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와이 Nov 10. 2021

대체 내 아이가 왜 이러지? 싶을 때

수습할 수 없는 내 유전자

인연이라는 수필로 유명한 피천득 선생님과 나는 그는 모르고 나만 아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서영이라는 딸을 가진 것이다. 둘째에게 서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의미 있게 산 피 선생님의 수필집은 나의 소중한 책 중 하나이다.


서영(栖瑩)이는 시어머니가 이름 잘 짓는다는 곳에서 손수 받아온 이름으로, 사주에 불의 기운이 부족하다며 불 화(火)를 두 개나 보충해주었다. 그런데 너무나 과하게 보충해주었는지 성정이 사납기가 그지없다.



서영이한테 제일 오래된 기억이 뭐야?


“오래된 기억이 뭔데?”

“제일 아기 때 기억.”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는 냉큼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집에 손에 쏙 들어오는 예쁜 공이 있었는데, 언니는 손에도 들고 목에도 주렁주렁 걸면서 난 딱 하나밖에 못 가졌어…”


사실 공 하나 부여잡고 세상 서럽게 우는 그 장면은 그 현장을 목격한 나도 애가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사진으로 남겨놓았기 때문에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영원한 라이벌이자 둘도 없는 친구로 그렇게도 좋아하는 언니 이건만, 욕심은 말도 못 하고, 고집은 고집대로 부리고 성질도 성질대로 부린다. 가끔 몸으로도 덤비는데, 연년생이라고 해도 근 만 2년 차이나는 언니를 드러눕히기는 기본이다.


이 아이는 물건을 고르는데 신중하고 아낄 뿐 아니라 본인 주변을 무척이나 깔끔하게 유지한다. 항상 소지품은 제 자리에 놓여 있으며, 저녁에 잠들기 전엔 제 책상의 물건을 정리하고 말끔히 물티슈로 닦아 놓는다. 하지만 소유권이 애매한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을 전부 제 언니 책상에 올려놔서, 언니 책상은 깨끗할 틈이 없다는 것을 엄마가 아는 건 아직 모르는 눈치다. 수다분하고 건성건성인 언니가 그런 지저분한 책상에서 물건들에 밀려 구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는 걸 보면 가끔 이렇게 해 놓은 둘째가 얄밉다.


이 꼬맹이는 자기 이름만 3년을 쓴 고집쟁이다. 두 돌이 되기 전에 자기 이름 석자를 한글로 또박또박 쓰길래, 역시 둘째들은 손 위 형제를 보고 덩달아 빨리 배운다던데 정말 그렇구나! 손뼉을 탁 쳤건만 그 뒤로 다른 한글 실력이 전혀 늘 기색이 안보였다. 마음이 답답해 매주 하는 학습지도 이거 저거 시켜 보았지만, 베테랑 학습지 교사도 서영이를 가르치는 데에 두 손 두발 백기를 들었다. 그동안 들인 학습지 값이 아깝고 화가 나 그냥 아무것도 안 시키고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새 때 되니 알아서 읽고 쓰고 하고 있으니 기가 찼다.


좀 더 어릴 적에 내가 이 고집을 한 번은 꺾어 보아야겠다 싶어 갖은 수를 다 써 보았다. 한 번은 악을 쓰고 울음을 안 그치길래 그냥 놔뒀더니 온 방안을 굴러다니며 울어 진을 쏙 빼게 만들었다. 그렇게 울고 떼를 쓰다가 갑자기 안아 달래는데 엄마이기 이전에 나도 사람인지라 대체 화난 내 마음이 동해야 말이다. 나 역시 화가 나 씩씩거리고 단번에 안아주지 않았더니,


“그냥 좀 안아주면 안 돼? 웃어줘!”


황당하다. 기가 차서 그만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내 엄마 냄새가 좋다며 품 안에서 코를 부비니 이거엔 당해 낼 재간이 없다. 토닥토닥해주고 부엌으로 데리고 가 좋아하는 간식을 먹여주니 자기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둘째는 어릴 적부터 왼쪽 엄지손을 빨았다. 그 버릇은 놀다가 부딪혀 앞니가 빠지는 큰 사고를 당한 그날에야 겨우 고쳤다. 얜 빠진 이 걱정은 하지도 않고, 오늘 밤 손을 못 빠는데 어떻게 자냐며 꺼이꺼이 울었다. 이제 그 버릇은 없어졌지만 몰래 고백하길 가끔씩 이불속에서 손가락을 입에 넣어 보기도 한단다.


“손이 그렇게 맛있어? 무슨 맛이나?”

“… 음… 엄마 맛이 나.”


이렇게 몰래 엄마 맛도 손가락에 가지고 다녔던 녀석이 밖에선 영 딴 사람이 된다. 당최 학예회며 입학식이며 수업 참관이며 밖에서 아이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면 생판 모른 척을 한다. 쟨 왜 저럴까? 좀 속상했다. 대체 왜 그러느냐 물으니 선생님에게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부모로서 더 할 말이 없었다.


붙임성이 좋고 빠릿빠릿한 첫째에 대해선 남편과    저런 면은 자길 닮았다고 얘기하는 적이 많은 반면, 둘째 대해선 저런 면은 대체 누굴 닮아 저런 건가 서로에게 (?) 미루는 경우가 많다. 옥신각신해도 항상 결론은,


너거나 나거나 아님 우리 조상 누군가에게서 온 것이겠지




상상하기 어려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근원에서부터 흘러온, 수없이 발현했거나 혹은 잠재되었던  지랄 맞음의 유전자는 나를 통해 지금 아이에게 바통터치되어 있다.


내 아이를 내가 달래기 어려울 때, 분명 내가 낳아 기르는데 왜 이리 어렵고 힘든가 싶을 때, 허심탄회하게 고백해보자. 나, 아니면 배우자,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싶으면 하나 위로 올라가 보자. 아! 하고 손뼉 치는 포인트가 분명 있을 거라고 99프로 확신한다.


나는 사뭇 다른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내게 감히 주어진 ‘엄마’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우아하게 행동하고 절제하며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부모가 되길 선택했다는 것 하나로 주어진 귀한 자격이 하나 있다. 내 유전자를 미래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대들은 활이니 살아있는 화살 같은 아이들은 그대들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 자녀에 대하여)


최초의 인간에게서부터 전해져 질병과 가난과 전쟁, 무수한 경쟁을 뚫고 무사히 오늘 내게 전해진 이 유전자는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내 삶 속에 마지막 꽃을 피우고 여정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내 유전자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상대방의 유전자와 배합되어 어떻게 발현되는지 지켜봐 보자. 때때로 힘들고 짜증 나는 이 지루한 육아도 재미있는 실험(?)처럼 여겨질 것이다.


내 딸에게 전해진 독특한 유전자, 이 자그마한 얼굴에 얹혀 있는 위로 살짝 들린 입술, 동그란 코, 보드라운 볼과 연필을 꼭 쥐고 악필을 써 내려가는 통통한 손가락이 귀엽다. 가끔 사나워도 귀엽다. 이 아이는 이상하게 예쁘다고 하면 싫어하고 귀엽다고 하면 좋아하기에 매일 귀엽다고 입에 달고 얘기해준다. 만약 내가 오래 살고 운 좋게 내 자녀들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 삶을 선택한다면 그 아이(들)에게 무엇이 전달되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는 거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이렇게 살았어.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법이란다. 야난, 너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엔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엘리자베스 M. 토마스의 ‘세상의 모든 딸들’)


우리 엄마가 옛날에 내가 속 썩이면 너도 너 같은 딸 낳아서 고생해봐야 안다고 했댔더니, 친구가 그 얘긴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한다.

그 말에 둘이 서로 웃었다.


엄마 말 때문이었는지, 난 나 닮은 딸을 낳아 고생하고 있나 보다.


세상의 모든 딸들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한 가지 디저트는 만들 줄 알아야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