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진의 통증도 삼켜버리는 치매

빨갛게 물든 피부, 느끼지 못하는 통증, 치매와 함께 떠나는 길

겨울 햇살이 스며드는 요양원의 오후

요양원의 겨울 오후는 창틀에 걸린 엷은 햇살로 시작됩니다. 넓지 않은 복도 끝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줄기가 바닥에 사각형 모양을 그립니다. 소독약 냄새와 노인들의 체취가 섞인 공기는 이곳만의 독특한 향을 만들어냅니다. 간병인들의 고무신 소리와 휠체어 바퀴 구르는 소리만이 이 고요함을 깨뜨립니다.

벽면에는 계절을 알리는 종이 장식들이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 정성들여 오려붙인 눈꽃 모양 종이들이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립니다. 복도 한쪽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고, 형형색색의 전구는 이미 한 달 전에 꺼진 채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오후 3시, 간식 시간이 되자 간병인들이 분주히 움직입니다. 요플레와 빵, 과일이 담긴 트레이를 들고 각 방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떤 방에서는 반가움의 인사가 들리고, 어떤 방에서는 무관심한 침묵만이 흐릅니다.

208호 방의 문이 조용히 열립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노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햇살이 그녀의 얼굴 한쪽을 비추고 있고, 그림자가 방 안에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녀의 팔과 목, 얼굴 일부가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 붉은 물감을 뿌린 것처럼 선명한 발진입니다.

간병인이 노인의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습니다. 오늘도 그녀는 요플레를 들고 왔습니다. 간식 시간, 이 방의 일상이 시작됩니다.

빨갛게 발진이 온 그녀는 통증을 못 느끼는 것일까

그녀의 몸의 일부는 뻘겋습니다. 발진, 다른 관리인들은 '똥독'이라 부릅니다. 하루종일 누워서 유제품과 오이를 먹습니다. 그로 인해서 온 발진이지만, 그녀는 오늘도 유제품을 찾습니다.

"나, 요플레 하나만 먹으면 안 될까?"

노인의 목소리는 아이처럼 맑고 순수합니다. 그 목소리만 들으면 그녀의 피부가 심각한 발진으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녀의 손등은 마치 붉은 지도처럼 발진으로 덮여 있고, 목 주변은 긁어서 상처가 난 자국이 선명합니다.

간병인은 한숨을 내쉬며 부드럽게 대답합니다.

"어르신, 아프지 않으세요? 아무리 우리가 도움을 드리려 해도 어르신 이렇게 하시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고통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간식 시간이 반가운 듯 눈을 반짝이며 요플레를 바라봅니다. 치매가 그녀에게서 통증을 느끼는 능력마저 앗아간 것일까요? 아니면 그 통증보다 더 강한 유제품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일까요?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

노인은 억울한 듯 따집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의사의 진단도, 간병인의 수없는 경고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맛있는 요플레를 먹고 싶다는 욕구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냉장고 음식들 다 세어 났으니까 드시면 안 돼요. 조금 있다 확인할 거예요."

간병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안타까움이 함께 묻어납니다. 그녀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단속해도 노인은 밤중에 몰래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유제품을 꺼내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그녀의 발진은 더 심해져 있을 것입니다.

"알았어."

노인은 순순히 대답하지만, 그 눈빛에는 이미 다음 계획을 세우는 듯한 교활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치매가 그녀의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그녀의 영리함과 음식에 대한 집착은 남겨두었습니다.

시뻘겋게 발진이 왔는데 아무리 약을 바르고 조치를 취해도 하룻밤 지나고 나면 다시 원상 복귀입니다. 통증이 심할 텐데 조절이 안 되나 봅니다. 그러니까 병원에 계시겠지요.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는 연고와 약들이 즐비합니다. 매일 바르고, 매일 먹이지만 그녀의 발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녀가 그 통증과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천국으로 떠나는 길목에서 만난 사랑

복도 건너편에는 또 다른 노인이 있습니다. 그녀도 발진으로 고생하는 노인 중 한 명입니다.

"내 간식 내놔."

다른 노인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카스테라를 하루에 10개 이상 드시는 그녀의 피부도 마찬가지로 발진으로 덮여 있습니다.

"어르신, 안 돼요. 간식 당분간 금지예요. 어르신 지금 발진이 와서 힘들지 않으세요?"

"알았어. 조심할게. 하나면 주면 안 될까?"

"그러면 하루에 하나만 드세요."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한도는 모든 면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옷 입는 것, 사는 집, 그리고 먹는 것까지. 아무리 좋은 집의 많은 방도 우리가 잠들 때 사용하는 방은 단 하나의 방이고, 아무리 좋은 음식도 먹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아무리 좋은 옷도 나갈 때는 단 하나의 옷을 선택하니 말입니다.

이곳의 어르신들은 그 한계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생하는 육체의 힘듦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주일 후, 208호 방의 노인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발진은 더욱 심해져 이제는 온몸을 뒤덮고 있습니다. 의사는 발진이 내부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고, 이제는 거의 반응이 없습니다.

간병인은 여전히 매일 그녀의 곁을 지킵니다. 그녀의 피부에 연고를 발라주고, 입술이 바짝 마르지 않도록 물을 적셔줍니다. 노인은 이제 더 이상 요플레를 찾지 않습니다. 대신 희미한 미소로 간병인의 손길에 반응합니다.

"치매라는 친구와 만나지 않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 "사랑하라. 죽을 만큼 사랑하라. 그러면 치매와는 절연할 수 있다."

간병인은 이 말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비록 치매는 이미 그녀를 찾아왔지만, 그래도 사랑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녀에게 사랑이 필요하다고.

"잘 주무시라며" 꼭 안아주는 간병인에게 노인은 "내일도 오는 거야?" 하고 물었습니다.

"내일은 다른 어르신한테로 갈 거예요."

"그래도 오는 거잖아."

노인은 정말 고마워하며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다음 날 아침, 208호 방의 노인은 고요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온몸의 발진마저 느끼지 못하고 그녀는 천국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평화로웠고, 마치 오랜 고통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간병인은 그녀의 방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길이 이 길이 아니어서 많이 낯설었지만, 그럼에도 조금의 시간을 이곳에 투자하는 건 진한 사랑이 필요한 곳이어서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봅니다.

"오늘 밤은 평안에 이르시길" 기도하며 문을 나섭니다.

잠시 몇 걸음 걸으며 만난 사람들, 시간들. 간병인은 자문합니다. '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비웠을까?' 잠시 스쳐지나온 세월이 아니었기를, 그녀의 손과 마주하였을 때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기를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원하지 않고 태어난 세상, 무엇 하나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었던 세월이었지만, 셀 수 없는 시간들 중 만난 그녀와의 추억은 간병인의 이승에서의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잊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사랑했어요. 사랑합니다. 사랑할게요.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안녕."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더 이상 발진으로 고통받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제 자유롭습니다. 아마도 천국에서는 맛있는 요플레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테지요, 붉은 발진의 걱정 없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노년의 삶

요양원에는 여전히 많은 노인들이 남아 있습니다. 붉은 발진으로 고통받는 노인들, 치매로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는 노인들, 그리고 그들 모두를 돌보는 간병인들.

우리 사회는 점점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치매와 같은 질병을 겪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요양원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과 시설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치매 환자들은 종종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발진이 온몸을 덮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같은 실수를 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가족의 방문, 간병인의 따뜻한 손길, 사회의 지원과 관심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들이 비록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우리의 도움을 거부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208호 방의 노인처럼,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게, 사랑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녀는 이제 천국에서 자유롭게 요플레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 남아, 또 다른 208호 방의 노인들을 돌봐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존중이자 사랑의 표현일 것입니다.

"사랑했어요. 사랑합니다. 사랑할게요."

이 말이 요양원의 모든 방에, 모든 노인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이전 25화104세 노인의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