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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남 Dec 02. 2023

햇살에게.

이어지는 편지


햇살에게.


지난 늦가을의 끝자락 즈음. 동해바다를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했지.

'우리도 편지를 주고받아서 책으로 엮어볼까'

'좋아, 집에 모아둔 편지들을 뒤져봐야겠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니,

각자의 앞가림에, 해야 할 것들에 우선순위가 밀려나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마음과 감정이 너무 커서 너에게 표현하기 어려운 나날이라

그냥 웅크린 채로 꾹 그 마음을 눌러놓은 채로 가만히 있었어.


문득 그런 생각이 났어.

서로가 얼굴을 마주 보고 안부를 묻기는 어려운 이 시점.

지금이 바로 그저 허심탄회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편지를 남겨둘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카카오톡의 1은 때론 부담이 돼. 읽어버리는 순간부터 답장의 타이머는 시작되고

어느샌가 가볍게 건넨 이야기가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하거든.

전화통화는 글쎄, 우리가 은근 전화를 할 때는 낯을 가리는 듯한 느낌이라지.


종이로 어느 날 문득 건네는 엽서나 편지가 우리에겐 딱 적절한 것 같아.

요란한 답장도, 기분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말투도, 그 모든 게 거둬진

담담한 마음만 남은 문자들이.


스치듯 지나갔던 말들이 생각나. 너는 은근히 네 얘기를 잘 안 한다고 했던.

진솔하지만 그게 모든 이야기를 다 한다는 것은 아니었음을 이제는 이해할 것만 같아.

정말로 혼자 처리하고 싶던 것들, 아직 혼란스러운 것들은 조금은 거리를 두고 처리하는 너였음을.

그래서인지 최근에 내 불안을 이해하며 네가 슬며시 꺼내보여준 불안이 사뭇 궁금하고, 

또 네가 날 보듬었듯 나도 그 불안을 보듬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


나는 근래에 생생한 불안을 느껴. 때론 잡혀먹일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차오르기도 하고,

옴싹달싹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현재가 불행하진 않은데, 삶이 불행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달까.

근데 예전이라면 홀로 감당하지 못해서 마음 속 옷장에 밀어넣고 정리할 용기를 못냈더라면,

요즘은 믿을만한 사람들로 인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불안 속에 나를 조금은 던져보는 것 같아.

쓰러지면 누군가가 도와주겠거니하는 그런 작은 basic trust의 새싹이 움트는 아주 중요한 시기인가봐.

괜시리 너에게는 이런 사소한 변화조차 조잘조잘 얘기하고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

이건 무슨 마음일까, 그리고 그려보다 적절한 단어를 찾으면 언젠가 알려줄게. 


나는.. 가명을 무엇으로 할지 한참을 고민하였는데,

난 항상 지향점을 가명으로 붙이고싶더하더라고.


무난해지고 싶었을 땐, 평범한. 신나지고 싶었을 떄는 신남.

요새는 뭘까 한참 고민하다가 '포옹'으로 불러줘.

포용과도 비슷하며, 친밀함이 차오르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의미로

이 단어가 생각났다!


빠른 답장을 기다리진 않을게, 숨통이 트이면 언젠가 연락해 줘.


포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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