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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구 Sep 22. 2024

일단 던지기

24년 3분기 회고, 기투하는 삶

#1. 잘 모름

세상엔 애매하게 아는 것들이 참 많다. 간접적으로 접해봤기 때문에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한국어로는 '잘 모름'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나는 이 표현을 자주 쓴다. 모르면 모르는 건데, 아예 모르는 것까진 아니고 '잘'은 모른다.


누군가 내게 레슬링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잘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잠깐 MMA를 배워서 태클과 스프롤이 뭔지는 안다. 얼추 비슷하게 따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레슬링는 수많은 요소가 있다. 어떤 원리로 중심을 무너뜨리는지, 기술의 대분류는 어떻게 되며 어느 상황에 사용하는 것인지, 겨드랑이를 어떻게 파고 그립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등... 나는 그걸 설명하고 재현할 수 있는가? 아니다. 나는 레슬링을 모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잘 모른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레슬링을 '전문가까진 아니어도 어쨌든 아는 사람'이 된다.


이 말장난 같은 표현은 십수 년 간 내 성장 속도를 늦춰왔다. 이번 분기에 그걸 깨닫고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나는 왜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못했을까? 무언가를 몰라서 겪은 큰 트라우마가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측은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잘'이라는 부사 하나만 빼면 나는 그냥 모르는 사람이 되고,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2. 앎

진정한 앎은 체득에서 온다. 직접 경험해야만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의 간접적인 경험은 앎에 다가가기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책을 수십 권 읽으며 돈을 공부한 사람은 '부를 안다'는 것에 미약하게 가까워졌. 하지만 실제로 투자해서 목표치까지 자산을 불려보기 전까지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다. 위를 팽팽하게 당긴 채 녁의 10점을 노려보더라도, 손을 떼기 전까지는 화살이 어떤 써클에 안착할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럼 체득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체득은 나를 내던질 때 가능하다. 말 그대로 '기투(Entwurf, 企投)'하는 것인데, 모르는 영역에 스스로 들어가 이것저것 해봐야 한다. 경험 중에서도 넘어지고 깨져보는 게 가장 좋다. 이번 분기의 나는 블록체인 베이스 지식을 쌓고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매주 블록체인 강의를 듣고 파이썬으로 코딩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정리해 일요일마다 P1 멤버들에게 설명했다. 이렇게 직접 내 손으로 정리하고 말하는 내용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성장을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음악 리뷰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했다. 모르는 게 많은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를 내던지려고 한다.


공을 손에 들고만 있다면 득점할 수 없다.







*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CHUTTERS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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