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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Feb 11. 2021

달이 빛나던 우유니의 밤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을 한다.


  우리나라의 새해는 항상 '후-' 입김이 나오는 겨울이지만, 지구 반대편 남아메리카의 새해는 햇빛 쨍쨍한 여름이다. 그러므로 3월에 도착해서 5월까지 여행했던 남미는 가을 정도의 날씨였다. 물론 남미 대륙은 워낙 커서 지역별로 기후가 제각각이라 사계절의 옷이 모두 필요했지만, 여행하면서 대부분 도시는 온화했는데 그중에서 겨울을 느낄 수 있었던 지역이 있다. 바로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남미에 다녀왔다고 하면 무조건 물어보는 질문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마추픽추 봤어?’고 두 번째 질문은 ‘우유니 다녀왔어?’다. 몇 년 전부터 여행 버킷리스트로 손에 꼽히는 장소인 우유니 소금사막은 해발고도 3,653m에 위치한 굉장히 높은 고산지대다. 백두산의 높이가 2,750m인 것을 고려했을 때, 우유니는 백두산보다 900m 위에 위치한 셈인데,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 만큼 기온은 낮다. 우유니 소금사막이 특히 유명한 이유는 우기 시기인 12~3월, 끝없이 펼쳐진 하얀 소금밭 위에 물이 고여 지상 최대의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갔을 때는 4월 초, 건기가 막 시작되려 할 때였다. 수크레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우유니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네다섯 시쯤. 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고 길가에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예전에 백두산 천지에 갔을 때도 이 정도로 춥지는 않았는데 정말 너무 추웠다. 생각보다 이르게 도착한 바람에 같이 온 동행들과 일단 아무 숙소나 들어가서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였다.


  다음날, 다른 동행에게 소개받은 숙소로 짐을 옮긴 후 투어 신청을 하러 거리로 나왔다. 우유니는 낮시간 투어인 데이, 노을 질 때쯤 가는 선셋, 별 보는 스타라이트, 아침 해 뜨는 선라이즈 이렇게 시간대별로 4가지 투어로 이루어져 있고 대부분 두세 개 이상 신청한다. 우리는 선셋과 스타라이트를 이어서 하는 투어로 그날 아침에 신청 후 바로 오후에 출발하였다. 30분가량 차를 타고 가자, 서서히 건물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소금 결정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진정한 우유니 소금 사막이 나왔다. 사막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 저 멀리서 해가 지며 절경이 펼쳐졌다. 붉은 하늘이 물에 반사되어 위아래 모두 노을빛으로 물드는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해가 순식간에 지고 나면 금세 밤이 찾아와 쏟아질 듯 수많은 별이 또 한 번 장관을 이룬다. 그 수많은 별빛은 마찬가지로 바닥에도 반영되어 밤하늘에 떠 있는 착각을 안겨준다.


  다만, 우리가 투어한 기간은 풀문(full moon), 즉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커다란 달이 뜨는 순간, 너무 밝아서 별이 안 보이게 된다. 보통 별을 보려고 투어를 하기 때문에 일부러 풀문 시기를 피하지만 어쩌다 보니 그 기간이 겹쳐버렸다. 해가 지자 날씨는 더욱더 추워졌고 별이 뜨고 나서 한 두시간 안에 달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 안에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최대한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다 멀리서 엄청나게 밝은 빛이 서서히 우리를 감쌌다. 달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보름달이 그렇게 밝은 줄 몰랐다. 서울에서 보는 보름달은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그렇게 밝지도 않았는데, 한 줄기의 빛도 없는 고산지대의 황야에서 떠오르는 보름달은 태양처럼 밝았다. 그 옛날, 왜 달이 나그네의 길을 비춰준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달이 뜨자 다른 사람들은 포토타임이 끝났다고 아쉬워했지만, 나는 그 황홀한 광경에 조금은 벅차올랐던 것 같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내 차창 밖으로 달을 보고 있었다. 요즘도 가끔 보름달을 마주하면 그때 우유니에서의 달빛이 생각난다. 캄캄한 어둠 속을 환하게 비춰주던 달빛, 촘촘한 별빛을 한 방에 쓸어버리던 꽉 찬 보름달이. 야간버스를 타고 우유니를 떠나며 생각했던 다짐과 함께 말이다.


‘달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태양이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단단히 빛나는 달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제 콘텐츠의 모든 커버 사진은 여행 중에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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