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김지수 기자님이 평균 나이가 72세인 16명의 어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들을 모아놓은 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우리가 TV에서 자주 봐 와서 친근한 윤여정, 이순재 배우님부터 베스트셀러 작가로 친근한 강상중, 김형석 교수님까지 분야와 성별을 막론하고 각자의 삶에서 깊은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어른들을 만났다니 책 표지만 봐도 설레었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자극적인 광고와 뉴스, 친구들의 SNS에서 보이는 행복해 보이는 사진들을 마주하다 보면 내가 세워놓은 삶의 태도나 가치관이 흔들린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를 할 것이고, 돈만 좇는 허무한 삶은 살지 않겠다'라고 다짐했었는데 다음 날 주식 대박으로 퇴사한다는 사람들의 기사를 보면 '지금 재테크 공부 안 하면 나만 손해인가' 싶은 불안함이 슬금슬금 나를 지배한다. 매일 휘청휘청한다. 그런 와중에 만난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이었기에 더욱 반가웠고, 지금보다 3-40년 더 경험해보고 나면 어떤 결론에 도달해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들었다. 16명의 어른들이 가진 색깔은 모두 달랐지만 다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2가지의 키워드가 있었다.
하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이악물지 않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라.
둘, 절대 욕심부리면서 혼자 잘 살려고 하지 말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라.
그동안 학교와 사회에서 들어온 이야기와는 조금 달랐다. 학교에서는 저 얘보다 내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좋은 대학에 간다고 했고, 사회에서는 남들보다 더 많이 벌어야 성공한 것이라 평가했다. 그런데 평균 나이 72세 어른들은 손해 보면서 살라고 했다. 좀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함께 가라고 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되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너무 교과서 같은 말 같아 답답함과 괴리감을 조금 느끼기도 했지만, ""남이 내 비위 안 맞춰 주니 내가 먼저 내 비위에 맞춰 줘야 한다"는 말은 자기 억압이 곧 생존이라 여기며 숨죽이던 우리들의 숨통을 틔워 주는 산소 같은 일침"이 되어주기도 했다.
내 마음에 눈처럼 내려앉아 녹을 줄 모르는 몇 문장들이 있었다.
[니시나카 쓰토무]
"'남들 다 하니 괜찮아'라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도덕적 잣대를 갖고 살아야 불운을 피할 수 있어요."
[노라노]
"직업은 소중하되 사람을 구속하니, 스스로 인간으로 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최재천]
"개인이 행복하면 조직이 잘 굴러갑니다."
[이순재]
"나이 들어도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과제를 달갑고 고맙게 받아야 해요.
수선스럽지 않게 일상을 유지하면서."
[강상중]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크 윌리엄스]
"늙어서 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놀지 않으니까 늙는 겁니다.
- 김지수,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中-
깃털보다 가벼운 글과 영상과 이미지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따뜻하고 묵직한 이들의 말은 내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은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앞으로는 무엇이고 싶은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동안은 생존을 위해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이 생애 제1목표였다. 그러다가 작년 3월에 감사하게도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게 된 이후로는 내 일상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다음 스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삶의 가치관이나 방향성, 철학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순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만의 것을 갖지 않고 사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노라노 디자이너님의 말씀대로 "스스로 인간으로 살기를 멈추지 않"으려면 나만의 기조가 필요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계속해서 내 삶의 철학으로 무엇을 가져가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큰 어려움 없이 2가지는 고를 수 있었다. 사랑과 성장. 사랑이라 함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시작하여 내 가족, 애인, 친구, 동식물에 대한 사랑까지를 포함한다. 성장은, 직접 경험부터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한 간접 경험까지 다양한 방식의 배움을 통해 삶의 활력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2가지로도 충분하긴 했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러던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풍경. 엉망진창인 내 집. 지친 내 몸을 쉬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자,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일하는 공간이 되어주기도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산만했다. 산만한 풍경 속에 사니 내 머릿 속도 산만해지는 듯한 느낌을 계속 가지고 있던 터였다. 이 책이 계기다 싶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갈한 주변을 유지하는 것을 내 삶의 마지막 철학으로 가져가 보려 한다. 근 30년을 유지해온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지가 쉽지 않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배워나갈 가치가 있는 태도라고 생각해 3번째 철학으로 추가했다.
누구나 삶에서 흔들리는 순간을 겪을 것이다. 그럴 때 이 책을 펼쳐 들면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처한 상황도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도 다르기 때문에 16명의 어른들이 하는 말씀을 모두 내 삶에 적용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이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안도감과 위로 하나는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짱짱한 윤여정 배우님도 이렇게 말하지 않으시던가.
"반성하고 사과하고도 또 같은 실수를 한대요, 내가!
그러니 이 나이에도 매일 아주 조금 성숙해지길 바랄 수밖에요."
- 김지수,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中 -
70 넘은 어른도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조금씩 성숙해지길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는데, 아마도 그녀보다 나이가 적을 대부분의 독자분들이 방황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은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지 않을까. 그러니 이 어른들의 말에 공감은 못해도 위로 하나는 확실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끼리도 괜히 센 척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나아가 보면 좋겠다. 아! 쓰다 보니 내 삶의 4번째 철학으로 추가해야겠다. 센 척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