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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바다 Apr 21. 2024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받아드리는가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문뜩 든 생각

- 이데올로기? 그게 뭔데.


작금의 세대인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이데올로기"의 충돌이라는 것을 몸소 겪어본 세대가 아니다. 나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정치적 보수라든지 진보라든지 하는 말은 그저 허울로 보일 뿐이다.


사실 그런 "이데올로기"라는 말에 관심도 크게 없다. 이데올로기는 나의 눈엔 그저 정치적인 수단일 뿐이다. 누군가는 나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그 자체의 생각들을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아마 자신 스스로를 "탈이데올로기적인" 사람으로 부를 테다.


"자유" 그 자체는 애초에 자연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젊은 세대)은 자신이 아무것도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유를 추구하는 자신들은 어디에 치우침이 없다는 말이다. 요즘 세대들은 자유를 당연하게 주어진 조건으로 파악한다. 애초에 "자유"라는 목표에서 벗어났던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자유라는, 어쩌면 요즘 세대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그 이데올로기는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현재의 어떤 관념이 당연하다고 생각된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이는 6.25전쟁, 북한, 이념 대립으로 점철된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50대 이상의 윗세대는 분명 자유가 당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적이 있었고, 못 살았으니까. 우리와는 다른 삶과 함께 이데올로기도 우리와는 달랐을 것이다.


이것은 오펜하이머도 마찬가지이다. 그 또한 현재 우리 곁에 있는 이데올로기와 다른 시대를 살았다.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주역이다. 세계대전의 종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원자폭탄 제조 프로젝트로 말이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을 보고 환멸을 느꼈나보다. 그 이후 미국이 더욱 강력한 수소폭탄 제조를 착수하려고 할 때마다 오펜하이머는 그 이후 줄곧 수소폭탄 제조를 저지했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었다.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을 하고도 3년이 채 안 된 날,  소련은 수소폭탄 제조에 성공한다. 미국은 스파이를 의심한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만든 이 밝디 밝은 도구가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었을까.





- 오펜하이머는 공산주의자인가?


영화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펜하이머의 내면에 집중한다. 그는 과학자이기 이전에 공산주의자다. 아니, 공산주의자라고 불린다. 그의 주변 지인들 중 많은 이가 공산당 전적이 있었고, 그는 공산당을 통해 스페인 내전을 후원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오펜하이머는 50년대 메카시즘의 영향 아래 소련의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리더이기 이전에 과학자였다. 또 한 개인이기도 했다.


당시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두 이념의 대립은 곧 강력한 두 국가의 충돌이었다. 정치적으로 볼 때, 미국의 이념과 대척되는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갖는 것은 애국과는 먼 행위라고 보았다. 공산주의는 소련의 정치적, 경제적 체제이며 이를 믿는 자는 적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의 공산주의 이력은 2022년 원자력에너지위원회(AEC)가 핵무기 관련 정보의 보안 인가 승인 취소를 함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물론, 보안 인가 승인을 취소한 것이 스파이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핵무기 관련 핵심 기술자였음에도 이 정보들에 접근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 그런 인식이 기저에 깔린 것이다.


보안 인가 승인 취소 후 68년 만인 2022년에 이를 철회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깊다. 앞서 말한 대로 보안 인가는 그 정보를 습득함으로 해서 자국에 해가 되는 자를 색출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의 스파이로 의심받던 오펜하이머는 68년 만에 공식적으로 그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오펜하이머의 공산주의 이력에 따라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하며, 누구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공산당원으로 가입한 적이 없으니 형식적으로는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를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적" 이념을 추구했으니 신념적으로는 공산주의자라고도 부를 수 있다.


영화 속 오펜하이머가 청문회에 참석했을 때의 장면이다. 이곳엔 과학자 오펜하이머는 없는듯 보인다.






- "그놈은 공산주의자다." 그래서 뭐?


나는 애국주의와 공산주의가 한 사람에게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고, 개인은 개인일 뿐이다. 개인의 삶은 이론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런 균열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균열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을 적확하게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위에 논쟁이 된 "그런" 이데올로기엔 관심이 없다. 그런 이데올로기적 충돌에서는 영화에서 그린 고뇌하는 개인은 없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우리와 너희라는 서로의 정적들만 있을 뿐이다.


우리 아빠는 나와 말이 통하지 않을 때면 내게 "너도 공산주의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네, 그런데요 왜요?"라고 답한다. 난 누군가가 자유주의자든, 애국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 그게 개인 속에서라든가, 사회 속에서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 날을 세우며 그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현실을 조작하려 하려고 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와 같은 어린 사람, 혹은 이를 직접 겪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의미가 없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역사적 사건의 의미가 바뀌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드릴까. 무엇을 진실이라고 받아드릴까? 우리는 이를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지 못했던 그 역사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닿을 수 있을까.


영화는 영화이다. 우리는 이를 곧이곧대로 현실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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