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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Jan 09. 2023

휴가

2022-03-01(화)_제시어 글쓰기

제시어

- 스릴러 영화

- 먹다 남은 저녁

- 유약을 발라 구운 검정색 도자기




그는 순간접착제 때문에 망가져버린 도어락을 바라보았다. 열쇠집 사장님이 도어락 부분을 뜯어내고 있었다. 


"하필 오늘이냐."

"괜찮아 오빠. 어쩔 수 없지." 


그녀는 그를 달랬다. 


"아니, 더운데 밖에서 계속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서 그렇지."

"괜찮아. 괜찮아."

"처음으로 우리 집 오는 날인데."

"고비가 있었으니 휴식이 더 꿀맛이 될 거야."

"고마워 자기야." 


열쇠집 사장님이 같은 모델의 도어락으로 교체해 주었다. 


"비밀번호는 초기 번호로 설치해드렸습니다. 아드님이신가 봐요? 저번에도 교체해드렸는데."

"아, 저번에도 오셨었나요?"

"네, 저번에도 같은 모델로 교체해드렸었죠. 요즘 누가 이 동네에서 자꾸 같은 장난을 치나 봐요."

"여기 CCTV를 설치해달라고 건의를 하던지 해야지. 고생하셨어요. 얼마죠?"

"20만 원입니다."

"계좌로 보내드려도 되죠?" 


열쇠집 사장님은 그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다. 잠시 후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떠났다. 열쇠집 사장님이 떠나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이럴 거면, 그냥 호텔을 갈 걸 그랬나 봐. 집 들어가는데 20만 원이나 쓰네."

"이 정도면 저 사장님이 범인 아니야? 이렇게 자꾸 고장내서 손님 모으려고 말이야."

"에이 설마. 그건 너무 티 나지 않나?"

"그치 오빠? 내가 스릴러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맞아 맨날 범인 찾고!" 


그는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집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깨끗하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집이었다. 그와 그녀는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둥그런 거울이 눈에 띄었다. 거울의 테두리에는 불빛이 은은하게 나오고 있었다. 진한 회색의 컵에는 칫솔이 네 개가 꽂혀 있었다. 


"오빠 혼자 사는 거 아니었어?" 


그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응? 나 부모님하고 사는데. 어떤 남자가 혼자 살아 누구야?"

"아, 그건 우리 친오빠인가 보다. 하하" 


그녀는 그의 눈을 피하며 어설픈 웃음을 날렸다. 


"왜 눈을 피해? 누구랑 착각했어?"

"아 배고프다 오빠. 밥 먹자."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머리를 헤집어 놓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아! 진짜! 머리 망가져!"

"괜찮아. 그게 더 귀여워."

"뭐? 내가 얼마나 열심히 머리하고 왔는데! 망가진 게 더 귀엽다니!"

"머리 망가지기 전에는 이뻤고, 망가지니까 귀여워." 


그녀는 그의 배를 주먹으로 슬쩍 때렸다. 그리고는 그의 품에 안겼다. 


"밥이나 먹자 오빠."

"이걸 놓아줘야 요리하지. 거실에 앉아있어. TV 틀어줄게." 


그는 거실의 티브이를 켰다. 


"넷플릭스 틀어줄까?"

"응." 


그는 메뉴를 열어 넷플릭스를 작동시켰다. 


"왜 사용자에 오빠 이름이 없어?"

"아, 이거 동생 계정이야. 동생이 친구들이랑 같이 쓰더라고."

"뭐 볼래?"

"내가 골라볼게."

"그래." 


그는 그녀에게 리모컨을 넘기고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TV 속에 수많은 작품들을 쭉 둘러보았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 오히려 선택이 어려웠는지 그녀는 넷플릭스를 보는 것을 그만두고 집을 구경하기로 했다. 


"오빠! 나 집 좀 구경할게!"

"응." 


그녀는 거실부터 둘러보았다. TV의 오른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베란다가 있었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보았다. 근처에 높은 건물들이 없어 멀리까지도 보였다. 베란다에는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녀는 그의 부모님이 식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나 정성스럽고 이쁘게 관리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다시 거실로 들어왔다. 소파는 노랑색의 세무 재질이었다. 촉감은 부드럽고, 색감은 화사했다. 흰색과 회색이 주를 이루는 집에 확 띄는 노랑색이 있는 것이 생각보다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TV의 왼쪽에는 검정색 도자기가 있었다. 


"오빠! 이 도자기는 뭐야?"

"응? 어떤 거?" 


한참 분주하게 무언가를 찾던 그가 대답했다. 


"오빠 뭘 그렇게 찾아?"

"아니, 소금이 안 보이네. 어딨을까?"

"나도 모르지. 오빠 집이잖아."

"사실, 집에서 평소에 요리를 안 하거든. 그래서 그런 거야."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서는 다시 도자기에 관심을 보였다. 


"집에 도자기 있는 집 별로 못 봤는데. 신기하다. 완전 검은색이네."

"아, 그거? 꽤나 사연이 깊은 도자기야."

"무슨 사연?"

"그건 이따가 밥 먹으면서 얘기해줄게. 얘기가 좀 길어."

"그러지 뭐." 


그녀는 마저 집을 둘러보았다. 거실의 뒤쪽에 있는 방은 딱 봐도 안방 같아 보였는지 그녀는 다른 방으로 향했다. 부엌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여기가 오빠 방이야?"

"응. 그럴걸."

"뭐가 그럴걸이야. 여기 여자 옷만 한가득이구만!"

"응 거기 내 방 아니다. 여기 거실 옆에 여기, 여기가 내 방이야." 


그녀는 방을 나와 거실 옆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오빠 바보야? 자기 방이 어딘지도 몰라 왜."

"아니야. 요리에 집중해서 어디로 들어가는지 몰랐어." 


그녀는 그의 방을 찬찬히 둘러보려 했으나, 뭐 별로 있는 것이 없었다. 책상과 연결된 책장에는 사회복지 전공 서적들이 꽂아져 있었다. 


"오빠! 사회복지도 공부했었어?"

"아니 왜?"

"여기 전공서적들이 많이 꽂아져 있길래!"

"아, 그거 동생 꺼!" 


그녀는 다시 책을 꽂아 두고는 방을 나왔다. 


"자기야! 밥 다 됐어!"

"벌써?" 


그녀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는 뜨거워 보이는 냄비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하얀 김이 확 올라오더니 익숙한 실루엣과 향이 나왔다. 


"짠! 내가 제일 잘하는 요리야."

"아니 라면 끓이는데 소금은 왜 찾은 거야 도대체?" 


그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고는 젓가락을 들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먹어봐 맛은 있어. 이거 무파마야."

"무파마는 못 참지. 근데 오빠. 왜 오빠 방에 동생 책이 꽂혀 있어?"

"아, 나 군대 갔을 때 내 책상 써서 그래. 나도 그래서 그런지 집에 있는 게 썩 좋진 않아.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닌 거 같아서. 뭔가 내 집이 아닌 거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빨리 독립하고 싶은데. 쉽지 않네."

"아 그럴 수 있겠다. 그래서 오빠가 나랑 있을 때 집에 잘 안 들어가려고 하는구나."

"아니, 그건 자기랑 있어서 그런 거지." 


그녀는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라면을 열심히 먹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들어 그에게 말했다. 


"자, 이제 도자기 얘기 좀 해봐!"

"아 저 도자기? 내가 저 도자기를 처음 본 게 아마 6살 때인가? 6살 이전의 기억이 없어서 그때로 기억하는 거 같긴 한데. 시골에서 처음 봤어." 


그는 어릴 때 시골에 갔을 때 처음 저 도자기를 봤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무지하게 아끼는 도자기였단다. 한 번은 자기가 실수로 그 도자기를 떨어뜨릴 뻔했는데, 할아버지가 슬라이딩을 해서 그 도자기를 잡았단다. 


"할아버지께서 슬라이딩을 하셨다고?"

"진짜야. 장난치는 게 아니고, 진짜 할아버지가 슬라이딩을 이렇게 쫙하셨다니까?" 


그는 그 상황을 재연하기 시작했다. 


"봐봐. 이 도자기를 내가 이렇게 하다가 툭 쳐가지고."

"조심해! 진짜 깨지겠어!"

"괜찮아. 시늉만 하는 거야." 


그는 당시 할아버지가 어떻게 슬라이딩을 하는지 라면을 먹다 말고는 최선을 다해 재연했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하고 라면이나 얼른 먹어."

"못 믿겠지? 나도 처음엔 내 두 눈을 의심했다니까." 


그는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평소에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할아버지가 몸을 날리셨다는 점이 더 신기했단다. 


"저게 또 신기한 게, 유약을 발라놔서 약간 광이 나는데. 만져보면 엄청 부드러워."

"만져보고 싶은데, 깨질까 봐 못 만지겠다."

"괜찮아 만져봐도 돼. 내가 슬라이딩해서 잡으면 되니깐.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는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거든." 


그녀는 크게 웃고는 라면을 마저 먹었다. 김치를 집어 맛있게 먹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을 크게 후후 불고서는 한 입에 훅 넣고는 후루룩 후루룩 먹었다. 


"라면 맛있게 먹는다?"

"맛있으니까."

"역시 내가 끓인 라면."

"저녁엔 뭐 먹어?"

"아직 점심도 다 안 먹었는데?"

"또 라면 먹는다고 할까 봐 미리 차단하는 거야."

"이제 내가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으니까. 시켜먹자."

"치맥?"

"오 치맥? 좋은데? 밥 먹고 나가서 맥주 좀 사 와야겠다." 


라면을 먹은 두 사람은 함께 설거지를 했다. 그는 거품을 묻히고, 그녀는 거품을 닦아냈다. 설거지할 것이 많지 않아 금방 끝났다. 


"우리 이렇게 같이 설거지하니까 신혼부부 같다."

"꿈도 꾸지 마. 아직 생각 없으니까."

"아니, 그냥 그렇다는 거지. 너무해. 꿈 정도는 꿔도 되잖아?"

"좋아. 꿈만 꿔."

"그래." 


그는 그녀의 볼에 입술을 살짝 붙이고는 고무장갑을 벗어놓았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고는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오빠."

"응?"

"에어컨 이렇게 빵빵하게 틀어놔도 돼?"

"괜찮아. 전기세 많이 안 나와 우리 집."

"오빠가 돈 안 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 면이 없진 않아. 그래도 집캉스니까. 시원하게 있고 싶으니까. 하루쯤은 괜찮을 거야." 



그는 눈을 떴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긴 치킨은 거실의 작은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의 품에는 그녀가 옅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잠에서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소파에서 일어나 어제 먹은 흔적들을 치웠다. 


"오빠?"

"응 자기야. 더 자."

"이따가 같이 치우자."

"잠이 깨서, 좀 미리 치워 두려고. 더 자." 


그녀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는 다시 집을 치웠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처럼 정리했다. 캔과 페트병은 깨끗이 씻어서 분류해 두었다. 비닐봉지에 쓰레기들을 잘 담아 두었다. 식탁과 거실의 테이블은 어제 사온 물티슈로 잘 닦았다. 설거지해 두었던 그릇들은 다시 찬장과 서랍에 잘 정리해서 넣어두었다. 한참을 정리하다 보니 그녀가 일어났다. 


"참,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 오빠." 


그녀는 그의 뒤에서 그를 안아주었다. 


"고마워 오빠."

"고맙긴. 이제 슬슬 나갈 준비 하자."

"응 같이 씻자."

"아니야. 오늘은 먼저 씻어. 나 정리할 것들이 좀 있어서."

"이따 나와서 같이 정리하자."

"아니야. 먼저 씻어." 


그는 그녀를 화장실로 거의 떠밀어 넣었다. 그녀가 씻고 나왔더니 그가 안방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오빠 뭐 찾아?"

"벌써 다 씻었어? 아니 내 양말을 가끔 아빠 서랍에 넣어두시곤 하거든. 그거 좀 찾느라고."

"대충 아무거나 신으면 되지."

"근데, 뭔가 찾고 싶어서. 그래. 뭐 다른 양말 신자. 나 씻고 나올게."

"응 알겠어." 


그는 씻으면서 화장실을 청소했다. 어제 쓴 그녀의 칫솔, 화장실 바닥의 머리카락 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그때 그녀가 문을 두드렸다. 


"오빠. 다 쓴 수건은 어디다 놔?"

"어? 그거 일단 바닥에 둬. 내가 넣어둘게." 


그는 급하게 씻고 나와서는 수건을 베란다의 건조대에 탁탁 털어서 걸어두었다. 옷을 입고 두 사람은 집을 나왔다. 그는 어제부터 먹었던 쓰레기들을 모두 챙겨 나와 쓰레기장에 버렸다. 두 사람은 차를 세워둔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 오빠 차 키 두고 왔다. 금방 다시 올라갔다 올게." 

그는 급하게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가방은 주고 가 오빠! 무겁잖아."

"괜찮아! 금방 갔다 올게!" 


그는 도어락의 비밀번호 0000을 누르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건전지를 빼서는 가방에서 다른 건전지를 꺼내 넣었다. 도어락의 전원이 켜지지 않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는 문을 닫고 나왔다. 그는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여보. 이거 도어락이 또 안 되네?"

"뭐? 문 안 열려?" 


중년의 여성이 문을 잡아당기니 문이 열렸다. 중년의 남성과 눈이 마주친 중년의 여성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검정색 도자기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은 집 안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누가 우리 집을 왔다 갔나?" 


두 사람은 폭염이 한창이던 때 집에 들어오니 갑자기 확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보. 에어컨을 왜 안 껐어?"

"다 끈 거 확인하고 나갔었는데 어제."

"근데 이게 왜 켜져 있어?" 


두 사람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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