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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 Sep 10. 2020

환경을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책 <김산하의 생태학교>

"NO PLASTIC." 내가 다니는 회사 옆에 위치한 카페 입구에는 이 문구가 쓰여 있다. 이 카페가 처음 입주하면서 일회용품을 일절 쓰지 않고 맛으로 승부하겠다고 했을 때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걱정했다. 그렇게 해서 장사가 되겠냐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테이크아웃을 위한 일회용품이 없다는 사장님의 말을 듣고 황당해하며 발걸음을 돌리던 손님들은 이제 없다. 그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들 모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가 보다 한다. 불편함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마모되어 사라졌다. 


"행사장에서는 일회용품이 제공되지 않으니 개인 텀블러를 지참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회사에서 작년에 개최했던 대규모 행사 안내장에 넣었던 문구다. 100여 명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우리는 종이컵,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았다.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적응하지 못했던 초반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이 모든 과정들이 자연스럽다. 각 개인이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해준다면 행사 후 쓰레기통에 넘쳐흐르는 일회용품 더미가 당연한 장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이러한 경험들이 누적되며 나 정도면 환경보호에 깨어있는 편이지 라고 자위했었다. 그러던 중에 만난 '김산하의 야생학교'는 내 생태감수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한겨울에 유리온실 속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이번 겨울은 안 춥네'라고 마음 편한 소리를 하고 있다가 유리온실이 깨지면서 영하의 바람을 마주하게 된 느낌이라고 할까. 많이 부끄러웠다. 개인을 포함해 기업, 정부까지 누구 하나 환경을 위해 제대로 행동하는 주체가 없는 것 같았고, 그 시작점에는 내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지구에 살아가는 하나의 종으로서 다른 종들을 더 배려하는 선택을 했더라면, 내가 소비자로서 비양심적인 기업들에 대해 보이콧을 하면서 친환경적 대안 마련을 유도했더라면, 내가 국민으로서 환경보호에 앞장서지 않는 정부를 엄격하게 감시했더라면. 


작가의 말처럼 나는 "효율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키고, 이윤을 위해 노동을 희생시키고, 자본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고, 개발을 위해 자연을 희생시키"고 "사람 살기도 힘든 세상에 웬 짐승까지 챙기"냐는 식의 사고방식에 익숙했다. 이기적인 마인드와 라이프스타일이 체화되어버린 정도와 비례해 내가 환경을 위해 해야만 하는 액션의 종류도 늘어났다. 과도한 어업량으로 해양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 기업들도 골라내야 하고, 동물과 정글이 마치 인간의 것인 양 멋대로 해석해내는 방송 콘텐츠들도 비판해야 하고, 스키와 골프처럼 인간의 재미를 위해 무자비한 벌목을 하려는 정부와 기업의 계획도 막아야 하고, 아이들이 자연과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하면서도 그것이 동식물에게 폭력적인 방식이 아니도록 신경 써야 한다. 


사실 환경보호라는 주제가 무겁고 불편했다. 일하고 싶어도 당장 일할 직장도 찾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 환경보호에 힘써달라 말하는 건 뭔가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에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은데 내가 하는 몇 가지의 친환경적 행동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것 같아 무기력함도 일었다. 그랬기에 작가가 본인의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를 비난하거나 강요하려는 뉘앙스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책을 다 읽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배려했고 기다려줄 줄 알았다. "다소 모순되는 면이 있어도 좋다"며 인자하게 말해줄 수 있는 성숙한 태도는 자연으로부터 배운 것일까. 이제 막 수학을 공부하려는 학생에게 '수학의 정석'을 펴라고 하는 게 아니라 'A단계 학습지'를 주고 빨간 동그라미의 힘을 먼저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작가의 믿음에 힘입어 하나씩 더 도전해볼 용기를 얻었다. 오늘도 카페에서 나는 매장용 컵을 쓰고 빨대 없이 음료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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