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 May 10. 2021

집들이를 간다면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안아줄게요.

집들이가 당신이 버텨온 시간들에 대한 보상 시간이라는 걸 아니까요.

지난 주말, 애인이 이사를 했습니다. 반지하 월세방에서 신축 빌라에 전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전에 살던 월세집은 제가 봐도 정을 붙이기는커녕 3년 동안 살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들뜬 장판, 언제 어디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거대한 바퀴벌레, 아침 6시부터 시끄럽게 들려오는 물류 상하차 소리, 누구든 마음먹으면 안이 훤히 보이는 반지하 창문. 과장 조금 더 보태서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집과 비슷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삿날 비도 와서 힘들었을 법도 한데 그는 이사 당일 아침부터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아, 정말 감회가 새로워. 전세이긴 하지만 이게 내 집이라니..." 그렇게 신이 나서 지칠 줄 모르고 집 정리를 하던 그는 3일째가 되던 날, 저를 초대했습니다. 저에게 집을 하루라도 빨리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은 마치 학교에서 상장을 타 온 아이가 빨리 부모님께 상장을 보여드리고 싶어 상기된 표정으로 현관문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모습과 같아 보였습니다. 그랬습니다. 그가 처음 구한 전셋집은 그에게 상장이었습니다. 


출처 : unsplash


그가 다니는 회사는 야근이 정말 많습니다. 밤 10시에 끝나면 일찍 끝났다고 즐거워하는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시려나요. 기본 11시, 12시에 끝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하는 날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렇게 약 2년의 시간을 보내온 그. 이 악물고 힘든 시간을 버텨낸 그에게 스스로가 주는 상장이 이번 전셋집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집을 산 것도 아닌데 무슨 호들갑을 떠냐고 할 수도 있고, 월급으론 답이 없으니 빨리 주식이든 코인이든 재테크를 해서 한 탕을 노려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백 번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으로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간 그가 느꼈을 뿌듯함과 기쁨, 행복감은 버텨내 보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에게 보상을 줘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지 못할 높은 수준의 감정일 것 같다는 생각을 그를 보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참 대견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그동안 나에게 적절한 보상을 줘왔던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생에 대한 보상이 각자가 원하는 방식과 빈도로 주어졌을 때 일상을 건강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인데 저는 저 스스로에게 열정 페이를 주며 부려먹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서야 하게 된 것입니다.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한다는 일념과 강박에 휩싸여 보상은커녕 그 흔한 운동도 구립스포츠센터 등에서 하는 5만 원짜리 과정이 아니면 등록해보지 않았고, 제대로 된 취미 하나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 자신에게 상장은 주지 않고 계속해서 '더, 더, 더', '이 정도도 못 버티다니, 너 이렇게 약한 사람이니?' 라며 몰아세우기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제가 토하듯이 퇴사를 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나를 챙기지 않아 와서였음을 알게 됩니다. 


광어회 한 접시를 배달해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보았던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집들이는 그동안 그가 흘린 땀과 눈물을 인정해주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기특하다고 등 두드려주는 시간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누군가가 유난 떨어주지 않으면 자신이 자신에게 박수 쳐주기, 생각보다 쑥스럽고 낯부끄러워서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몇 번이고 그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말해줬습니다. "아이구 잘했네~ 아이구 잘했어~ 아이구 기특해~" 다들 마음속에 있는 어린아이. 이런 날만큼은 당당하고 사랑스럽게 불러내어 마구마구 안아주고 머리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어요. 나에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출처 :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