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노래하려나? 나도 젊어서는 노래 잘했어."
비가 오는 날은 어수선하다.
여기저기서 소리가 나고, 왔다 갔다 움직임도 부산하다.
고독한 점, 창가에 서서 머뭇거린다.
"어르신, 나무 위의 새 보세요."
"응."
"새가 뭐라 하나요?"
"몰라. 노래하려나? 나도 젊어서는 노래 잘했어."
"그러세요? 어르신, 그럼 노래 한 곡 해보세요."
노인은 '여자의 일생'을 구성지게 부르신다.
"어르신, 최고예요!"
"비 오니까 내가 불러주는 거여. 알기나 해?"
"감사해요. 다음에 비 오는 날 또 불러주세요."
"싫어. 내가 노래 부르는 사람인가."
금세 감정이 반대로 가버렸다. 비가 오는 날은 우리 어르신들에게도 추억이 스멀거리며 올라오나 보다. '여자의 일생'에 진한 고독이 묻어난다.
비 오는 날의 창가에 선 노인에게서 시인의 모습을 본다. 갑자기 흘러나온 노래 한 곡에 평생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노인의 순간적인 감정 변화도 시처럼 아름답다. 화창한 날보다 비 오는 날, 우리의 감성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우리 모두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종착역을 향해 열심히 달려간다. 오늘이 지나면 다가올 오늘을 격렬히 환영하면서 미친 듯이 달려간다. 혹여 내가 다른 사람에게 뒤처질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그러다 잠깐 계곡물에도 빠지고 진흙탕에도 빠지고,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멈출 줄 모른다. 그저 종착역을 향해서 달릴 뿐.
그런데 문득 생각해본다. 종착역만 바라보며 달리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스쳐 지나가고 있을까?
100세 노인의 '비 오니까 내가 불러주는 거여'라는 말에 담긴 의미. 그것은 어쩌면 삶의 진정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나눌 줄 아는 마음.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젖은 나뭇잎의 반짝임, 우산 아래 이어진 대화... 삶은 이런 작은 순간들로 가득하다.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도,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
창가에 선 100세 노인이 불러준 '여자의 일생'. 그 짧은 노래 속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쌓아온 지혜까지.
그리고 보니, 우리 모두 각자의 '여자의 일생', '남자의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각자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큰 노래가 되고, 그것이 우리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비 오는 날이면 우리 모두 창가에 서서 노래 한 곡 부르는 100세 노인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그때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될 것이다.
비나리 / 심수봉
큐피트 화살이 가슴을 뚫고
사랑이 시작된 날
또다시 운명의 페이지는 넘어가네
나 당신 사랑해도 될까요 말도 못 하고
한없이 애타는 나의 눈짓들
세상이 온통 그대 하나로 변해 버렸어
우리 사랑 연습도 없이
벌써 무대로 올려졌네
생각하면 덧없는 꿈일지도 몰라
꿈일지도 몰라
하늘이여 저 사람 언제
또 갈라놓을 거요
하늘이여 간절한 이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