우연히 회사 선배 한 명을 만났는데, 내가 이 책을 들고 있는 걸 보더니 "뻔하다고 하더라"고 했다. 책을 읽어보니 왜 그런지는 알겠다. 리얼한 부분도 물론 있지만 뭐랄까, 한겨레신문 기자는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겠구나, 라는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느낌.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은 자기소개서에서 기자가 되려는 이유를 "죄송할 일이 많은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덜 죄송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주인공은 자신이 쓴 기사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낫게 바뀔 것이며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몰입이 잘 안 되더라. 애초에 나는 신문사 입사를 준비할 때부터 이미 기자로서의 사명감이나 정의감 따위 없었을뿐더러, 기사를 쓰는 것에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여러 곳 있었다. 미담 기사를 썼다가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게 되자 외면하게 되는 심리, 취재원 말을 성급하게 믿고 발제를 했다가 데스크의 냉정한 한 마디에 킬당했을 때의 기분 등등. 다만 나는 읽는 내내 주인공이 기자로서 여러 분야를 취재하며 느끼는 정서나 감정이 다소 과잉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 내가 기자라는 직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것일 수도?


2.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프레드릭 배크만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계기가 된 소설이라고 알고 있는데 나는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먼저 읽었다. '베어타운'과 후속작인 '우리와 당신들'인데 나는 작가의 글 쓰는 스타일이 참 마음에 들었더랬다. 짧은 문장으로 삶에 대한 통찰을 알기 쉽게 서술하는데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그녀가 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지 몰라도 직선적이고 논리적이다. 부모 노릇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직장에서는 모든 걸 제대로 하면 일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데 엄마 노릇에서는 온 우주의 모든 걸 백 퍼센트 올바르게 해도 소용없다. 그래도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인간은 군집의 동물이라는 발상이 워낙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우리들 대다수가 단체 생활에 젬병이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우리들 대다수가 협동을 모르고, 이기적이며, 무엇보다도 남들이 싫어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되뇐다. '나는 훌륭한 팀 플레이어'라고. 거기에 따르는 대가는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스스로 그렇게 믿을 때까지 계속 되뇐다.


('베어타운' 중 일부)


 두 작품은 분위기 자체가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하지만 '오베라는 남자'는 그 반대다. 주인공 오베는 게딱지가 단단하게 틀어박힌 변기(내 회사 동기의 실제 경험담이다)만큼이나 꽉 막힌 인물이라고 평가해도 다들 이견이 없을 사나이다. 하지만 그가 새로운 이웃들과 함께 좌충우돌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늘 유쾌하다. 

 작가는 오베의 이야기를 크게 두 줄기로 나눠 서술한다. 오베라는 남자가 새로운 이웃들을 만나 골머리를 썩으면서도 그 자신의 방식대로 관계를 맺어가는지를 다룬 현재 시점이 하나다. 오베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 '오베라는 남자'가 됐고, 평생의 반려 소냐와 어떻게 만났으며 그간의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왔는지를 다루는 과거 스토리가 다른 하나다. 유쾌한 분위기의 현재와 썩 밝지만은 않은 과거가 하나로 맞물려 오베라는 남자를 형성한다.

 꼰대들이 사는 왕국이 있다면 분명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자가 됐을 오베가 주인공이라선지 주변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경박해 보인다. 트레일러 하나도 제대로 후진할 줄 모르는 패트릭, 여자친구의 패악질을 두 손 놓고 바라보는 앤더슨, 대뜸 문을 두들기고는 남편이 병원에 실려갔는데 택시나 버스를 잡을 수가 없으니 당신 차로 병원에 데려다 달라는 파르바네 등등. 하지만 이들 모두 나름의 장점이 있고, 결국 오베도 서툴게나마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결국 오베는 꼰대지만 자신이 꼰대인 걸 아는 꼰대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회 생활'이란 걸 하다 보면 이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3. 피크 재팬(브래드 글로서먼 지음)

 나는 문학과 비문학 중에선 문학을 압도적으로 선호하지만 그래도 소설만 읽을 순 없다는 위기감이랄까 부채감 같은 게 마음 한 구석에 있어서 읽다가 던져 둔 이 책을 다시 꺼냈다. 일본에 27년간 머문 저자가 일본의 정계·재계·관계·학계의 다양한 인사들을 인터뷰하며 스스로의 관점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일본이 현재 정점(peak)에 있고 이후 서서히 쇠퇴할 것이라고 본다. 작년 출간 후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의원들에게 한 권씩 돌려 화제가 됐고 여러 일간지에서도 소개가 됐다. 그래서 나도 사서 2장 정도까지 읽다가 묵혀 둔 걸 최근에 다시 꺼냈더랬다 허허.

 워낙 오랜만에 꺼낸 책이라 앞부분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귀찮아서 다시 읽진 않았다. 대충 센카쿠 열도 쇼크, 일본의 정치적 실패(민주당 집권기), 동일본 대지진 등이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은 근본적인 구조 개혁에 실패했는지 등을 챕터별로 소개하고 있다. 

 읽으면서 몇 가지 단상을 다이어리에 따로 적어두기도 했는데… 결국 최근까지 장기 집권한 아베와 그를 계승한 스가 정권은 일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꽤 전통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고 본다. 경제력과 문화적 역량에 기초한 소프트 파워를 통해 2차 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해 온 미국 위주 국제 질서의 강력한 옹호자 또는 감시자 역할이 아닐까 싶은데, 저자는 그걸 설계자(architect)라고 표현했다. 삼국지로 치면 미국이라는 군주를 옆에서 보좌하는 군사 역할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역할을 맡음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행사해 보겠다는 인상을 받는다.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막대한 공적개발원조(ODA)나 TPP 등 국제적 플랫폼을 주도하려는 시도에서도 그렇고.

 문제는 이게 일본 대중들이 원하는 바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건데, 사실 내가 일본의 청년층이라고 해도 그럴 것 같다. 역대급 구인난으로 일할 곳은 넘쳐나고 최저 시급은 기본이 1000엔이다(아마 요즘은 더 올랐겠지). 최저임금 만원을 달성하느냐 마느냐가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는 한국과는 기본적인 상황이 다르다. 먹고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고 어디서든 일을 구해 생계를 꾸릴 수 있으며 여가 시간에는 자신이 원하는 즐길거리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정부가 "일본은 현실에 안주해선 안 된다, 국제 사회의 모범이 돼야 하고 더 진취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외쳐 봐야 누가 그걸 절실하게 받아들이겠나. 고령화가 심각한 상태에서 사회의 동력은 결국 하락할 수밖에 없으며 근본적인 사회 개혁이 일어나기도 어렵다. 결과적으로 1970~1980년대와 같은 일본의 영향력이 다시 나타날 수는 없으며 점차 쇠퇴할 것이라는 저자의 전망에도 설득력은 있다. 

 이걸 타개해 보려고 아베가 추진한 게 도쿄 올림픽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일본의 소프트 파워를 국제적으로 과시하면서 긴 침체기에서 벗어났음을 알리고, 동시에 일본 국민들에게도 국뽕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키게 하려고 했다는 거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코로나 때문에… 망했어요. 저자도 썼다시피 체육 행사 하나에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과도하기도 하고.

 다만 나는 이 책의 핵심은 본문보다는 해제라고 본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이정환 교수님이 쓰신 해제는 저자가 놓치고 있는 부분 몇 가지를 잘 짚어주고 있다. 저자는 일본 경제가 기업과 주주의 이익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식이다 보니 시장 경제 위주의 개혁이 어렵다고 까고 있지만 그게 지난 수십년간 일본 사회를 떠받쳐 온 정서인데 그걸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점차 '생활 보수주의' 쪽으로 흐르고 있는 국민들이, 이후 정치권이 '편협한 민족주의'로 흐를 경우 이를 통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 저자도 이런 걸 책 전반에 걸쳐 언급하고 있지만 해제만큼 명확하게 설명이 되고 있지는 않아서. 그리고 펀쿨섹좌는 나름 유능했다…

 그리고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는데, 이 책은 일본의 피크가 끝났다는 거지 앞으로 일본이 망할 거라는 소리가 아니다. 일본은 여전히 국제 사회의 강대국·선진국으로 남아 있을 거고 늘 한국이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예의주시할 대상일 거다. 다만 그 영향력이 최전성기보다는 좀 약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저자의 생각인 거고.

  끝으로 이 책을 소개하는 언론 보도들은 전반적으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어쩌고저쩌고 하는 문장으로 채워져 있던데 내가 보기엔 글쎄. 한국 사람들은 다들 정부에 불만이 많고 자기 현실에도 불만이 많기 때문에 무엇 하나라도 갈아보고 바꿔보려고 애를 쓴다. 오히려 너무 바꿔대고 그 과정에서 절차나 형식을 개무시해서 문제지 일본처럼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안 돼서 정체될 사회는 아닌 것 같다. 물론 고령화나 출산율 저하 등 사회 구조 문제는 일본과 닮은 구석이 많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한국에 적용할 부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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