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훔쳐갈 밥도 잊지 말자
어느덧 2021년.
만 2년이 되어가는 격동의 코로나 시대, 의외로 요리 실력이 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은 아닐 것 같다. 하루 세 번 꼬박꼬박 매일 수련하는데 안 늘래야 안 늘 수가... 내 경우 이 중 6개월은 가족 4명이 한 시도 빼놓지 않고 함께 했으며, 지금까지 100% 재택근무하는 남편과 함께 사는 나는
‘뭐 먹지, 뭐 먹이지?’
라는 생각으로 일어나,
‘내일은 뭐 먹지, 뭐 먹이지?’
라는 생각으로 잠드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요리실력이 늘었다고 하지만, 이건 진짜배기 실력이라기 보단 사실 그때그때 상황에 대응하는 ‘임기응변’이 늘었다고 부끄럽게 고백해본다.
몇 가지 재료로 매 끼니 같은 재료라 생각하지 못하게 차려내기
라던가
한 그릇 요리 15분 만에 후다닥 만들어내기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몇 가지는 한 번 해 놓으면 밥 한 솥은 금세 사라질 각오를 해야 할 만큼 인기와 인정을 받았다고 또한 부끄럽게 자랑해본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한국 사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메뉴들이다.
Hola, me gustaría comprar aguja cortar fina 2kg. Un kilo cada paquetes.
(안녕하세요, 얇게 썬 목살 2kg 부탁드려요. 한 팩에 1kg씩 포장해주세요.)
2주 정도에 한 번씩, 이 주문서(?)를 동네 정육점 주인에게 왓츠앱으로 보내곤 한다. 내 주문을 받은 주인은 고기를 냉동한 후 대패 삼겹살 정도의 두께로 얇게 썰어서 1kg씩 포장하여 준비해 준다. 한국과 달리 이곳에선 이런 식으로 썰어진 고기는 ‘반드시’ 적어도 하루 전 주문해야만 받을 수 있다. 냉동된 고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그 정도로 가늘게 썬 고기는 스페인식 요리에는 흔히 쓰이지 않는 까닭이다.
다행히도 과거에 이 정육점과 거래를 뚫어놓은 한국분이 있었는지, ‘무지무지 얇게 썰어달라’는 이곳 사람들 시선으론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요구를 무심하고 친절하게 수행해주는 정육점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비록 삼겹살을 주문했을 때, 그 마저도 ‘대패 삼겹살’로 썰어 놓으셔서 살짝 당황했던 경우가 있었지만...) 덕분에 우리 집 냉동실에는 언제든 비상시 꺼낼 수 있는 ‘제육볶음’ 팩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제육을 재우기에 앞서, 각각 1kg씩 포장되어온 고기 중 한 팩은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려 앞 뒤로 바싹 구워 들기름과 소금을 섞은 기름장에 찍어 먹는 로스 용으로 사용된다. 세계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이베리코 돼지 목살은, 기름기가 적고 쫀득하며 고소하고 담백하다. 쌈야채와 쌈장만 준비하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 쉬운 한 끼 식사를 차릴 수 있다.
이렇게 실컷 구워 먹고 남은 고기를 나머지 한 팩의 고기와 함께 신나게 재운다.
1. 얇게 썬 돼지고기 목살을 한 장씩 떼어 볼에 담아 고기 사이에 양념이 배어들 공간을 만든다.
2. 양파 한 개를 썰어 고기와 섞는다. 고기를 볶을 때 넣어도 무방하지만, 뭔가 더 고기가 부드러워지는 느낌에 꼭 한 알 정도의 양파는 함께 재우고 있다.
3. 양념장을 만든다. 밥숟가락 기준으로 고기 양에 따라 양을 조절한다.
고추장 3, 고춧가루 2, 간장 3, 설탕 2, 맛술 1, 마늘 1, 참기름 1, 후추 톡톡
(청양고추는 맵기 취향껏 넣는다.)
4. 잘 섞어진 양념을 고기와 양파에 붓고 주물럭주물럭!
6. 냉장실에서 하루 동안 숙성한 후, 바로 안 먹을 분량은 소분하여 냉동실로 보낸다.
7. 구워 먹을 때
해동된 고기(먹기 하루 전 냉장실에서 해동) 기름을 두르고 뜨겁게 달군 팬에 고기를 올린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뒤집으면서 고추나 대파와 양파를 원하는 만큼 넣는다.
그리고 물 반 컵 투하. 물을 졸여내며 익히고, 간이 모자라면 소금을 조금 넣는다.
8. 익은 고기 위에 깻잎을 잘게 썰어 올려 마무리한다.
요리 연차가 좀 찼음에도 생선은, 조금 어렵다. 어렵기도 하고, 귀찮다. 생선을 구우면 그 냄새가 족히 한나절은 안 빠지기에 신경이 쓰인다. 스페인에선 도미(dorada)와 농어(lubina)도 매우 싸고, filete(구이용)로 달라고 하면 뼈까지 발라 손질해 주지만, 역시나 어렵다... 생선에 대한 어려움은 주부로서 넘어야 할 숙제 같은 존재다.
그래서 나의 생선 조림은 ‘생선 통조림’을 활용한다! 꽁치도 훌륭하고 고등어도 훌륭할 것이다. 이곳에서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생선은 Caballa del Sur라는 것으로 스페인의 남쪽에서 잡힌 고등어 종류라고 추측된다. 껍질까지 제거된 상태로 올리브유에 절여져 있는데, 무엇보다 살이 많고 담백할 뿐 아니라 육질이 단단해서 오랫동안 졸여도 모양이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1. 냄비에 납작하게 썰은 양파를 깔고 그 위에는 역시나 납작하게 썰은 감자를 올린다.
2. 통조림 생선을 올린다. 한국식 꽁치 통조림이라면 그대로 국물까지 부어도 좋다. 하지만 기름에 절여진 생선이라면 어느 정도 따라낸다.
3. 양념장을 만든다.
밥숟가락 기준, 간장 1, 고춧가루 2, 된장 1, 마늘 1, 설탕 2(물엿이나 올리고당 대체 가능), 들기름 1, 후추 톡톡.
4. 양념을 잘 섞어 생선 위에 올리고 물을 한 컵 붓는다. 그 위에 대파와 고추를 썰어 올린다.
5. 약불 위에서 녹아들어 가는 양념을 생선에 끼얹어가며 익힌다. 감자가 다 익었다 싶으면 완성.
각종 식재료가 저렴한 스페인이지만, 연어는 그중 유독 비싼 재료 중 하나이다. 추운 곳에서 잡히는 생선이기에 그럴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이 있으니 안 사 먹을 수가 없다! 가시 바르기가 쉬운 것은 덤이다.
1. 구이용으로 다듬어진 연어를 소금, 후추, 올리브유에 재운다.
2. 뜨겁게 달구어진 팬에 껍질 부분을 아래로 하여 올린다. 이때부턴 불은 약불로 줄인다.
3. 껍질이 바삭하게 익은 후 한번 뒤집는다. 불을 끄고 잔열로만 익힌다.
4. 구워진 연어를 꺼내고 소스를 만든다. 연어의 껍질에서 나온 기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연어를 굽고 난 기름에 버터를 반 큰 술 녹이고 마늘 1큰술 넣는다.
설탕 2, 간장 3, 식초 1 + 물 반 컵을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졸인다.
과하게 졸이면 캐러멜화 된 소스가 팬 바닥에 눌어붙어 버리므로 주의한다.
이 간장 버터 소스는 바삭한 닭고기 구이에도 무척 잘 어울린다.
양념된 제육을 감칠맛 나게 지글지글 볶아 온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가득 찰 무렵이었다.
밥상을 차리려고 밥솥을 열어보니... 아뿔싸!!
밥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만 하고 확인을 안 했더니, 생각했던 양의 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양으로는 애들 양도 안찰 것 같았다.
급히 일단 밥을 퍼내고, 쌀을 안쳐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고기 볶음 냄새 속에 밥이 되길 기다리는 시간은 실제 시간보다 두배는 길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에 아이가 던진 한마디에 웃음이 터졌다.
밥도둑은 왔는데, 훔쳐갈 밥이 없다니...
밥도둑들을 준비할 땐, 무엇보다 밥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함을 잊지 말 것.
덧, 이 글은 레시피를 어딘가에 꼭 남겨달라는 딸아이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