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내가 제일 무서워한 건 '후회'였다. 학구열이 높은 엄마를 따라 또래에 비해 시험도 많이 보고 대회도 많이 나가서 그런지 기대 이하의 결과를 보고 후회하는 게 항상 싫었다.
후회는 이미 일어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붙잡고 '그렇게 하지 말 걸', '이렇게 할 걸' 머릿속으로 무의미한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씨름하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었다.그래서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만들었다.
'무엇이든 과정에 최선을 다해 떳떳하게 임했다면 결과가 어떠하든 그것은 내 실력이니 받아들이고 후회하지 말 것. 떳떳하지 못했다면 후회할 자격이 없는 것이니 후회하지 말 것.'
이 방법은 중학생 때 내 안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열심히 공부한 시험에서 틀린 문제를 봤을 때 과거의 나였으면 '아 이거 다른 거 고를걸.' 후회했겠지만, 이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어진 시험 시간 안에 난 최선의 고민을 했고 확신을 가지고 이 번호를 선택했어. 그게 틀렸다면 내가 정답을 몰랐기 때문이고 공부를 덜 했기 때문이야. 이건 후회할 일이 아니야.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된 일이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았을 때는, '열심히 안 했는데 점수가 이렇게 나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좋은 결과를 바라는 게 양심 없는 거지.' 후회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결과가 안 좋구나.' 데이터를 하나 쌓고 넘어갔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내 인생에 후회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요행을 바라지 않게 되었고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해 스스로에게 떳떳해지려고 노력했다.
놀라운 건 이 태도가 자기확신으로 이어졌다는 거다. 매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시간이 쌓이니'나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어 과거의 나를 의심하거나 추궁하지 않았다. 과거의내가 나름의 이유와 소신을 갖고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에 굳이일어난 일을 곱씹으며머릿속을 헤집지 않는다.
객관적인 점수를 받는 시험 대신 정성적 평가를 받는 서류나 면접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다. 준비 과정에 최선을 다했으면 내가 할 도리는 거기서 끝난 거다. 그 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후회할 필요없다. 평가자 기준에 내가 부합하지 않았나 보다, 생각하고 넘어가면 된다.
이 마인드는 취업준비를 하던 시점에특히 발휘됐다. 불합격 메일을 봤을 때 타격이 있지만 크지 않았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내 경험과 실력이 회사기준에 못 미쳤기 때문에 탈락한 것이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탈락이 당연한 것이니까잠깐 일비(一悲)하고 다음날 다시 시작했다.
마음 편히 살아가고 싶은 사람의 단순한 사고방식일 수 있겠으나, 어렸던 날의 내가 후회로 고통받던 자신을 구원했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