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TV가 돌아왔다!

by 레옴

TV를 집에서 치워버린 건 13년 전이었다. 오로지 내 독단과 고집이었다. 핑계를 대자면, 한 대뿐인 TV가 고장 났고 고치는 비용이 비싸서 새로 사야 할 상황이었다. 저지르기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나와 남편이 자란 가정에서는 눈뜨면서부터 자연스레 TV를 켰다. 애국자도 아닌데 방송 종료와 함께 나오는 애국가를 거의 매일 들었다. 굳이 다른 일을 찾을 필요조차 못 느끼고, 대체로 그 앞에 누워서 반쯤 잠드는 날도 많았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그랬다. 엄마가 된 후 나는 내 아이가 책 읽으며 자라기를 바랐다. TV가 있던 곳을 포함한 모든 쉬는 공간에서는 아이의 눈과 손이 책을 향하도록 공간을 재배치했다.

절반은 성공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아이는 책을 집어삼켰다. 내가 들이는 전집마다 아이는 마르고 닳도록 보았다. 때 지난 전집은 괜찮은 값에 중고로 되팔고 다른 전집을 들이기를 반복했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엔 가장 좋아했던 책을, 마치 자기가 읽는 것처럼 책장을 넘기며 읽었다. 까막눈이었는데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다섯 살이 읽는 그림책치고 글밥도 꽤 많았는데 말이다.

여섯 살에는 한글을 스스로 깨쳐서 혼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엄마가 읽어주는 것을 여전히 좋아해서 나는 오래도록 읽어주었다. 초등 2학년 이후로 아이는 책을 잡으면 한두 시간 정도는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비밀의 정원>, <하이디>,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등의 고전 완역본 한 권은 하루에 끝내는 날도 많았다. 자기 취향의 책은 독서를 완전히 멈추던 6학년까지 열 번 이상은 읽은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천재라고 믿었다.

사실 아이는 영화를 더 좋아했다. TV가 없어진 자리는 태블릿이 대신했다. 주로 영어 교육을 위해 제한된 시간 동안에만 디즈니 영화를 보여주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고전 완역본을 읽고 영화 보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단칸방 혹은 그도 없이 이사를 전전하던 내 어린 시절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큰 희생자는 남편이었다. 집에 오면 빨래처럼 거실 소파에 널려 쉬어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갈 곳을 잃었다. 자기 방에서 핸드폰을 꼭 쥐고 잠들었다. 핸드폰은 몇 번이나 떨어져서 침대 아래 바닥엔 곳곳에 찍힌 자국이 생겼다. 새벽에 깨어보면 그는 환하게 불을 켜놓고, 유튜브 방송이 흘러나오는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있었다. 아이와 나는 거실에서 책 읽고 공부했지만, 남편은 점점 자기 방에서 유튜브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TV를 다시 들일 생각을 하게 된 건 작년이었다. 미디어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춘기 딸과 남편을 동시에 방에서 끌어내고 싶었다. 유튜브도 거실에서 TV로 보면 덜 중독적이라는 글을 본 후였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던 3년 전부터 거실은 목적을 잃고 고요하기만 했다.

그러던 한 달 전, 남편이 내게 전화했다. “사무실이 하나 있었는데, 1월 말까지 비워야 해…” “응…?” 그가 3년 전에 제법 큰 규모의 사무실을 얻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폐업을 도와달라는 그 전화를 받고 나서야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정리하러 간 그의 회사에 가보니 잘해보고 싶었던 그의 의욕이 한눈에 보였다. 인테리어와 시설은 그의 능력 범위에서 최고급이었다. 책상과 냉장고 등 대부분 포장만 겨우 뜯고 방치된 시설과 장비를 처분해야 했다. 머릿속 계산기가 자동으로 작동하며 사라진 생돈을 셈했다. 쓰린 속을 중고 거래로 헐값에 팔아치웠다. 그리고 거기서 최신형 대형 TV를 발견했다. 우리 집에 딱 필요한 거였다!

요즘 부부는 사무실을 비우느라 몸도 마음도 고되다. 한마디 상의도 통보도 없이 그랬냐고 남편을 드잡이 하는 대신, 나는 독서와 글쓰기로 나를 몰아넣었다. 지인의 말대로 그의 속은 더 아플 것이다. 그의 지난 생일에 우리 집에 온 아기 냥이와 거실에 있는 거대한 TV가, 혼자 속앓이 했을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가족은 거실에서 모여 앉아 있고, 인형 같은 아기 냥이는 그 앞을 뛰어다니며 시시때때로 가족을 웃긴다. 딸은 아빠 옆에서 조잘댄다. 자신의 핸드폰에 걸린 빡빡한 스크린 타임에 더해, 거대한 화면으로 넷플릭스를 추가로 시청하는 행운이 믿기지 않는다. “우리 집에 TV라니!”

우리 집과는 절대로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아기 냥이와 13년 만에 돌아온 TV. 빨래만이 고요히 지키던 거실을 시끌벅적하게 밝혀놓았다. 거실에 나와서 조잘거리던 딸이 말한다. “고양이가 오고 확실히 집안 분위기가 좋아졌어.” 나는 싱긋 웃으며 속으로 말한다. ‘TV도 한몫한 거야.’


TV가 돌아왔다. 그리고 기억났다. TV 때문에 내 어린 시절이 좀비 같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온 가족이 그 앞에 모여 웃고 이야기 나누던 때가 있었다. <유머일번지>, <전설의 고향>을 보던 때의 부모님과 오빠의 얼굴이 슬로 모션으로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 같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웃었더랬다. 지금의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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