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곧게 세우고 숨을 깊이 들이쉽니다.
골반 끝까지 숨을 채웁니다.
척추 사이사이에 공간이 생겨납니다.
숨을 내쉽니다.
천천히 위부터 비우기 시작해서 뱃속 끝까지 남김없이 비웁니다.
곧게 뻗은 허리는 그대로 펼쳐져 있습니다.
요가 첫 수업이었다. 평소보다 천천히, 깊이, 그리고 일정한 속도로 들이쉬고 내쉬라고 했다. 그 간단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흠. 나는 숨 쉬는 법을 모른 채 살았고 제대로 쉬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심지어 내 폐는 슈퍼 울트라 초미니 사이즈인 모양이다. 선생님의 지도에 맞춰 숨을 쉬는데 내 들숨과 날숨은 1:4 정도의 비율이었다. 내 허파에 숨을 채우고 싶어도 쪼그라든 채 오래 방치된 풍선처럼 숨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문득 아이 과학 시험공부를 도와주다가 봤던 내용이 생각났다. 들숨으로 몸에 공급된 산소는 혈액을 통해 온몸에 퍼지고 날숨으로는 혈액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간다. 그러면 1:4 비율로 호흡하던 내 몸은 산소가 늘 부족했던 걸까. 산소가 부족해서 늘 이산화탄소가 찌든 때처럼 남아있었을까.
가끔 숨쉬기 힘든 날이 있다. 그럴 땐 애써 들이쉬고 힘껏 내쉬어야만 하는 답답한 기분이 든다. 스킨스쿠버용 산소호흡기를 낀 것처럼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면 아주 조금은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이게 조금 더 심해지면 공황장애가 될 것만 같다.
몇 년 동안 취미로 발레를 배우고 있다. 선생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내 발치에 쪼그리고 앉아 근육을 제대로 쓸 때까지 잡아주기도 하고 무거운 나를 들어주기도 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용을 써봤자 그녀에게는 손가락 까딱 정도로 보이는 듯했다. 그런 나를 끌어올리려고 한 번씩 몰아치는 그녀 앞에서 어느 순간 발작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수업을 계속할 수 없어서 창백해진 얼굴로 교실에서 나왔다. 발레를 계속하기가 두려웠다.
요가원 문을 두드린 건 두어 번 그런 후였다. 그 덕에 숨 쉬는 법을 배웠다. 들숨과 날숨을 같은 비율로, 깊이, 천천히. 그리고 더 흥미로운 사실은 호흡이 곧 명상이라는 것이다. 호흡에 집중하면 잡념이 사라지고 내면 깊이 침잠하며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 잡념이 떠나가고, 좋은 생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제는 바쁜 일은 마치고 잠시 쉴 때마다 한 번씩 내 호흡을 살핀다. 긴장 후에는 대부분 숨을 아주 가늘고 얕게 쉬고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다시 제대로 호흡하면서 깨닫는다. 나는 어쩌면 대부분의 시간에 숨 쉬는 것을 잊고 지내지도 모른다. 아주 최소한의 숨만 쉬면서.
걷는 순간, 자려고 누운 순간만이라도 숨을 쉬어본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창밖을 보는 순간에도 호흡을 점검한다. 그리고 창밖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당신의 하루도 힘들었나요? 혹시 숨 쉬는 것을 잊었나요?
자, 이제 숨을 쉬세요. 천천히, 그리고 깊이 들이쉬세요.
온몸이 산소로 가득 찰 때까지.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내쉬세요.
오늘 차오른 상처와 아픔과 피로를 모두 내보낼 때까지.
단 한 조각도 남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