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담아
김. 그리고 김밥.
김에 밥만 싸 먹어도 맛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넣어 보기 좋게 말았으니,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 없는 음식 아닌가 싶다. 김 한 봉지면 아이들이 밥투정을 멈추어 가정에 평화가 찾아오니, 누군가는 김(feat. 계란)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올리자는 우스갯소리도 하곤 한다.
번듯한 김밥 재료를 준비하기 여의치 않을 때나 남아 있는 밑반찬의 양이 애매할 땐, ‘엉터리 김밥’을 말아보자. 계란 몇 개 대강 휘휘 저어 부쳐 지단을 만들어 넣고, 콩나물 무침과 멸치 볶음이 들어간 김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무말랭이도 좋고 김치볶음도 좋다.
엄마는 이렇게 싼 ‘엉터리 김밥’을 썰지 않고 한 줄을 오롯이 주셨다. 베어 물 때 속 재료가 후드득 떨어지기도 하지만, 접시 하나 들고 티브이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먹다 보면 내가 대체 몇 줄을 먹었는지조차 까먹곤 했다.
밥에 간을 잘 맞춰야 하는 거야.
고슬고슬 지은 밥에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적당한 소금 간(그냥 먹어도 먹을만하다는 정도?)을 하고 고소한 참기름과 통깨를 뿌린다. 밥에 간이 잘 되어 있어야 김밥을 우걱우걱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는 게 엄마의 비법 중 하나.
이 ‘엉터리 김밥’은 집에서 먹는 비공식적인 것이지만, 아직까지도 엄마의 ‘대외용 김밥’이 참 맛있었다며 기억해주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그 맛을 떠올리려 노력하곤 한다.
엄마의 김밥 재료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소고기 장조림
우엉조림(어린 시절 단무지를 싫어했다...)
오이
스팸
달걀
당근채
시금치
게맛살
... 정도가 내가 기억해낸 재료들인데 만약 엄마가 계셨다면 “얘, 몇 가지가 빠졌잖니~”하실지도 모르겠다.
일단 조린 재료가 두 가지나 들어가기에, 적어도 하루 이틀 전부터 준비해야 하는 정성스러운 김밥이었던걸, 맛있게 먹기만 하던 그 시절엔 전혀 깨닫지 못하다 이제 김밥을 싸줘야 하는 입장이 되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마 이 김밥에 합격의 운을 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시험이었다.
이틀간의 시험이었고, 그 해에 유독 난이도가 높았다. 첫 두 과목 시험을 치르고 점심을 먹기 위해 모인,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유독 어두웠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엄마가 한 줄씩 포장해준 김밥이 두 줄 있었는데, 입이 깔깔한 그 와중에도 맛이 있었다. 그중 한 줄을 집이 지방이라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어색한 타 대학 캠퍼스 구내식당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던 몇 해 위 선배님께 드렸다. 선배님도 무척 맛있게 드셨다.
김밥은 맛있었니? 잘 먹었어?
그날 시험을 마치고 돌아가니 다른 것은 안 묻고 김밥 잘 먹었는지만 물어보던 엄마. 여차저차 나눠먹었다고 하니, 그 다음날 도시락 가방엔 선배님 몫의 김밥이 따로 싸져 있었다. 합격!이라 쓰인 작은 포스트잇과 함께.
이틀 째의 시험도 역시나 쉽지 않았고, 합격 발표까지 홀가분할 수 없는 나날이었지만, 그날 ‘합격’ 김밥을 나눠 먹은 선배와 나 모두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 후 그 선배님과 난 같은 회사에 입사도 하여 ‘입사 동기’도 되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던 착각에 빠진 입사의 기쁨도 잠시, 우리 엄마는 고작 딸이 가져다주는 첫 월급봉투의 기쁨을 누려보고 황망히 세상을 떠나신 거다.
장례식장에서 울다 웃다 정신이 나가 있었던 내게 선배님이,
어머니가 해주신 김밥이 정말 맛있었다.
정말 감사했어.
라며 눈물 지어주셨을 때, 더 울지도 웃지도 못했던 나를 기억한다.
나 그 김밥, 을, 이제는, 먹을 수, 없구나
해외에 나오기 전 기쁜 소식을 들었다.
같이 입사했던 그 회사에 계속 다니는 선배님이 최고 직급으로 승진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소식 들었어요!! 정말 축하해요!!
바로 답이 왔다.
오래 다니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
어머니 김밥 덕분이다.
먹먹함에 잠시, 손이 멈췄다.
이번 주엔 꼭 정성을 들여, 엄마의 맛을 흉내 내어 가족들에게 김밥을 말아주어야겠다. 그리고 이거 장모님, 할머니 레시피야,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김밥의 맛은 내겐 그리움이란 말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