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치있는 여행을 한다.
2018년, 그해 내 여행의 마지막 나라는 러시아였다. 남미에서 시작해서 아프리카를 돌아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도착한 모스크바. 그곳에서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오를 준비를 했다. 내가 탄 열차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약 9,900km를 달리는 코스였다. 이 코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갈 수 있는 가장 긴 거리였으며 총 7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넓은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동안 경도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하루하루 시차가 변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당시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이 한국에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라 한국인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나도 블로그나 유튜브 영상 몇 개로만 열차에 대한 지식을 접했던 상태였고 그 후기 대부분은 나와 반대 여정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로 유럽을 향해 가는 열차였기에 러시아 군인들이 많고 여행객도 많았다는 후기가 전반적이었다. 그러나 일주일 정도 모스크바에 머물며 만난 러시아 현지 청년들은 오히려 왜 고생하면서 횡단 열차를 타느냐고 신기하다는 듯 물어왔다. 그래서 '오히려 현지인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진 채 열차에 올랐다.
열차를 타고 가장 의외였던 것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온도고 두 번째는 탑승객이다. 먼저 내가 횡단 열차를 탔던 때는 시기적으로 한여름인 8월 초였는데도 열차 안의 온도는 얇은 겉옷 하나를 걸치면 딱 맞는 선선한 온도였다. 그래서인지 열차 안에서 땀나는데도 못 씻는 상황을 가장 걱정했는데 땀날 일이 없어 비교적 깨끗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족 단위의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정도인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많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름휴가로 친척 집에 가는 중이었다. 가족들의 비행기 삯을 전부 낼 수 없어 기차를 타고 일주일을 이동해 하루 이틀 친척을 보고 또다시 일주일이 걸려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런 상황을 듣고 있으니 참 신기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내가 탔던 칸은 삼등석으로 한 칸에 총 6명이 함께 생활한다. 말이 한 칸이지 딱히 벽이나 문이 없어서 수십 명의 사람이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곳에서 내가 만난 아이들은 영어를 하지 못해 구글 번역기로 겨우 짧은 소통을 이어가면서도 함께 밥을 먹고 서로 머리를 묶어주고 그림을 그리고 간단한 러시아어를 알려줬다. 그렇게 키즈 카페 직원이 된 것 같은 일주일을 보내며 최종 종착지 전에 한 가족씩 떠나갈 때마다 아쉬운 이별을 고했다. 다시는 못 볼지 모르지만 언젠가 마주칠지도 모르는 인연이 또 하나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다. 그래서 그나마 세상을 살아가며 순간순간 사랑과 애틋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작은 입으로 처음 만나는 동양인에게 좋은 밤을 빌어주는 것처럼.
‘Спокойной ночи (스파꼬이노이 노치) – 좋은 밤 보내길 바라요.’
*제 콘텐츠의 모든 커버 사진은 여행 중에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