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6시 13분이었다. 월요일은 평소보다 셔틀이 십분 먼저 도착하고, 거기에 불안한 마음이 더해져 훨씬 일찍 집을 나서게 된다. 이걸 놓치면 사십 분이면 갈 거리를 두 시간에 걸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늘 비슷한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탔지만,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은 달랐다. 그때는 어쩌다 버스를 한두 대 놓쳐도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이른 새벽부터 깨어있던 몸은 버스 속 훈기와 만나 금세 노곤해졌고, 사람들이 탈 때마다 내부는 점점 후덥지근해졌다. 어릴 때부터 뜨거운 공기를 참지 못했다. 내리쬐는 불빛, 귀를 때리는 크고 시끄러운 소리, 혀를 마비시키는 간이 세고, 매운 음식들도 마찬가지였다. 맹렬하게 달려드는 느낌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덩어리째 굴러들어 오는 감각의 무게에 압도당해 내가 삼켜질 것만 같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감각들이 좋았다. 라디에이터보단 보일러가, 살포시 스며드는 햇볕이나 간접등이, 가사가 없는 잔잔한 음악이, 슴슴한 간이 좋았다. 삶도 그랬다. 모든 게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힘든 것도 없었다. 늘 내게 주어진 삶을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게 평범하게 이어갈 뿐이었다. 학창 시절의 가장 큰 일탈은 야자 시간에 도망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일이었고, 대학생 때는 휴학을 하고 홀연히 떠나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중력에 이끌리듯 궤도로 돌아왔고, 은근하게 삶은 이어졌다.
사십여 분을 달려 회사에 도착했다. 낯선 초행길에 긴장한 정신은 그제야 맥이 탁 풀렸다. 셔틀은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모든 게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창문이 없어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내부는 더웠고, 언제나 마음이 급한 기사님은 오는 내내 가감속을 반복했다. 사람이 탈 때마다 팟- 하고 켜지는 실내등도 너무 밝았다. 책을 읽기에도, 잠을 자기에도 좋지 못한 환경이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반쯤 몽롱해진 상태로 회사에 도착했다. 뒤늦게 멀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출 시각은 매일 일 이분씩 빨라지며 하루가 다르게 봄을 향해 내딛는 중이었지만, 이월 중순의 일곱 시는 여전히 여명이 깃들지 않은 시간이었다. 서늘한 어둠 속으로 내던져진 몸이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오랜 시간 뭉근하게 달궈진 몸에 차가운 공기가 닿자, 뼈마디마다 스산함이 스며들었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담금질 당한 몸은 칼날처럼 예민해졌다.
회사로 걸어가는 그 짧은 거리 동안, 연이어 도착하는 셔틀이 사람들을 계속 토해냈다. 제법 너른 인도가 순식간에 가득 찼고, 나의 속도로 걷기가 조금씩 힘들어졌다. 서로 다른 보폭들이 더해지며 모종의 흐름이 만들어졌고, 그저 이끄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텅 빈 육체만을 이끌고 꾸역꾸역 건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대한 행렬이, 마치 진시황릉의 병마용들 같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저 무덤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인가. 도저히 좋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보통의 삶은 꽤 주기적이다. 매일 소소한 이벤트들이 더해지긴 하지만 출근 전, 회사, 퇴근 후의 삶이 일정한 크기로 반복된다. 반복이 좋은 점은 행위를 함에 있어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일상은 따분하긴 하지만, 대체로 큰 안정감을 준다. 인간은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 식량이 부족했던 오랜 시기를 거치면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향으로, 효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무수한 움직임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 각자의 삶에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는 한꺼번에, 과격하게 찾아왔다. 달이 지구를 고작 두 바퀴 도는 동안 새로운 물결이 삶을 온통 뒤흔들었다.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갔다. 회사에서의 업무도 바뀌었다. 따라잡기도 전에 낯선 일들이 계속 쌓여갔고, 어느 순간 내 삶은 통제권을 벗어나 멋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마음이 어려웠고, 편히 도망쳐 쉴 곳이 없었다.
한 시간 반이 걸릴 거라 예상했던 퇴근은 어떤 경로로 가든 두 시간이 걸렸다. 늘 가까이에 살았기에 도로마다 늘어선 무수한 차들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사람들의 퇴근 열망을 헤아리지 못했다. 이런 빽빽한 밀도가 퇴근길을 자꾸만 뒤로 잡아끌었다. 이미 꽉 찬 지하철을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얼굴들이 역겨웠다. 하루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모두가 패자가 되어 돌아가는 이곳도, 결국 힘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단순했다. 밀리거나, 포기하거나, 아니면 이 단계를 거쳐 똑같이 역겨워지거나.
바뀐 업무는 혼을 쏙 빼놓았다. 매일 수명 업무가 떨어졌다. 마감 기한은 오늘 퇴근 전 아니면 내일이었다. 익숙한 일도 닦달하듯 밀고 들어오면 정신이 없는데, 새로운 업무를 그렇게 해내기란 쉽지 않았다. 담당하게 된 지역을 익혀나가는 것보다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이 유닛은 원래 이렇다며, 내용의 퀄리티보다는 데드라인을 맞추는 데 초점을 두라고 했다. 업무 방식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고민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겉핥기식의 문장들이 보고서에 한 줄, 한 줄 채워질 때마다, 내 자신감은 한 풀씩 꺾여 나갔고, 급기야 업무를 대하는 신념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 해낼 자신이 없었고, 잘 해내고 싶지도 않았다. 삶을 챙기기도 버거운 시기였다.
회사가 힘들면 집으로 도망치고, 일상에 문제가 있으면 회사에 있는 동안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이 두 개의 축은 서로 맞물리며 삶을 지탱해 주는 구조였다. 이제 집은 도망치기에 너무 멀리 가버렸고, 가는 여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적응조차 하지 못한 업무에 몰입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상의 문제는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가중할 뿐이었다. 순식간에 쌍성을 잃어버린 내 삶은 작은 섭동에도 크게 흔들리며, 궤도를 잃고 무방비하게 내던져졌다.
근 두 달간은 십육 킬로미터의 거리를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들락날락했다. 업체를 알아보고, 시공하고, 하자보수로 언성을 높이고,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등 낯선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이 많아 유독 피곤했다. 이사 일주일 전에는 엄마가 올라오셨다. 둘이 같이 짐을 포장하고, 옮기고, 풀고, 청소하느라 하루의 한 끼도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었다. 급기야 이사 삼일 차가 되었을 땐, 너무 고된 나머지 엄마의 입술에 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다. 해야 할 일에 매몰돼 엄마의 힘듦을 헤아리지 못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지친 상태라 타인을 보살필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결국 엄마는 중간에 내려가셨고, 회사에 다니면서 남은 일을 혼자 처리하는 것은 꽤 힘들었다. 그렇게 쌓인 피로가 풀릴 새도 없이 장거리 통근러의 삶이 시작되었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났다. 지난 이주 간 몸을 혹사하다 보니, 틀어진 생체리듬을 바로 잡기가 어려웠다. 잘 못 먹고, 못 자고, 너무 많이 움직였다. 처음 며칠간은 매일 코피가 났다. 가만히 있어도 코 안쪽이 시큰하게 아팠고, 압력을 가할 때마다 피가 나왔기에 코를 푸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손톱 밑의 연한 살들이 짓이기고, 찢어져서 물만 닿아도 고통의 비명이 새어 나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 팔다리엔 멍이 가득했고, 상처가 아물기가 무섭게 베인 상처들이 늘어갔다.
우울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배를 누르면 사랑해라고 외치는 곰돌이 인형처럼 누가 스치기만 해도 우울하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인간에 대한 환멸로 시작되었다.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겪으면서, 퇴근길의 무지막지한 얼굴들을 마주하면서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싫어졌다. 혐오스러웠다.
그다음은 삶에 대한 환멸이었다. 조금 더 행복해지고자 선택한 일들이 자꾸만 나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기분이었다. 멀쩡했던 주방 상부장이 무너지고, 도어락이 부서지고, 회사 노트북이 고장 나는 등 세상이 합심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이제 그 화살은 나를 향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나. 이 정도도 못 버티는 사람이었나. 이게 이렇게 스트레스받을 일인가. 나는 큰 뜻을 품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많은 것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그저 간장 종지만 한 사람이구나. 나를 잃어버렸다.
방법은 간단했다. 이럴 때일수록 일상적인 것들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했다. 잘 먹어야 하고, 잘 자야 하고, 노동이 아닌 운동을 시작해야 했다. 이 중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먹는 거였다. 보통은 서너 시쯤 저녁을 먹고 운동을 가거나, 가지 않더라도 여섯 시 전에는 가볍게 식사를 끝냈다. 지금은 빨라도 여덟 시쯤 저녁을 먹을 수 있었고,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질 낮은 음식에 자꾸 손이 갔다. 그 결과는 새벽에 일어나서 다 토하는 것이었고, 한동안 체기가 불편하게 지속되었다. 포기.
그다음은 취침 시간을 당겼다. 아홉 시 반에서 열 시 사이 침대에 누웠다. 집에 와서 씻고, 최소한의 집안일을 하면 하루가 끝났다. 퇴근 후 삶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회사가 삶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회사가 주(主)이고, 남은 한 시간 반이 여분인 것 같은 삶. 더 최악인 것은 사치스럽게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주말에도 잠이 쏟아진다는 것이었다. 반 포기.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해오던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기로 했다. 언제든 가고 싶어지면 갈 수 있게 회사 사물함에 넣어둔 장비를 챙겨, 복싱장으로 향했다. 두 달 만이었다. 익숙한 풍경 속을 지나니 삶의 리듬이 조금씩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복싱장, 오른쪽으로 십 분 정도를 더 걸으면 예전 집이었다.
체육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입이 씰룩거렸다. 지하 이층으로 내려가는 몇 초 동안 심박수는 자꾸만 올라갔다. 운동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두 달은 습관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자리 잡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미 내 몸은 운동하지 않는 편안한 삶에 적응한 뒤였고, 이건 운동에 대한 욕구보다 익숙한 공간에 대한 설렘이 분명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겹도록 봐오던 풍경이, 반가운 얼굴들이 있을 거라는 기대. 분명히 나를 반겨줄 것이라는 확신의 감정이었다.
가장 먼저 만난 생명체는 단모 푸들인 복싱이였다. 낯선 사람이 오면 쾅쾅 짖는 친군데 나를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역시 날 기억하는구먼. 이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던 관장님과 코치들이 들어왔다. 관장님은 날 와락 안더니 바로 팔굽혀펴기를 시켰다. 평소라면 기겁했을 이 루틴조차도 그대로였다.
체육관에 나오지 않아도 팔굽혀펴기는 매일 하랬던 관장님의 불호령이 생각났다. 하루도 지킨 적이 없기에, 잔뜩 긴장한 채로 자세를 잡았다. 다섯 개까지는 거뜬히 해냈고, 열 개까지도 무리 없이 가능할 것 같았다. 기초부터 탄탄히 쌓아 올려 몸의 근육이 세세하게 기억하는 동작은 쉬이 잊힐 수 없었나 보다. 점점 말랑 콩떡이 되어가는 배와 팔뚝을 만질 때마다 자괴감이 늘어갔던 지난날들이 부끄러웠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서 단단한 몸까지 원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배운 기능들을 잃는다는 느낌은 참기 힘들었다. 종종 팔굽혀펴기만 해봤어도 해결될 감정이었다.
한 시간이 지났다. 다시 또 먼 길을 가려면 아쉬워도 그만둬야 할 시간이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다리가 휘청거렸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종아리가 저 혼자 우다다다 앞으로 쏟아졌고, 나는 거대한 중력에 이끌린 돌멩이처럼 그 흐름에 휩쓸려 내려갔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러나 무거워진 몸만큼 삶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나를 다시 궤도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늦게 돌아가니 퇴근길의 밀도도 훨씬 낮았다. 여전히 앉아서 갈 순 없었지만, 서로의 공간이 충분히 존중되었다. 타인과 부닥치며 에너지를 소실하지 않으니, 집에 도착해서 평소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꽉 찬 효능감이었다.
어김없이 다음날은 또 찾아왔다. 전날의 반짝거림 만큼 피곤함은 더 강하게 밀려왔다. 근육통은 시차를 두고 온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하지만 행복한 고통이었다.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이끌며 평소보다 조금 늦게 셔틀 타는 곳에 도착했다. 쌀쌀한 새벽바람에 코가 시릴 때쯤 멀리서부터 빛이 조금씩 다가왔다. 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버스가 온다는 안도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정확히 6시 23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