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의 적막이 삼킨 유배지(流配地)

계절의 사각지대 고3교실의 풍경화

by 시가 별빛으로 눕다

1. 계절의 사각지대, 기숙사의 적막이 삼킨 유배지(流配地)

학교 담장 너머, 세상은 이미 소란스러운 축제를 시작했다. 목련은 밤새 하얀 등불을 켜며 어둠을 밀어냈고, 산수유는 노란 폭죽을 터뜨리며 지천으로 봄의 소식을 타전한다. 바람결에는 분명 갓 깨어난 흙내음과 물오른 나무들의 비릿한 생명력이 실려 오건만, 교문을 통과해 육중한 기숙사 건물로 들어서는 순간, 나의 오감은 일제히 비명을 지른다. 이곳의 공기는 바깥의 그것과는 질감부터가 다르다. 햇살마저 입구에서 검문당한 듯, 복도마다 낮게 깔린 정적은 날카롭고도 무거웠다.

전원 기숙사 생활. 그것은 겉으로는 '학습의 효율'이라는 매끄러운 수사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아이들의 생체 시계를 강제로 멈추고 오직 입시라는 단 하나의 궤도에 가두어버린 거대한 유배지나 다름없다. 고3 교실의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느껴지는 그 서늘한 금속성 차가움은, 이 안에서 얼어붙어 있을 아이들의 심장 소리와 닮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훅 끼쳐오는 것은 찬란한 3월의 향기가 아니라, 수천 번의 한숨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눅눅한 피로의 냄새였다.

창밖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연두색으로 채색되며 생의 환희를 노래하는데, 어째서 이 아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잿빛 동토(凍土)에 박제되어 있는 것일까. 교실 안의 시계는 바깥세상의 시계보다 훨씬 느리고 가혹하게 태엽을 감고 있었다. 아이들의 등 뒤로 쏟아지는 봄볕은 축복이 아니라, 차라리 잔인한 조롱에 가까웠다. 그 빛조차 아이들의 구부정한 어깨 위에서 길을 잃고 흩어졌다. 나는 그곳에서 보았다. 어른들이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선 안에서, 자신들의 가장 빛나는 계절을 소리 없이 분실해버린 어린 영혼들의 뒷모습을. 오늘 내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수업의 현장이 아니라, 계절의 사각지대에 갇혀버린 청춘들의 서글픈 초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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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상 옆, 청춘을 삼킨 거대한 유골함(遺骨匣)

아이들의 책상 옆을 점령한 것은 단순한 수납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들의 하루, 아니 10대의 전부를 집어삼킨 거대한 유골함과도 같았다. 책상 높이와 맞먹는 그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는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활자들이 비명도 없이 쌓여 있다. 국어, 영어, 수학... 과목별로 분류된 그 종이 뭉치들은 아이들의 꿈을 지탱하는 주춧돌이 아니라, 아이들의 연약한 어깨를 짓누르는 연자맷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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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2년여 동안 요양시설에서 치매 노인들과 함께 하였고 현재는 AI,인권, 노인의 성,치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의와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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