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 강원도라고 생각하나. 감자는 어느 고장에든 있다.
오늘은 감자 농사 짓는 농부님 댁에 갔다. 감자야 흔하디 흔한 농산물이니 감자 농가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감자 농사만을 짓는 곳은 아니다. 로컬푸드라는 취지에 적합하게 다양한 농작물을 조금씩 생산한다. 사실 그래서 감자 농가(혹은 농장)라고 부르기 뭐하지만, 이번에 한창 농사 짓는 작물이 감자이니 감자 농사를 짓고 있는 동안에는 "감자를 짓는 농부"님 댁이 맞다.
아마 "벌써 감자를 캔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미"라는 품종의 감자는 6월부터 수확을 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아니 감자는 언제든 볼 수 있는 거니까 언제든 수확할 수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느 부분은 맞다. "수미"감자는 저장성이 좋기 때문에 사시사철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매년, 언제든 볼 수 있는 감자는 햇감자가 아닌, 저장감자일 확률이 높다. (저장감자가 더 안 좋고 그런 것은 없다. 품종에 따라 특징이 다를 뿐이다. 그렇지만 햇감자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지금 내가 방문하는 농부님 댁은 수미감자와는 다른 품종의 감자를 농사지시고 있다. 어떻게 잘 알려진 수미감자가 아닌, 다른 품종의 감자를 수확할 생각을 하셨냐 물어봤다. 그 이유는 영업비밀이라고 내게만 알려드리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세상에 비밀이 어디있겠는가. 다른 감자들과의 경쟁을 위해서라고 한다. 이렇게 이르게 햇감자(품종 이름이 아닌, 당해년도에 나온 감자를 일컫는다.)를 수확하고 수미감자가 나오는 6-7월에는 다른 농사를 지을 예정이라고.
농부님은 처음엔 너무 부담스럽다며 인터뷰를 거절하셨다. 정확히 말하자면 승낙은 하셨지만, 뵐 때마다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말주변이 너무 없어 인터뷰나 기타 공식적으로 뭔가를 말할 때마다 뒤로 물러서곤 했다고. 하기야 말주변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든 자신을 인터뷰 하겠다고 찾아오면 부담스럽게 느낄 것이다.
농부님의 전직은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공무원에서 은퇴한지 12년 정도가 되었다고 하는데, 은퇴 후론 집안에서 하고 있던 농사를 돕다가 자연스럽게 같이 농사를 짓게 되셨다고 한다. 농부님께선 지금은 나이도 있고 하니 전업으로 농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소하게나마 이렇게 작물을 기르는데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이 농산물을 매개로 시민과도 소통하니 나름 재미도 쏠쏠하다고.
이렇게 로컬푸드는 다품종소량생산이 많다. 원래의 취지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 농업계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라면 그에 맞게끔 제도가 이루어지면 좋겠고, 또 이러한 상황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애초에 농업이라는 것이(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 논리와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번 편은 3일에 걸쳐서 찍게 됐다. 첫날은 수확하는 장면, 이튿날은 포장하는 장면, 셋째날은 출하하는 장면을 찍었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너무 부담스러워 하시길래 간단한 인터뷰를 제외한 것들은 거절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하니 너무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많은 분들, 아니 대부분의 농부님들이 그런 것 같다. 처음엔 영상이 처음이고, 인터뷰가 처음이라 어색하고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막상 영상 촬영에 들어가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이번에도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길어져 내가 다음 날 와서 다시 이야기 하겠다고 한 걸 보니 말이다.
분명 농가는 (한철이지만 그 철에 한해서) 바쁜 게 맞다. 하지만 정말 인터뷰할 시간이 없는 것보단, 카메라를 들이밀고 들어오는 이가 집에 오는 것을 반길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도 안다. 나 같아도 날 인터뷰하겠다고 한다면 오만가지 이유를 대며 거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자신을 내보이는 게 조금 부끄럽거든...
하지만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그 정당성과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오히려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 믿는다. 분명 그분들도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형식적 질문들이 오가지만, 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자연스러운 하소연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상한 마음이 싹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