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와이 Nov 05. 2021

한 가지 디저트는 만들 줄 알아야 하는 이유

달콤한 피곤함의 비밀

“또 뭘 그렇게 하고 있어?”


남편이 볼멘소리를 한다. ‘또 뭘’이라는 소리가 결코 곱게 들리진 않지만, 이제 결혼 12년 차로서 이 정도의 불만은 적절한 침묵으로 상대하는 지혜를 갖추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고소한 빵 냄새가 부엌에 가득 차기 시작한다. 따끈하고 노릇노릇한 둥근 빵 안에 오늘은 직접 쑨 팥소와 생크림을 꽉꽉 채워보았다. 아껴두었던 예쁜 리본으로 포장한 이 빵은 오늘 만날 친구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이것을 커피와 함께 먹으며 즐거워할 친구의 얼굴을 상상하며 벌써 즐겁다.


직접 쑨 팥소를 넣은 생크림 팥빵


남편의 ‘애정 어린’ 표현에 따르자면, 내가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란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할 때도, 뭐라도 붙잡고 뚝딱 인다나. 이런 나의 ‘피곤 행위’에 나의 배우자가 불만 가지는 점은,


“이거 남 주려고 하는 거지?”


맛있는 음식도 누구 초대할 때만 하고, 빵을 구우면 가족 수대로 하나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남 준 데나? 세상에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냥 대-강 할 것이지, 아내의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남과 나누어야 한다는 게 영 마뜩잖은 모양인 남편 나름대로의 걱정 섞인 투정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과연 그렇게 들인 정력이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는 서울 변두리의 작은 약국을 운영하는 ‘동네 약사’ 셨다. 조제실 뒤 쪽에 있던 작은 공간은 내가 숙제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엄마의 가게에는 항상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실 딱히 오늘 어디가 아픈 곳이 없는 분들도 자주 찾아와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다. 남편과 이래저래 해서 힘들다며 한탄하러 오던 동네 아주머니, 좋아하는 사람과 잘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고생하는 청년, 뿌리내리기 힘들어했던 탈북 아저씨 등등, 누구든 박카스 한 병 주문하고서 마음 편히 사는 이야기 털어놓던 그 작은 공간. 겨울엔 기분 좋은(?) 석유 냄새(소독차 냄새 같은 기분 좋음. 몸에 좋진 않았겠지만 그땐 다들 오토바이로 실어다 주는 석유로 난로를 때곤 했다.)가 잔잔히 나는 난로 위에 가래떡이 구워지고, 때론 보리차가 구수히 끓었다. 그것들은 시간이 있을 땐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약국을 거쳐가던 손님들에게 대접되었음은 물론이다. 절절 끓는 여름날, 약국 앞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버티던 사람들이 잠시 시원한 바람 쐬기 위해 들어오면 비타민씨 한알 주는 것을 잊지 않았던 우리 엄마.  


그렇게 한 동네 한 자리에서 20년간 자기 자리를 지켰던 엄마는, 15년 전 어느 날 쓰러져 손 써볼 틈도 없이 3일 만에 세상을 등졌다... 가족에게야 말할 것도 없이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동네 약사와 손님이라는 ‘한 다리 건너의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까지도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가족들은 일찍이 겪어볼 일 없었던 예상 못한 큰 황망함에 충분히 슬퍼할 겨를조차도 없었다. 엄마 뒤에 남겨진 정리되지 않은 일들을 수습하는 와중에도 시간만은 무심히 제가 하던 그대로 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계절이 한 계절 정도 바뀌었을까. 정신이 되돌아오기 시작하며 그제야 비로소 그동안 보려 해야 볼 수 없었던, 알려야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깨달았다. 엄마 당신 자신이 언제 이 세상에 없을지 알리가 만무했던 당신이 뿌린 조금 ‘피곤’했던 씨앗들이 비로소 꽃이 되어 내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가져다주었던 밑반찬과 김치들, 장례에 못 가서 미안하다며 무작정 주머니에 쑤셔 넣어주던 봉투, 동네 아저씨가 무작정 백반집으로 데려가 먹여줬던 밥 한 끼는 사실 느이 집이랑 이로저로한 돈 관계가 있었으니 알아두라는 깜짝 고백(?)이나, 니 엄마는 니네 아빠가 너무 고생시켜서 일찍 하늘에 간 거라는 친척들의 그리움 섞인 원망보다 백배 천배 만배 든든하게 내 속을 채워 주었음을 고백한다.




엄마가 가졌던  같은 호의를 베풀만한 개방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공간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때마다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있는 작고도 흔한 대가 없는 달콤한 호의 베풀곤 한다. 가끔은 친구를 위한 생일 케이크를 굽고, 핼러윈엔 아이들이 나눠먹을 유령 모양 머랭 쿠키를 구워 보내준다. 대신  대가로  작은 달콤한 선물을 받은 이들의 미소를 받고 기쁨을 느낀다. 그것은  작은 노력에 비해  보답으로, 남편의 걱정과는 달리 


사실 난 날 위해 피곤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엄마가 늘 자기들 없을 때 몰래 재미있는 활동을 한다며 아쉬움이 많다. 사실, 아이들과 함께 만들면 도와주고 뒤처리 하느라 진이 다 빠지기도 하고 선물할만한 '퀄리티'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대신 내가 자주 쓰는 레시피들은 작은 요리 수첩에 메모와 그림을 담아 레시피를 남기는 걸로 아이들의 불만을 달래주고 있다. (자주 쓰지 않는다고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긴 하지만) 여기에 그중 두 가지를 여기에 공유하고자 한다. 가장 쉽고, 특별한 재료와 도구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달콤하고 가벼운 머랭 쿠키


머랭 쿠키는 쉽고도 예쁘고 간단하다. 많은 재료가 필요 없어서 자주 만드는 아이템이다. 단점은 낮은 온도로 말리듯 구워내야 하는 쿠키이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핼로윈용 쿠키
색상 조절이 자유로운 머랭쿠키



밥솥 케이크


복잡한 케이크 틀이 필요 없다. 단, 폭신한 질감을 위해선 머랭 치기가 필수!


머랭을 잘 치는 것 만으로, 이 정도 높이의 카스텔라를 만들 수 있다.


이 것이 내 쓴 인생을 녹이는 달콤함의 비밀이다. 내 작은 선물에 그가 보여줄 감사와 기쁨을 상상하는 것, 그리고 혹시나 내가 없는 세상에서 날 기억해줄 사람들이 달콤함을 떠올릴 수 있길, 돌아 돌아 우리 가족에게 작은 친절과 호의로 베풀어 지길 소박히 바라며,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티라미수, 버터크림 컵케이크, 도지마롤, 허니마들렌, 구겔호프


매거진의 이전글 정리의 왕도 (feat. 냉장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