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편지
햇살에게.
지난 늦가을의 끝자락 즈음. 동해바다를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했지.
'우리도 편지를 주고받아서 책으로 엮어볼까'
'좋아, 집에 모아둔 편지들을 뒤져봐야겠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니,
각자의 앞가림에, 해야 할 것들에 우선순위가 밀려나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마음과 감정이 너무 커서 너에게 표현하기 어려운 나날이라
그냥 웅크린 채로 꾹 그 마음을 눌러놓은 채로 가만히 있었어.
문득 그런 생각이 났어.
서로가 얼굴을 마주 보고 안부를 묻기는 어려운 이 시점.
지금이 바로 그저 허심탄회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편지를 남겨둘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카카오톡의 1은 때론 부담이 돼. 읽어버리는 순간부터 답장의 타이머는 시작되고
어느샌가 가볍게 건넨 이야기가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하거든.
전화통화는 글쎄, 우리가 은근 전화를 할 때는 낯을 가리는 듯한 느낌이라지.
종이로 어느 날 문득 건네는 엽서나 편지가 우리에겐 딱 적절한 것 같아.
요란한 답장도, 기분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말투도, 그 모든 게 거둬진
담담한 마음만 남은 문자들이.
스치듯 지나갔던 말들이 생각나. 너는 은근히 네 얘기를 잘 안 한다고 했던.
진솔하지만 그게 모든 이야기를 다 한다는 것은 아니었음을 이제는 이해할 것만 같아.
정말로 혼자 처리하고 싶던 것들, 아직 혼란스러운 것들은 조금은 거리를 두고 처리하는 너였음을.
그래서인지 최근에 내 불안을 이해하며 네가 슬며시 꺼내보여준 불안이 사뭇 궁금하고,
또 네가 날 보듬었듯 나도 그 불안을 보듬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
나는 근래에 생생한 불안을 느껴. 때론 잡혀먹일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차오르기도 하고,
옴싹달싹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현재가 불행하진 않은데, 삶이 불행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달까.
근데 예전이라면 홀로 감당하지 못해서 마음 속 옷장에 밀어넣고 정리할 용기를 못냈더라면,
요즘은 믿을만한 사람들로 인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불안 속에 나를 조금은 던져보는 것 같아.
쓰러지면 누군가가 도와주겠거니하는 그런 작은 basic trust의 새싹이 움트는 아주 중요한 시기인가봐.
괜시리 너에게는 이런 사소한 변화조차 조잘조잘 얘기하고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
이건 무슨 마음일까, 그리고 그려보다 적절한 단어를 찾으면 언젠가 알려줄게.
나는.. 가명을 무엇으로 할지 한참을 고민하였는데,
난 항상 지향점을 가명으로 붙이고싶더하더라고.
무난해지고 싶었을 땐, 평범한. 신나지고 싶었을 떄는 신남.
요새는 뭘까 한참 고민하다가 '포옹'으로 불러줘.
포용과도 비슷하며, 친밀함이 차오르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의미로
이 단어가 생각났다!
빠른 답장을 기다리진 않을게, 숨통이 트이면 언젠가 연락해 줘.
포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