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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 Apr 17. 2023

우리는 죽음으로써 무엇으로부터 해방될까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 

죽은 이후에야 해방된 아버지. 그는 그의 신념과 사회적 프레임으로부터 해방되었다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무엇으로부터 해방될까. 우리 엄마는 어떨까. 그녀를 평생 괴롭혀왔던 여러 동거인들로부터 일까, 원죄처럼 지고 살던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으로부터 일까, 뭔가 지시를 당하는 걸 몸서리치게 싫어했던 그녀답게 그녀에게 부과된 모든 역할로부터일까. 어느 쪽이든간에 죽음 이전에, 생전에 그것들로부터 해방되길 바란다. 그러고 나서 그녀만의 인생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결국 해방의 주체는 그녀여야 하기에 나는 그저 그녀에게 족쇄만은 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외할머니 장례식이 계속 떠오른다. 주인공이 아버지에 대해 갖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엄마도 느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나와 엄마의 관계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우리 엄마의 수만 가지 얼굴 중에 몇 가지나 알고 있을까. 어쩌면 자신의 부모를 잘 알지 못한 채로 떠나보내는 게 자식들이 대물림하는 실수인가. 그래도 주인공은 아버지의 유골을 어디에 뿌리면 좋을지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듯. 주인공이 아버지 생전에 아버지의 입장보다는 빨치산 아버지의 딸로 살아가는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을 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랬다. 내 부모는 빨치산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의 지속적인 폭행을 보고 자랐고, 그 결과 불안정한 경제상황 아래서 집에 전기가 끊겨 컴컴한 방안에 촛불을 켜놓고 지내기도 했다. 경제적인 제약으로 하고 싶었던 걸 마음껏 해보지 못했고, 늘 돈에 발목이 잡혔고, 긴 호흡으로 무언가를 준비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건 내 원망은 엄마를 향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를 살뜰히 챙기는 쪽으로도 가지 못했지만. 주인공보다 더 자식 같은 역할을 해줬던 인물들 앞에서 느꼈던 부끄러움이 그대로 전해져 와 내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내가 제주도 여행을 가서 현지 독립서점에서 구매했던 책 김승우 작가의 단편소설집 ‘모르는 사람들’과 비슷한 주제와 매력을 가진 작품이었다. 두 책 모두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우리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이해받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는 씁쓸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내가  일상에 치여 쉬이 평가해버리고 말았던 이들에게 이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삶의 밑바닥까지 공유한 엄마에 대해서는 먹먹하다 못해 사무치는 측은함이 발동한다. 내가 아는 엄마의 내러티브만 해도 눈물겨운데 나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순간들과 감정들까지 더하면 나는 아마 그 이후의 나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주인공 아버지가 삶의 근간이었던 사회주의마저도 사람 앞에서는 힘을 잃어버렸던 것처럼, ‘사람이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말을 달고 살았던 것처럼, 엄마도 어처구니없을 만큼 인본주의자였다. 저렇게 당하고도 또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을까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어쩌면 그게 그들의 생존방식이었나 싶다. 상처받은 마음을 그대로 걸어 잠그고 살면 작은아버지처럼 술에 절어 사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것이 곧 본인에게 고통일 뿐이니까. 나도 우리 엄마의 장례식장에 가봐야 비로소 엄마의 다양한 얼굴들을 알게 될 수 있을까.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욕심은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재구성될 그녀의 모습이 따숩고 진심 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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