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by 콩딴딴

상해사망 3억, 딸각-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 문득 여행자 보험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보통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륙 전 비행기에서 급하게 가입하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남겨진 숙제처럼 자꾸 생각이 났다.


실속형 8천 원. 보통 보장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가장 저렴한 것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다시 잠들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찬찬히 보장 내용을 훑었다.


상해 의료비 2천. 상해 사망 1억.


앰뷸런스만 타도 2천은 나올 텐데- 그럴싸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실했다. 삼 주 전부터, 피부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호르몬의 문제라고 넘기기엔 정도가 심했다. 얼굴 전체에 빨간 두드러기와 하얀 고름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점점 목과 몸으로 내려왔다. 병원에 가도 원인을 알 수 없었고, 스테로이드 연고와 먹는 약을 처방해 줄 뿐이었다. 닷새 동안 약을 먹고 관리하면 이틀 정도 괜찮다가 다시 또 피부가 뒤집어졌다. 또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 일상의 반복. 이주가 넘어가자 속이 매스꺼웠고, 식욕이 급격히 줄었다. 삼 주차가 되자,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프다고 맘 편히 회사를 쉴 수도 없었다. 일은 계속 쌓였고, 장기 휴가를 앞둔 상황에서 아픈 티를 팍팍 낼 수도 없었다. 열이 38도를 넘어가자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무거웠다. 누군가가 자꾸만 나를 땅으로 잡아끄는 느낌이었다. 속에선 열감이 올라와 온몸을 불쾌하게 달구었고, 동시에 사무실은 너무 추워서 몸이 떨렸다.


온 집을 뒤져도 해열제 하나 없었다. 약국에서는 기존에 먹는 피부과 약이 너무 독하다며 약을 주지 않았다. 일단 버텨보라고 했다. 임시방편으로 이마와 몸에 열패치를 덕지덕지 붙였다. 거의 일주일 동안은 시간이 몇 시던 집에 오자마자 열패치를 붙이고 바로 잠들었다. 새벽마다 두어 번씩 깼고, 그때마다 뜨끈해진 열패치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다시 잠들었다. 혼자 아픈 것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열패치를 스스로 갈아야 할 때는 뭔가 좀 서러웠다.


열이 계속 이어지자 37.6도 정도로만 내려가도 살만하다 싶었고, 나중엔 컨디션에 따라 몇 도인지 어림짐작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 알러지로 생각했던 것이 아토피로, 그다음은 스트레스성 발진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열이 지속되자 이제는 내분비계의 문제 혹은 몸속 어딘가에 알 수 없는 염증이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가 엄습했다. 몸의 작은 변화도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감만 커졌다.



그래, 1억은 너무 작아


고급형을 클릭했다. 비용은 이만 이천 원 남짓. 실속형의 3배였다. 상해 사망 3억, 질병 의료비 5천, 상해 의료비 5천. 이 정도면 혹시 피부나 열의 문제로 해외에서 급하게 병원에 가더라도, 어지러움으로 넘어져 어딘가를 크게 다치더라도 어느 정도는 해결될 것 같았다. 3억. 특히 3억이라는 숫자가 마음에 들었다. 한 사람의 목숨값으로 너무 적은 금액이지만, 또 결코 작기만 한 금액은 아니었다. 이름은 못 남겨도 이 정도면 돈은 좀 남긴 거 아닌가.


퇴근길에 멍하게 밖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모두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흐렸다. 무엇인가가 마음 어딘가를 천천히 적셔가고 있었다. 할 말이 잔뜩 쌓인 것 같은데, 막상 입을 열면 한 마디도 뱉어지지 않았다. 이유 없이 가슴이 툭-하고 내려앉았다. 대부분의 감정은 경계가 뚜렷하다. 으레 감정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형성되는 이미지와 색감 같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면에 집중할수록 모서리가 흐려졌고, 남아 있는 감각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런 느낌은 일상 속에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이때는 삶이 납작 엎드린 채 숨죽여 바닥에 고여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렇게나 될 대로 흘러가 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당기는 음식이, 보고 싶은 영화가, 듣고 싶은 노래가,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고치가 되는 상상을 했다. 아주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서 가만히. 어느 날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조용히 허물을 벗을 것이다. 누군가가 발견했을 땐 허물만 남아 있을 것이다.


알맹이 없이 허물만. 덩그러니.





떠나는 날까지도 열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하늘에선 장마의 시작을 알리며 새벽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14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런던은 밤 9시가 넘도록 환했다. 영국의 여름은 원래 이렇게 해가 길다고 했다. 딱 여행하기 좋은 계절에 잘 온 거라고. 마침, 이번 주부터 날이 많이 풀렸다고 했다. 템스강을 따라 100년이 넘은 고택들이 고즈넉이 모여있는 동네를 친구와 함께 걸었다. 강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쓸어내릴 때마다 고치의 끝자락에서부터 실이 살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여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늘한 날이었다.


뭐 하고 싶어

하고 싶은 건 없는데, 맥주는 한 잔 마시고 싶네.


역 앞에 있는 펍에는 동네 주민들이 가득했다.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하루치의 힘듦과 기쁨을 쏟아내고 있었고, 야외석에는 강아지나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나온 가족들이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친밀감이 그 공간을 은근하게 데우고 있었다. 관광객과 직장인이 들끓는 번화가의 펍과는 다른 편안함이었다. 야외석과 이어지는 광장엔 여름의 빛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고, 사람들의 재잘거림은 살랑이는 잎 결 사이로 스며들듯 흩어졌다. 비행의 노곤함도 유난히 긴 여름밤의 햇빛 아래 천천히 녹아내렸다.


낮술 하는 거 같아서 좋네.

언니, 아홉 시 반이야.

해 있으면 낮술이지 뭐.


내일은 뭐 할 거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계획 없이 온 여행이었다. 막상 가면 에너지가 차오를 거라는 기대와 달리, 더 격정적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오랜만에 느끼는 이 차분함과 고요함을 가만히 간직하고 싶었다.


다음날부터는 목적 없이 이리저리 발 가는 대로 걸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걷다가 공원이 나오면 잠시 멈추고, 또다시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꽤 긴장하면서 걸었던 지난번과 달리, 일 년 만에 다시 온 런던은 한결 편안했다. 하이드파크의 고즈넉한 명소를 더욱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린파크와 세인트 제임시스 공원 등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지며 런던의 거리들이 조감도처럼 펼쳐졌다. 공사 중이었던 자연사 박물관 앞이 멋들어진 정원으로 바뀐 것을 바로 알아챘고, 화장실은 어디로 가야 깨끗한지, 어떤 카페의 커피가 맛있는지, 어떤 메뉴를 시켜야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미식을 즐길 수 있는지 알았다.


현재로서는 딱히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아깝지 않은 날들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내 일상을 싹둑 잘라낸 채 또 다른 더부살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영국의 날씨에 하루의 리듬을 맞추고 그저 받아들이며 지냈다. 날이 어두우면 위층 마루에 누워있다가, 햇살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면 다시 나가서 걸었다. 사람 많은 곳은 최대한 피하고 싶어 그 좋아하던 박물관과 미술관도 최소한으로 갔다. 그저 푸른 하늘과 몽글몽글한 구름, 햇빛에 바스러지는 초록 잎들이면 충분했다.


어느 순간 열이 내렸다. 중간에 열꽃이 살짝 피어올랐지만 금방 사그라들었다. 약과 연고가 없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가만히 있었다면 자연 치유가 되었을지, 독한 스테로이드도 이걸 해결할 수 없었을지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이 술은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아침 공복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맥주를 들이켜도 괜찮았다. 허탈했다. 매일매일 나는 무엇을 마시고, 먹고, 품으며 살아왔던 걸까. 무엇이 나를 이토록 뜨겁게 했던 걸까. 속으로 다 삭히지 못해 방울방울 터져 나올 만큼 그건 대단한 것이었을까. 걷다 보니 생각만 쌓였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체험학습 중인 학생들에게, 일은 도대체 언제 하는 건지 어떤 시간에 가도 열심히 뛰고 있는 부러운 청년들에게, 느긋하게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노인들에게, 피크닉을 즐기는 연인에게, 엄청나게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에게. 그리고 또다시 시선을 돌렸다. 하늘로, 나무로, 땅으로. 물빛을 삼킨 듯한 하늘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고 있었다. 잎의 결마다 흘러든 빛은 초록의 온도를 미묘하게 달리했고, 나무들은 저마다의 여름을 천천히 드러냈다. 잎사귀마다 스민 빛이 녹음을 더 깊게 적셔주었고, 바람은 천천히 지나가며 부서지는 그림자를 땅 위로 흘려보냈다. 이따금 들려오는 아이의 웃음소리와 멀리 벤치에 앉은 사람들의 실루엣, 바람에 일렁이는 잎들은 모든 것이 아무 일 없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그렇게 이주가 흘렀다. 중간에 바스로 도망쳤다.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특별한 도시답게 낮에는 관광객이 득실득실하지만, 또 런던 근교 당일치기로 유명한 여행지답게 아침과 저녁은 굉장히 한산한 곳이다. 만류하는 친구를 뿌리치고 그곳에서 3박 4일을 지내며 아침엔 트레킹을 하고, 낮엔 공원을 걷고, 저녁엔 사우나를 하며 지냈다. 영국에 사는 친구보다 바스의 골목길은 내가 더 잘 알 거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런던과는 또 달랐다. 이곳에서는 온전히 나 혼자였고, 런던에서처럼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할 게 없었다. 하지만 해는 똑같이 길었다. 그럼에도 좋았고, 그래서 좋았다.


햇살 속에 녹아버린 건지,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살살 풀어져 버린 건지 어느 순간 조여오던 감각이 느슨해졌음을 느꼈다.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그 미묘한 느슨함이 조금씩 나를 숨 쉬게 했다. 내 안의 어딘가에 고집스럽게 박혀 있던 무언가가 단숨에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그게 뭔지 정확히 짚을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나이고, 돌아가면 또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겠지만, 그것들을 더 이상 싸매지 않고 그저 그렇게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감각이 어렴풋이 내려앉았다.


떠나는 날, 공항에 가기 위해 조금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한국의 9호선처럼 다른 호선보다 나중에 뚫려 지나치게 깊은 엘리자베스 라인으로 내려가며 텅 빈 공간에서 올라오는 묘하게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역시나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전광판이 텅 비어 있었고, 당황할 틈도 없이 아래에 글씨가 흐르고 있었다.


Due to a person being hit by a train on the Elizabeth Line, services are suspended until further notice


생을 얻어 나가는 길에,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격렬하지 않아 오히려 더 생생한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