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다녀간 자식에 대한 서운함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자녀들이 면회를 다녀 가면 쉽게 잊으시고 바로 똑같은 일상을 회복하신다. 그런데 A 어르신은 후폭풍이 강하고 오래간다. "간다고 말도 안하고 가버리네"를 100번도 더 반복하신다. 많이 서운하셨을까.
"세상에 간다고 말도 안하고 가버리네. 그렇게나 빨리 가버리네." "어르신, 누구 만나고 오셨어요?" "둘째딸. 그란디 간다고 말도 안하고 가버렸어. 간다고 말이나 하고 가지." "금방 또 오실 거예요." (아마도 노인이 힘들어하셔서 인사 없이 가버리셨나 보다) "그래도 간다고 말은 하고 가야지. 세상에 간다고 말도 안하고 가버리네. 그렇게나 빨리 가버렸어." "어르신, 많이 서운하셨어요. 맞아요, 서운하셨겠어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금방 오실 거예요."
세 살배기 아이가 울먹이며 선생님 치맛자락을 붙잡는다. 엄마는 아이의 정신이 한창 놀이에 팔려있을 때 슬그머니 나가는 전략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알아챘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자신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서러움이 북받친다.
"괜찮아, 금방 데리러 올 거야. 우리 같이 블록 놀이할까?" 선생님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랜다.
A어르신의 모습은 그 세 살배기와 얼마나 닮았는지. 시간이 거꾸로 흘러 9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세상 경험을 쌓아온 지혜로운 노인이 아니라,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는 아이의 모습으로.
"간다고 말도 안하고 가버리네..."
참으로 서글픈 장면이다. 기약 없는 긴 기다림, 그리고 만남. 어르신의 마음이 얼마나 두근거렸을까. 어쩌다 찾아간 부모님이 과도할 정도로 반겨주거나 냉정하게 대하는 이유가 똑같은 사유가 아닐까. 기다림, 그리고 반가움 지나서 서운함, 원망.
관리인은 마치 유치원 선생님처럼 A어르신을 달랜다. "많이 서운하셨겠어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금방 오실 거예요." 이 말은 세 살 아이에게도, 구십 세 노인에게도 똑같이 위로가 된다. 인간의 감정은 어쩌면 나이를 초월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65세 이상의 치매 발병률이 25%가 넘어가니 우리 모두는 치매라는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치료나 예방의 방법은 없는 것일까? 짧은 시간이지만 치매 노인들이 정상적인 범주로 들어오실 때는 단 한 가지, 그들에게 사랑을 전할 때였다.
가까이 다가가 안아주거나, 눈을 마주치거나, 아니면 쓰다듬어 주거나. 마치 불안해하는 아이를 달래듯이. 평생의 생활 터전을 떠나 고립에 갇혀 고통의 연속인 어느 노인은 집에 가시는 걸 가장 무서워한다. 아내의 구박이 그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한 발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현재의 상황보다 정신을 놓치는 자신을 향해 구박하는 아내와의 생활이 더 두려운 것이었다. 아이가 엄마의 꾸중이 두려워 유치원에 남고 싶어하는 것처럼.
모두가 함께 가는 세상은 없다. 가족마저도. 그리하여 나를 챙겨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나를 만들어가야만 하는 세상에 우린 알몸으로 서 있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누구는 치매를 걸리고 싶어서 걸리냐고. 하지만 모든 질병이 70~80%는 내가 노력함으로써 막아낼 수 있듯이, 치매 또한 TV를 보는 쉬운 방법보다는 독서를 하고, 손으로 열심히 기록을 하고, 타인에게 사랑을 품고 살아간다면 꼭 만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당신과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서로의 손을 맞잡을 때 치매라는 친구는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간다고 말도 안하고 가버리네"라고 외치는 노인의 목소리가 가시지 않는 밤이다. 마치 "엄마가 안 빠이 안 하고 갔어요"라고 울던 아이의 목소리처럼.
노인의 꿈속에 자식과의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그리고 우리 모두, 떠날 때는 꼭 "안녕"이라고 말하는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아이도, 노인도 결국은 같은 마음이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떠나가는 이에게 작별 인사라도 듣고 싶은 마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세 살배기 아이가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빗 속엔 무엇이 감춰져 있을까 / 보헤미안
추적 추적 내리는 비가 울고 있다
떠난님 그리워 우는 여인의 눈물이 섞여서 울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아빠가 그리워 우는 눈물이 섞여서 울고
세상에 상처 받아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어
주저 앉은 청춘의 눈물이 섞여서 비가 울고 있다
난 우산을 써야 하나
우산을 씌여 주어야 하나
방황과 혼돈의 밤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