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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Dec 21. 2021

내게 베스트셀러는 없지만

베스트 샐러드는 있지

놀이 시설이 변변치 않던 어린 시절. 여름날 한강 고수부지 야외 수영장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덥고 습한 여름이라도 그를 기다리게 하는 이유였다.


마음이 신나긴 했지만 어른 없이 동네 언니 오빠들 사이에 껴서 따라가는 거라, 수영복은 빼놓지 않았는지, 버스 탈 때 쓸 동전은 잘 챙겼는지 나름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언니 오빠들’도 ‘어린이’들이었는데, 예전의 우리가 빨랐던 걸까 지금 우리가 우리 애들을 너무 감싸 키우는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때마다 엄마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주셨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계란 샐러드 샌드위치’. 포슬하게 삶은 감자에 노랗고 하얀 계란과 분홍 햄 조각을 섞어, 고소하고 짭짤한 마요네즈로 간 한 샐러드는 그냥 퍼먹어도 참 맛있어서 엄마가 이걸 만드는 아침엔 샌드위치에 바르기도 전에 일단 한 그릇 가득 퍼담아 먹곤 했다. 이 샐러드를 하얀 식빵 사이에 가득 바르고, 식빵의 가장자리를 아낌없이 다듬어내 만들어낸 하얗고 세모난 샌드위치. 엄마는 만들어진 샌드위치를 포일로 야무지게 감싸 주셨고 난 그걸 가방에 단단히 챙겨 길을 나섰다.


녹아버릴 것 같은 여름날이었지만, 버스비도 잘 냈고, 짐도 빼놓지 않고 무사히 잘 챙겨 빠릿빠릿 내렸다. 어리고 작았던 내게 그 수영장은 하와이 어느 해변 못지않게 크고 넓고 신났다. 살이 순식간에 노릿노릿 구워지는 것도 모른 채(선크림이 웬 말인가)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허기를 느끼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내겐 엄마가 싸준 샌드위치가 있어!


축축해진 몸을 수건으로 감싸고 기대감에 부풀어 포일을 풀었다. 출출함 만큼 크게 첫 입을 왕! 베어 물었던 그 순간,


생전 느껴보지 못한

시큼 털털 기분 나쁜 맛의 첫 경험.


아마도 내가 도시락 가방을 둔 위치가 그날따라 영 좋지 않았었나 보다. 그만 샌드위치가 쉬어버린 것이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다행히 동행한 친구들이 십시일반 김밥 한알도 나눠주고 초코파이도 하나 주고 했지만 그깟 샌드위치 하나로 내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은 김이 샜고, 그 뒤로 물놀이조차 김이 새 버렸다.


하지만 차마 엄마가 싸준 샌드위치를 버릴 수가 없었다. 이글이글 쨍쨍 높았던 해가 뉘엿뉘엿 옆으로 눕고 더위도 한 김 빠질 즘,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이걸 버려야지 그냥 들고 왔어?


라는 별거 아닌 엄마의 말에 괜스레 야속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금 내가 엄마가 되어 생각해보니, 그건 참말로 그냥 한 말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그땐 내 거 하나 없이 남에 꺼 얻어먹기만 하고 온 창피한 마음을 엄마가 모르는 것만 같았다.


서운한 기색을 숨길 줄 모르던 날 두고 (아마도 작은 한숨을 폭 내쉬며) 엄마는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아침에 만든 샌드위치 속을 꺼내셨다. 마요네즈에 비해 감자 양이 많아 조금은 퍼석거려 보이던 속은 둥글게 빚어진 뒤, 밀가루-계란-빵가루를 차례로 입고 기름에 들어갔다 잠시 후 갓 튀겨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로케(반드시 ‘크로켓’이 아닌 ‘고로케’) 로 변신했다!


때마침 내렸던 열기 어린 땅을 식혀주는 시원한 여름 소나기. 그때의 뜨거운 고로케의 감칠맛 나는 속과 바삭한 튀김옷은 쉬어버린 샌드위치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충분히 날려버렸다. 아마도 내 기억 속 첫 고로케는 그때 먹은 그 것이고, 내 인생 최고로 맛있었던 고로케도 바로 그것이다.



마요네즈


기름과 달걀노른자, 식초(혹은 레몬즙)에 약간의 소금 간을 한 후 무자비하게 치대면, 원래 재료가 무엇이었는지 상상하기 힘든 이 멋진 드레싱이 완성된다. (혹시나 직접 만들어 본다면, 들어가는 기름의 양을 보고 기겁할 수 있다. 그 신선하고 고소한 맛이란... 죄책감의 반대급부.)


손쉽게 크리미 하면서도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맛을 낼 수 있는 이 마법의 소스는 활용법도 정말 다양하다.


- 엄마의 샐러드는

삶은 계란, 삶은 감자, 다진 양파, 다진 오이, 김밥햄(혹은 숯불구이 맛 햄이라고 판매되는 네모반듯한 그 햄)을 기본으로 오로지 마요네즈와 약간의 소금으로만 버무려냈다. 남은 속을 샌드위치로만 먹기 지겹다면 크로켓으로 변신시켜 보자. 요릿집의 화이트소스만큼은 아니겠지만, 마요네즈의 대 활약에 깜짝 놀랄 것이다.


- 참치에 약간의 후추와 함께 마요네즈만 섞으면, 빵과 함께 먹어도, 주먹밥을 만들어도 훌륭한 베이스가 된다.


- 기분을 내고 싶을 땐 마요네즈 3큰술, 양파 1/2개, 설탕 1큰술, 약간의 고추냉이, 레몬즙(은 맛을 보며 취향껏)과 함께 시원하게 갈아내면 연어와 찰떡궁합인 손님상에 올려도 손색없는 멋진 소스가 만들어진다.


- 명란젓, 아보카도, 계란 프라이와 함께 밥 위에 얹으면, 순식간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일품요리.


- 의외로 고춧가루와도 어울린다. 마요네즈와 고춧가루를 섞어 바삭바삭한 과자를 찍어먹어 보자! 아, 감자튀김에 마요네즈 먹어보셨나요? 케첩보다 마요네즈를 찾게 됩니다...


그때 엄마의 순간적인 재치 덕분에, 감자 계란 샐러드는 이제까지 나의 베스트 샐러드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더해서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의 기억은 엄마와의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안 좋은 상황을 멋진 경험으로 변신시켜 주는 것은, 후회와 책망이 아닌 작은 유머와 재치임을 믿고 살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 쓸수록, 베스트셀러가 된 작가들의 상상력과 필력에 선망,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또한 그 이면엔 진한 질투심도 깔려있다는 것을 굳이 숨기려야 숨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을 통해 쉬어버린 샌드위치 같았던 무력한 내 삶이 바삭한 고로케로 변신하고 있다면, 그 또한 무척 의미있는 과정일 것이다.


비록, 이번  생애에 베스트셀러는 없을지라도ㅡ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와  기억을 공유하고  1 공감이라얻을  있다면 그것에 감사하며,  베스트 샐러드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오리엔탈 해물 샐러드


드레싱 - 간장 2, 굴소스 1, 설탕 3, 식초 3,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4(오일의 향이 거북하다면, 식물성 기름 어떤 것이든 써도 무방하다), 다진 마늘 1, 참기름 1


오일류(올리브 오일, 참기름) 재료를 제외한 나머지 재료를 먼저 섞어 설탕을 녹인 후 오일류를 맨 마지막에 섞어야 설탕이 잘 녹아든다.


재료-

스페인에선 맛살, 올리브, 껍질 깐 새우, 홍합살, 파프리카 등을 썰어서 만든 (레몬+올리브유+딜 드레싱을 뿌려 먹는다) salpicón이란 샐러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난 이 샐러드 믹스에 몇 가지 재료를 더 더한 후 나의 오리엔탈 소스에 버무리곤 하는데, 진실은 좋아하는 샐러드 재료 어떤 것을 쓰든 무방하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맛있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소스.


숏 파스타를 삶아 함께 섞으면 정말 정말 맛있는 콜드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 라면을 삶아 찬물에 바락바락 헹군 후 버무려도 엄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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