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삔각시 베지밀 하나 먹어봐

기억을 잃어도 남는 삶의 흔적들

치매로 많은 것을 잊어버린 노인의 행동 속에는 평생 살아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삔각시 베지밀 하나 먹어봐"라는 노인의 말 한마디에 담긴 돌봄과 나눔의 습관은 기억을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 본연의 선함을 보여줍니다. 이 글은 치매 노인의 일상적 행동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우리의 본질을 형성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기억을 잃어도 남는 '나눔'의 손길

"이삔각시 베지밀 좀 먹어봐. 시원하당께."

중증 치매 환자인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입니다. 그녀는 항상 무언가를 주려 하고, 항상 배가 고프다고 하며, 항상 남편을 찾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돌봄 제공자에게 베지밀을 권합니다.

"아니에요, 어르신." "아이고, 내 말 좀 들어. 좀 먹어봐." "어르신 드세요."

이렇게 한참 동안의 실갱이 아닌 실갱이가 벌어지고, 결국 웃음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런 장면은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입니다. 하지만 이 일상적인 장면 속에는 인간 삶의 깊은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노인은 평생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녀의 곁에는 항상 배고픈 이가 있었고, 그녀는 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 삶의 중심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녀의 남편은 한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 부양의 책임을 그녀가 떠맡았기에, 그녀는 늘 밖에서 일하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습관은 치매라는 병이 그녀의 기억을 앗아가도 몸에 남아 있습니다. 기억은 사라져도 삶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베지밀 좀 먹어봐"라고 말하며 나눔의 손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사라진 기억 속에서 외치는 삶의 외침

"우리 집 양반 저기 있그만, 좀 오라고 허시오. 성길 냄서 말하믄 꼬라지 낸게, 부드럽게 말하시오." "네." "오라고 했소? 와서 밥 먹으라고 하시오." "네."

허공에 메아리처럼 사라지는 대답을 들으며, 노인은 알까요, 모를까요? 자신이 찾는 남편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마도 깊은 내면에서는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치매는 그런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마저 앗아갑니다.

치매는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큰 형벌일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황당할까요? 어제 아침까지도 함께 상을 마주했던 사람이 전혀 타인이 되어 가는 것. 어제 밤까지도 한 이불에서 사랑을 나누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것. 이것이 치매가 가져오는 잔인한 현실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치매라는 병명은 몰랐을지라도, 똑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의 황당함과 안타까움이 "있을 때 잘하라"는 지혜로 전해진 것은 아닐까요?

삶이 만드는 우리의 본질

딸과 나눈 저녁 식사 후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암에 걸린 30대 며느리에게 생일상을 받으려는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은 후의 대화였죠.

"그건 아니지. 암에 걸린 며느리를 위해서 시어머니가 상을 차려서 위로해 줘야지. 생일이 별거야?"

딸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소신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삶의 태도와 철학에 관한 대화는 이어집니다.

"내가 그 전에는 몰랐는데, 내가 치매 환자들과 지내다 보니까 걸리는 순간 삶의 의미가 없어. 난 만약 그렇다면 중대한 결정을 내릴 거야. 처참하게 나의 인생의 마지막을 만들 수는 없어."

이 대화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정신 차려야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우리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억을 잃어도 남는 것들

노인은 꿈속에서도 누군가에게 베지밀을 주고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삶의 중심이었던 '나눔'의 행위는 기억을 잃어도 남아있는 그녀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행동, 우리가 타인에게 보이는 태도,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수십 년이 지나 우리의 기억이 흐려져도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매일 분노와 원망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매일 나눔과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우리가 기억을 잃어도, 우리가 누구인지 잊어버려도 남아있을 것입니다.

치매 노인의 "베지밀 좀 먹어봐"라는 말 한 마디에 담긴 삶의 흔적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과 말들이 어떤 본질을 형성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한 삶이 만드는 아름다운 기억 상실

치매는 잔인한 병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도, 자신의 이름도, 살아온 세월도 모두 앗아갑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치매는 우리 삶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베지밀을 나누려는 노인의 모습처럼, 선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기억을 잃어도 그 선함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돕고, 음식을 나누고,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기적이고 분노에 찬 삶을 살아온 사람은 기억을 잃어도 그 습관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거부하고, 불평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본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우리는 기억을 잃어도 후회하지 않을 삶, 기억을 잃어도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삶, 기억을 잃어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삔각시 베지밀 하나 먹어봐"라고 말하는 노인처럼, 나눔과 돌봄이 몸에 배어 있는 삶.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한 삶이 아닐까요?

기억을 넘어서는 인간의 가치

치매 환자들을 돌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도, 가족의 얼굴도 잊어버릴지 모르지만, 그들의 가치는 그런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삶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있습니다.

베지밀을 나누려는 노인의 모습은 그녀가 평생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본질은 치매라는 병도 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기억, 우리의 지식, 우리의 성취는 언젠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우리의 몸과 타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치매 환자를 돌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 작은 깨달음이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돌보는 그 분은 기억을 잃었을지 모르지만, 그분의 본질, 그분의 가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돌봄은 그분의 남은 여정에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억을 잃어도 후회하지 않을 삶, 기억을 잃어도 자랑스러울 삶, 기억을 잃어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한 삶, 가치 있는 삶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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