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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Feb 12. 2021

동물과 사람이 공존했던 순간

누구나 가치있는 여행을 한다.

  남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할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총 4개 나라를 3주 동안 밤마다 텐트를 치고, 아침이 되면 다시 텐트를 접으며 트럭을 타고 여행했다. 20명 정도 되는 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며, 매일 밤 텐트 위로 쏟아지던 수많은 별이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그 3주간의 여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몇 가지 있는데 나미비아의 에토샤 국립공원에서의 밤도 그중 하나다.


  이름은 에토샤 ‘국립공원’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공원이 아니다. 약 2만 3000㎢의 거대한 면적, 그러니까 스위스 크기와 비슷하며 우리나라로 말하면 서울과 경기도,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의 약 2배 정도 크기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사람보다 동물이 더 많이 사는 곳으로 그냥 동물원과는 개념이 다르다. 처음 들어갈 때 가이드가 ‘사파리’라는 명칭을 사용하길래 나는 조금 큰 동물원 사파리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첫날 트럭을 타고 그곳에 들어갔을 때 동물은 없고 풀과 나무만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계속 달리다가 한 시간쯤 되었을까, 저 멀리 코끼리가 보였다. 잠시 트럭을 멈춘 뒤, 숨죽이고 코끼리 가족을 지켜보았다. 그다음에 본 기린도, 얼룩말도, 치타도 우리는 모두 조용히 그들을 지켜봤다.


  사람이 아닌 동물이 주체인 곳. 에토샤 국립공원은 그런 곳이었다. 보호구역으로 지역을 정해 놓고 일정한 절차를 밟은 관광객들만이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로 입장할 수 있다. 동물들은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이며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동물을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에토샤에 머무는 3일 동안 낮에는 트럭을 타고 동물들을 찾으러 다니고, 밤에는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텐트에서 잠을 자는 생활이 이어졌다.


  두 번째 밤, 저녁을 먹고 친구와 쏟아질 듯 보이는 별 사진을 찍어보자고 화질이 좋지도 않은 카메라로 애쓰고 있었다. 그때, 같이 다니던 호주에서 온 친구가 지금 빨리 호수에 가자고 재촉했다. 이미 베이스캠프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호수로 간 상태였다. 영어로 어떤 동물이 나왔다고 말하는데 그 영어 단어를 몰라서 알아듣지는 못한 채 일단 호수로 갔다.


  호수는 저 멀리 보였고 동물과 사람, 서로가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그 주위에 난간을 설치하여 동물을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호수를 바라보는데 저멀리 코뿔소가 있었다. 야생의 코뿔소 두 마리가 나란히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난간을 붙잡고 서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가로등이 코뿔소를 비추고 있었고 그 가로등 주위로 반딧불이가 날아다녔으며, 조용한 가운데 간간이 셔터 누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우리는 잠시 그들의 삶을 구경할 뿐, 그들의 터전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이 순간은 같이 여행했던 친구와 여행이야기를 하면 꼭 빼먹지 않고 말하는 순간 중 하나다. 별빛은 찬란하고 반딧불이가 흩날리며 저 멀리 코뿔소를 보며 숨죽이던 사람들. 서로가 존중되고 공존하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낀 그때를 생각하면 동물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순간은 잠시 그 미래를 체험했다고 할 수 있겠지.







*제 콘텐츠의 모든 사진은 여행 중에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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